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분야에도 대(大)기업이 있다. 전통적인 대기업처럼 매출이나 규모가 큰 기업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사회변화에 기여하며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만들어가는 기업을 말한다. 또 10년 이상 꾸준히 위기를 넘기며 성장하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기업이다. 어느 때보다 사회적경제 분야의 양적 성장이 커지는 요즘, 그 대기업들이 밟아온 10년 이상의 경험과 고민, 그리고 위기를 헤쳐 온 힘의 원천이 질적 도약을 앞둔 사회적경제 영역에 작은 인사이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규모는 작지만 큰 가치를 만들어가는 강소 사회적기업가들을 본지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이유다.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사진=이로운넷

국내 공정무역(FAIRTRADE)을 선도하는 사회적기업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공정무역을 통해 빈곤국가 여성 생산자들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임파워먼트를 지원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패션 브랜드 ‘그루’ △코스메틱 브랜드 ‘그루 테라피’ △리빙 브랜드 ‘꼬말핫’을 운영한다. 현재 그루 서촌점과 안국점은 직영점 형태로 운영되며, 대부분 숍인숍 형태의 매장들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몰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거 손으로 일일이 다 스티치하고 워싱한 거예요. 정말 아름답죠?”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가 보여준 제품은 수공예로 만든 원피스. 디자인이 정교해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어 놀라고, 아름다운 디자인에 또 한 번 놀랐다. 이 대표는 “요즘은 수공예 디자인을 적용한 리빙제품과 천연 성분을 사용해 만든 코스메틱 제품도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그중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통합플랫폼 E-store 36.5에도 입점돼 있는 페어트레이드코리아의 천연 코스메틱 브랜드 ‘그루 테라피’에서 아르간 오일과 치우리버터를 활용한 제품 ‘오가닉 아르간(Organic argan)’과 ‘치우리버터’를 판매한다. 오가닉 아르간은 2015년에, 치우리버터는 올해 출시됐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가 올해 출시한 '치우리버터' 제품 사진./사진=페어트레이드코리아

지금은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처음 코스메틱 제품을 출시한다는 건 페어트레이드코리아에게는 도전이었다. 화장품은 위생관리가 중요하고, 특히 천연 제품은 변질될 수도 있어서다. 이 대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공정무역 콘셉트를 가져가되, 국내 벤처기업과 연결해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을 택했다”며 “현재 페어트레이드코리아와 연계된 기업은 사회적기업은 아니지만, 발효 부분에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가 출시한 ‘오가닉 아르간’에 주요 재료로 사용되는 아르간 오일은 화장품의 고급 소재이자 국내 소비자들의 높은 요구를 반영해 선택했다.

“아프리카 모로코에 아르간 열매를 채취하고 가공하는 여성 소농 협동조합이 있어요. 소농 생산자들이 아르간 열매를 수거해서 현대적이고 위생적인 공장에서 가공하죠. 그곳에서 아르간 오일을 수입해 공정무역 아르간 콜랙션을 출시했어요.”

최근에 선보인 치우리버터는 기존의 시어버터(Shea Butter)와 비슷한 제형으로 치우리나무의 열매를 채취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갈아 만든다. 현재 치우리버터는 샘플 수준으로 5000여개가 생산됐다. 이 대표는 “치우리버터를 생산하는 현지의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고, 생산자들의 수익이 매우 적다. 하지만 점점 치우리버터에 대한 수요가 늘고, 내수기반이 성장하고 있어 더 많이 판매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은 치우리버터를 활용한 화장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치우리버터의 양을 확인하고, 인프라 구축에 대해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직영으로 운영되는 ‘그루’ 안국점./사진=이로운넷

