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은 ‘협동조합주의자’로 불린다. 협동조합기본법도 없고, 협동조합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절, 협동조합운동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그게 벌써 30년이 돼간다. 김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성지라 불리는 몬드라곤의 이야기를 국내에 첫 소개한 책의 저자기도 하다. 그가 쓴 협동조합 관련 저서만 7권이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생기고, 기업 전문가들과 의기투합해 이듬해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를 설립했다. 프레시안협동조합, 대한민국조종사협동조합, 한국퀵서비스협동조합 등이 센터의 도움을 받아 협동조합을 안착화시켰다. 

오랜기간 협동조합운동에 참여해온 그가 바라본 국내 협동조합, 얼마나 발전했을까. 

“솔직히 20년 전까지만 해도 재미가 없었어요. 협동조합 15개 만드는데 참여했는데, 그중 10개가 문을 닫았어요. 암울했죠. 네가 쓴 책보고 시도했다 망했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알토란 같은 씨앗들이 많이 보여요. 조금만 더 하면 점프하겠다는 생각에 상당히 낙관적입니다." 

센터는 카이스트, 서울대에서 진행해온 협동조합 경영전문가 과정을 올해는 연세대학교와 함께 하며 인재양성에도 꾸준히 나서고 있다. 프랜차이즈협동조합, 소상공인협동조합 등 녹록치 않은 산업분야에서 협동조합을 개척하는 일 또한 최근 센터가 하는 일들이다.  

김성오 이사장을 지난 8월 23일 당산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

- 20대 때부터 협동조합에 참여했다. 30여 년 전이다. 그때는 국내에서도 협동조합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시기 아닌가. 

▶ 1991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그쯤 된다. 1992년에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책을 펴냈다.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당시에는 국내에 처음 몬드라곤협동조합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교육도 하러 다니고, 15개 협동조합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다.(그 중 10개는 문을 닫았다고 한다.) 솔직히 얘기하면 그때는 암울했다. “네가 쓴 책 보고 시작했다 망했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웃음) 그만큼 척박하고 협동조합이 일반화되지 않던 시절이다. 

-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생기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협동조합을 보며 "자동차가 다니는 길거리에 내놓은 아이 같다"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 거 같나. 

▶ 정말 좋아졌다. 알토란 같은 씨앗들이 많이 보인다. 조금만 더 하면 점프하겠다는 곳들이 보여 상당히 낙관적이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현재 협동조합 수가 1만6천개 정도라는데, 법인 등기된 협동조합 중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곳은 50%에 불과하다고 한다. 운영 중인 협동조합 중에서도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15.7%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 눈앞에 현실만 보면 암울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긴 역사 속에서 보면 결코 현재 상황이 우울한건 아니다. 물론 객관적인 통계는 틀리지 않다. 1만6천개 중 전화하면 그나마 전화 받는 곳이 6천개 정도다. 그 중에서도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12%에 해당하는 2천개. 그래도 지난 7년간 교육, 컨설팅하며 정말 다양한 협동조합들 만났는데, 이 중 10%인 200개 정도는 성장잠재력이 보인다.  200개가 작은 것 같지만 가능성을 지닌 곳들이 그 정도 된다는 건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다.

- 너무 낙관적인 거 아닌가. 

▶ 협동조합이 성장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일반 벤처기업들의 스타트 기간보다 오히려 짧다. 생각해보면 협동조합기본법 만들어진지 10년도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손가락 발가락이 생긴 거다. 오래된 기업이라 해봤자 5-6년차다. 해외 유명한 협동조합들을 보면 10년 이상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버벅거렸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아이쿱생협 설립 때부터 참여했는데, 여기도 자리 잡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협동조합도 스타트 기간을 10년은 잡아야 한다. 10년간 여러 문제를 겪고 해결법이 내부적으로 체계화되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대신 그 다음 단계부터는 차츰차츰 올라가는 계단식 성장이 아니라 바로 점프하는 식으로 성장한다. 협동조합 성장 경로가 그렇다. 협동조합은 모델 하나가 성공하면 복사가 가능하다. 가장 최초로 성공한 협동조합인 ‘로치데일협동조합’이 성공한 역사도 그랬고, 독일 신용협동조합이 성장한 역사도 같다.

그래서 초창기 10년이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그 기간에 딱 걸려있다. 문화를 만들어내고 솔루션을 만들면 흔들리지 않고 100년 갈 수 있다고 본다. 주식회사보다 더 오래갈 수 있는 구조라는 게 협동조합이 가진 저력이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에서는 7년간 협동조합 컨설팅, 교육, 투자 등의 사업을 진행해왔다. 

-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생기고 그 다음해 바로 한국협동조합창업지원센터를 설립했다. 7년째 협동조합 설립 운영 지원을 해왔는데, 협동조합 방식이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 우리 삶을 살펴보면, 제일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 어려움을 겪는 그룹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프리랜서 그룹이다. 약 100만 명 정도라 추정된다. 이런 이들이 최근 플랫폼협동조합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형 플랫폼협동조합 모델을 찾아보고자 우리도 관련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그 다음이 소상공인들이다. 국내 1/4을 차지한다. 소상공인의 경우 평균 소득이 계속 줄어들었다. 소득을 다시 높이려고 노력했지만 잘 회복이 되지 않았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생기고 개별로는 해결이 안되니 소상공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게 소상공인협동조합이다. 네 번째 그룹이 운송업, 돌봄 중하위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소득을 높여야 하는 사회적 과제가 있다. 

