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마을공동체로 유명한 충남 홍성 문당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다. 문당마을은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영농조합을 중심으로 생활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등이 체계적으로 결합된 지역협업공동체다. 국내 최초로 오리를 이용한 유기농법을 도입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도시로 떠났다가 나고 자란 마을로 다시 돌아와 마을대표를 맡기도 했던 주형로 도농상생연대 대표로부터 마을에 대한 소개를 받으며 우리 일행은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주 대표는 “세상에 어디 혼자서 되는 게 있나요?”라는 말을 남겼다.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10년 전 문당마을에서 들었던 그 말이 다시 떠오른 이유는 <이로운넷> 편집회의에서 올 상반기 사회적경제의 주요 이슈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회적경제 영역은 확장됐고 어느 해보다 활발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융합’과 ‘연대’였다.
특히 지역이 그렇다. 지난 7월 열린 이로운넷 2030세이가담 컨퍼런스에 참여한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로컬과 소셜이 비슷한 부분이 많고,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왔지만 잘 인식하지 못했다”며 로컬크리에이터와 사회적경제가 경계를 허물고 함께 했을 때 생길 긍정적 시너지를 얘기했다. 복잡한 사회, 특히 자원의 한계가 뚜렷한 지역에서 연대협력으로 힘을 합치는 일은 이미 진행 중이며 앞으로 더 확장될 거로 보인다.
사회적경제 교육에서도 융합은 강조됐다. 국내 일반대학원 중 유일하게 사회적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석·박사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이화여대는 사회적경제 전공을 협동과정으로 설계해 운영한다. 사회복지학, 디자인학부, 북한학과 등 전혀 다른 색깔의 14개 전공과 기업가센터 교과목으로 구성했다. 복지·경제·사회·경영·주거·환경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현장에 적용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이 과정을 설계한 조상미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장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는 융합형 인재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전국협동조합협의회 창립, 프랜차이즈협동조합연합회 출범, 157개 네트워크 생태계 ‘세이프넷' 출범 등이 지난해와 올해 모두 이루어졌다.
김재춘 가치혼합경영연구소장은 연대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고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주체가 모든 전문성을 가질 수 없다. 사회변화를 꿈꾸는 혁신 활동가라면 협업에 대한 식견과 경험, 지식을 가져야 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으로서 ‘파트너십’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도 다른 자원을 합칠 때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전혀 다른 영역의 주체와 논의하다보면 제3의 해결책이 찾아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사회적경제조직들과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진 소셜벤처들이 '임팩트얼라이언스'라는 협의체 구성에 나선 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을 중심으로 활발해진 소셜벤처 그룹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하마드 유누스를 보며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까 고민하며 등장한 청년세대가 주를 이룬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시대적 어젠더나 집단적 의식보다는 개개인의 꿈이 가치와 일치됐을 때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이들을 정의했다. 운동적 지향보다는 사업으로 사회변화에 기여해보자는 마음으로 창업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사회문제의 주요 해결방안으로 정부나 제도의 변화보다는 시장을 중요한 변화의 시작점으로 본다. 시장에서 승부를 보지 못하면 떠나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협업이 쉽지 않은 특성을 지녔다. 그런 이들이 올해 초 협의체 구성을 준비하고 오는 9월 출범을 앞두고 있다. 회원으로 가입한 기업만 100여개에 이른다.
이쯤 되면 연대와 협력은 붐이다. '각자도생'이 우스갯소리처럼 유행어가 되고 경청보다 주장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들은 왜 함께하려 합을 맞추는 노력을 할까.
9년째 초록리본도서관장을 맡으며 매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개그우먼 김지선 씨의 이야기 속에도 답은 있다.
"내 아이만 잘 돼선 이 사회가 절대 좋아질 수 없어요. 모든 아이들이 잘 돼야 우리 애도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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