환경활동가에서 공정무역 기업가로 변신한 이유

2007년 설립된 후 2008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은 페어트레이드코리아를 이끄는 이미영 대표는 과거 패션업에 몸담았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환경단체 활동가 출신이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환경정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환경개발센터연구원으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7년간 여성환경연대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그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하며 여성 환경 문제 해소를 위해 노동환경 개선 등 단편적인 접근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에코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 해외 여성환경 활동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기 시작했다. 에코 페미니즘은 여성성에 기반한 자연주의로, 여성 인권 문제이자 환경이슈인 생리대 유해화학물질 문제를 대표 이슈로 꼽을 수 있다. 이 대표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급속도로 지역이 개발되고, 이 과정에서 남자들이 경제활동을 위해 지역을 떠나면서 환경과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는 등 빈곤과 환경은 밀접히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 남자들 대신 마을을 지키는 건 여성이다. 남겨진 여성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육아와 살림을 한다. 적은 금액이지만 소위 먹고살기 위한 경제활동도 여성들의 몫이다. 이 대표는 “여성들의 고된 노동 현장을 직접 보면서 가슴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빈곤여성)과 함께 실사구시적이고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죠. 빈곤국가에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비즈니스가 뭘까 고민했어요. 다양한 사례를 공부하면서 공정무역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공정무역 생산자 중 여성이 70%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바스켓 생산자 다카핸디크래프트,/사진=페어트레이드코리아

해외 빈곤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던 이미영 대표가 수공예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과 전 생산 과정을 여성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었다. 이 대표는 “노동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가 직접 여성들의 손에 쥐어진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산업화로 인해 파괴된다고만 생각했던 지역적 문화적 역사도 여성들의 손에 이어진다는 사실도 매력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지역마다 베틀 방법, 직조를 짜는 기법이나 자수, 페인팅 등 다양한 공예기법이 있는데, 이것이 여성들의 손에서 이어지고 있었다”며 “이를 비즈니스화 하기 위해 기능성과 디자인을 개선하고,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7년 그렇게 패션 브랜드 ‘그루’가 탄생했고, 2017년에는 리빙브랜드 ‘꼬말핫’을 출시했다. 꼬말핫은 의류생산은 어렵지만 리빙 제품 생산 기술을 가진 여성들의 자립지원을 위해 시작된 사업이다.

▲매장에 비치된 제품을 살펴보는 이미영 대표./ 사진=이로운넷

“항상 도전하는 비즈니스, 일의 본질에 충실해야죠”

“비즈니스는 재미있고, 보람도 있고, 매력이 있어요. 하지만 모든 기업가가 그렇듯 물건을 파는 건 항상 도전이죠. 매출이 늘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그 속도가 눈에 띄기 쉽지 않는 게 또 비즈니스인 것 같아요.”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브랜드는 단골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높은 품질에 만족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이곳의 제품을 찾는다. 더 많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을 공략하기 위한 디자인을 고민 중이다. 연령대별 선호도나 취향에 차이가 있는 의류제품 보다 리빙제품은 젊은층의 소비자들까지 공략이 가능하다. 리빙제품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과, 생산량 확대를 위한 고민을 이어가는 이유다.

앞으로는 현지 생산자와 소통하며 기술적인 이노베이션, 훈련, 시스템, 공정 등에 변화를 주는 것도 고민 중이다. 공정무역 특성 상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현지 생산자들과 공감이 필요한데, 이는 생산자들에게도 큰 변화를 요구한다. 이 대표는 “변화와 혁신 없이는 생존·성장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며 “변화를 시도했을 때 빈곤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논의하고, 이것이 시장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모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미영 대표는 민간기업 및 사회적기업가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업에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의 본질에서 경영 전략과 방향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기업가로서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도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 하나도 쉽게 해결되는 것이 없어요. 작은 것이지만 모든 일에는 경험과 역사가 녹아있죠. 하지만 일부 기업가들을 보면 쉽게 접근하고 포기하면서, 호흡이 짧아진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사회적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서 일을 추진할 때 소비자들에게 ‘원칙에 어긋나지 않고 충실히 노력한다’는 신뢰를 확보하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페어트레이드코리아에서 제일 먼저 론칭한 패션 브랜드 그루./사진=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미영 대표가 말하는 강소 사회적기업의 포인트>

1.본질에 충실한 비즈니스

기업 비즈니스의 원칙과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지향하는 사회적가치에 일관성,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2. 사회적자원 연계 및 네트워크 능력

다양한 사회적자원을 적절히 연계하고, 네트워킹해서 필요할 경우 갖고 있는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은 반드시 '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적자원이나 아이디어 등 다양한 종류가 포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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