이미 실업자를 돕고 구제하는 일은 관련 기관들은 많다. 사회적경제는 앞서 얘기한 2~4번째 그룹이 겪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 앞서 협동조합이 역할을 해야 하는 대상을 얘기했는데 국내에서 협동조합하기 적합한 분야는 어느 분야라 생각하나. 

▶ 택시협동조합은 가능성이 높다. 대구에만 9개가 있다. 법인 택시 6천개 중 800대(15%)가 협동조합택시다. 조합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보통 가족 경영하는 곳들이 많은데 협동조합으로 하면 경영이 투명해진다. 다른 운송쪽도 그렇다. 앞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거다. 돌봄종사자들이 협동조합으로 참여하는 곳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프랜차이즈 산업의 독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프랜차이즈협동조합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규모가 너무 영세하고 경제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협동조합 내에서도 규모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우선은 보석 같은 협동조합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미용협동조합'은 전국에 100개가 넘는다. 그걸 한 번에 다 성공시키기란 어렵다. 2~3개가 성공하면 그 모델들을 다시 조직하면 된다. 그걸 규모화시키는 게 결국 협동조합화 시키는 거다. 

몬드라곤이 기업체 형태의 시작은 석유난로 생산 직원 협동조합인 ‘울고’에서 출발했다. 제조로 시작했지만 그 가능성을 보고 이후 은행, 경영 컨설팅, 교육, 사회보장 시스템, 유통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은 세계 최대 노동자 협동조합 연합체인 몬드라곤이 됐다. 이처럼 단위 기업이 바로 큰 기업으로 성장한 역사는 없다. 작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시작해 점점 규모화시켰다. 

- 연대 협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농협, 수협 등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협동조합이 더 규모화되고 지속가능하려면 이들(선배 협동조합들과)과 같이 가야한다. 사회적경제기본법 통과되면 농협 등 지역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요즘 지역을 다니면서 농협과 협력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센터는 5년간 서울대와 협동조합 경영전문가과정을 진행해왔다. 올해부터는 연세대와 진행한다./사진=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 센터는 협동조합 전문가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서울대에서는 협동조합 전문경영가 과정을 5년간 개설, 운영해왔다. 다른 곳들과 이곳만의 차별성은 뭔가. 

▶ 협동조합 경영전문가 과정을 2013년에 시작했다. 당시 프레시안협동조합 컨설팅을 했는데, 쫑파티를 하는 날 프레시안협동조합 이사장님이 "협동조합 경영전문가를 한명 보내달라"고 말했다. 막상 보내려니 보낼 사람이 없었다. 당시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시작은 카이스트와 했고, 이후 서울대와 함께 5년간 협동조합 경영전문가 과정을 진행했다. 전체 60시간 중 절반은 경영 기초 이론, 절반은 협동조합 이론을 결합했다. 중간에 관련 책을 20권 읽게 한 후 독서록을 제출하게 한다. 총 6기 동안 총 35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그 중 300명에게 민간자격증 협동조합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수여했다. 협동조합 코디네이터에게는 센터 컨설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 과정에 참여하는 수강생의 90% 이상이 사회적경제 종사자다. 협동조합 임원 등 리더들이거나 중간지원기관 활동가들이 다수고, 공무원, 경영지도사, 세무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은 물론 대학교수들도 종종 있다. 작년에는 제주대 경영대 전 학장님이 듣기도 했다. 

수강료는 200만원이다. 적지 않은 비용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들 한다.(웃음) 올해부터는 연세대와 함께 9월 25일부터 이 과정을 진행한다. 

- 수강생들 평가는 어떤가. 

▶ 강의평가를 들어보면 학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근데 더 만족도가 높은 사람이 있다. 바로 가르치는 강사들이다. 서울대 교수님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처음 봤다며 감동할 정도다.

우리 과정은 아주 기초 과정이다. 경영과 협동조합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 아는 사람도 다시 정리하고 간다. 사실 60시간 공부한다고 바로 전문가가 되지는 못한다. 다시 기본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고 얘기들 한다. 

- 사회적경제 인재양성이 중요하다. 어떤 과제가 있을까. 

▶ 대학교에 학부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협동조합 사회적경제과 이렇게. 예를 들어 서울시립대에 학부를 만들면 연구자가 생기고 이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생기는 거다. 비학위과정은 축적이 잘 되지 않는다. 협동조합 연구자가 나오려면 학부에서부터 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 하나는 문화의 두께가 쌓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 문화의 두께란 무엇을 의미하나. 

▶ 제도도 중요하지만 제도보다는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는 문화환경이 더 중요하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을 보면, 초기 조합원이었던 청년들이 협동조합이 뭔지를 알고 시작했다. 어른들이 하는걸 보고 자랐기에 그게 낯설지 않은 거다. 그게 문화다. 시간과 세월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갖춰져야 할 것은 협동조합에 대한 일상적 경험이다. 앞서 얘기한 대학 때부터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학부 과정 등이 이런 문화를 만든다.  

 

사진. 박재하(이로운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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