[alert style="green"]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상한 상식이 전 세계에 ‘이상한 나라의 경제’를 구축했다. 이상한 상식은 결국 이 이상한 경제 체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상한 나라 안에 있을 때는 그 나라가 얼마나 이상한지 깨닫지 못한다. 숲 밖으로 잠깐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alert]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 3월 3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박지연씨의 추모집회를 열었다. 한편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이후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아 온 여성근로자 김모씨(37.여)가 지난 4월 10일 삼성전자 내 근로자 가운데 유일하게 산재승인을 인정받았다. 사진 출처: (서울=뉴스1)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직원과 유가족 중 일부가 법원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2011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직원과 유족 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직원 및 유가족 사이의 오랜 분쟁 끝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사실 ‘이기심이 공익을 낳는다’는 애덤 스미스의 준칙을 받아들인다면,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발생 문제 등 이 기업의 다른 과제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큰 공익을 낳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분적 문제점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의 선순환’ 속에서 부수적인 문제들은 설 자리가 없다. 실제로 상당수 한국인이 이런 준칙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상 최대 실적’ 이라는 발표 속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는 그저 부수적일 뿐이다. ‘대표 기업의 실적’ 이라는 더 큰 공익 앞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문제인 셈이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2011년 9월 25일 현재 51%이다. 정작 이익의 절반은 한국 사회의 몫이 아니다.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는 말은 사상 최대 주주 이익을 실현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주주 가운데 절반이 외국인이다. 게다가 국민의 대부분은 그 나머지 주주에도 끼지 못한다.

사실 국민들이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르게 일이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게 2010년께부터이다. 이익을 많이 내는 한진중공업이 가차 없이 대량 해고를 감행한 게 2011년이다. 이뿐 아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이 하던 업종에 진출해 물량 공세를 펼치면서 생존권을 위협했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피자, 치킨 같은 품목을 내놓으면서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사고, 슈퍼슈퍼마켓(SSM)을 주택가에 내면서 동네 가게를 위협하고 분노를 산 게 비슷한 시기다. 대기업에서 문구류 등 소모성 자재를 납품하는 MRO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하면서 문구점 등 중소 자영업자들과 충돌한 것도 이때다. 같은 시기, 같은 대기업들이 총수 일가 소유 기업에 일감을 대량으로 몰아주면서 부를 세습했다는 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동안 점점 더 심각해지기만 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에 확산된 것도 이때쯤이다.

이런 사회에서 한국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이 생겼다. 기업의 탐욕은 점점 더 커지고 더욱 잘 실현되는데, 왜 내게는 좋아진 경제의 과실이 오지 않는 걸까? 제빵업자와 푸줏간 주인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데, 왜 우리 집 저녁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의 양과 질은 초라해 지기만 할까?

한진중공업에 대해 여야 정치권과 부산 지역사회를 포함해 한국 사회가 2011년 보여준 공분은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회 청문회가 열렸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이 한진중공업을 질타했다. 영업이익을 2천억 원, 3천억 원씩 내는 기업이 끝내 정리해고를 결정하는 것을 이제 한국 사회는 이해하지 못한다. 주주에게는 배당을 하면서 해고를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렵다.

애덤 스미스의 준칙을 그대로 받아들인 다면, 대기업의 MRO 진출이나 SSM 진출은 윤리적으로 잘못을 따져 묻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국가 경제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더 낮은 임금을 받더라도 다른 산업, 다른 기업에 취업하면 될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원가 절감에 성공해 가격을 낮추고 더 많은 배를 수출하고 늘리면,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 전체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해고자들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른 기업이나 산업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익을 위해서, 해고자의 개별적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이게 애덤 스미스의 논리다. 1998년 한국 사회가 IMF를 통해 적극적으로 수용한 논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기업 MRO 진출에 대한 태도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한국 사회가 기업을 바라보는 인식론적 프레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별 기업의 탐욕이 시장 전체의 편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1998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한국 사회가 ‘탐욕의 공익성’이라는 명제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은 탐욕스러운 게 오히려 공익적인 것이고, 수십억 원을 버는 자산가가 늘어나야 동기가 부여되고 결국 탐욕이 선진국을 만든다는 게 지금까지 20년가량 한국 사회에서 확산된 '비상식적 경제 논리'였다. 기업가는 주주의 탐욕을 구현하는 대리인으로 취급받으면서, 주가로 평가받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사람이 자산이 아니라 비용으로 취급되면서, 비정규직이 늘고 임금 차별이 심해졌다.

그 20년 동안 믿어왔던 인식론적 프레임이 흔들리기 시작한 게 바로 최근이다. 최근 전 세계를 뒤덮은 월스트리트를 향한 분노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대기업을 향한 비판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더 이상 탐욕은 그 자체로는 윤리적으로 옹호되지 못한다. 최소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해악을 끼치는 탐욕은 규제되어야 마땅하다.

애덤 스미스의 준칙은, 처음에 그것이 윤리적 통념을 전복했던 것과 비슷하게, 다시 한 번 뒤집힐 운명을 맞고 있다. 그 준칙을 근간으로 세워진,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질서도 마찬가지다.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전문은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어크로스 펴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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