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 스틸 컷. 재난 상황 속 두 주인공의 모습이 한국 사람들에게 옥상은 일상적인 공간이 아님을 보여준다./사진제공=(주)외유내강

“왜 이 동네는 옥상 문을 다 잠그는 거야?”

지난 18일 기준 7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영화 ‘엑시트(EXIT)’의 대사다. 긴급 재난 상황에서 건물 옥상으로 탈출하려는 등장인물들은 단단히 잠긴 문 앞에서 좌절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옥상 문이란 영화에서처럼 잠겨 있는 게 더 익숙한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옥상은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발을 들여놓기 힘든 ‘미지의 공간’ 같기도 하다.

무섭거나 위험한 혹은 낯설거나 어려운 ‘옥상’을 보는 시선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꽁꽁 닫힌 문을 열고 텃밭이나 공원 같은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더니, 도시 경관을 즐기는 문화 공간, 시민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 등 다방면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 ‘2019 혁신파크포럼’에서 ‘옥상 공유지’를 주제로 한 세션 진행 모습./사진제공=서울혁신파크

지난 13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2019 혁신파크포럼’에서 ‘옥상 공유지’를 주제로 한 세션이 진행됐다. 국내에서도 옥상 활용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는데, 대표적으로 시민단체 ‘열린옥상’은 혁신파크 내 옥상을 사회적?문화적?생태적 공유지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네덜란드에서 옥상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두 단체의 감독이 참석해 옥상 활용 사례 및 활성화 방안 등을 공유했다.

암스테르담 ROEF “옥상 잠재력 보여주고 키우고 연결해야”

먼저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의 옥상 단체 ‘루프(ROEF)’의 렘코 문 마르카르(Remco Moen Marcar) 대표가 세계 주요 도시의 옥상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렘코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옥상을 적극 활용하는 경우는 전체 2% 남짓”이라며 “옥상은 도시에서 여러 실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혁신적 주거 공간, 기후변화 대응지역, 시민들의 공공장소 등 이점이 많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루프탑 페스티벌'의 모습. 소음 방지를 위해 참가자들이 저마다 헤드폰을 끼고 디스코 파티를 즐기고 있다./사진제공=ROEF

렘코 대표는 ‘ROEF’에서 연구한 옥상 활용에 관한 5가지 트렌드를 발표했다. △거대한 도시화: 도시 인구 증가로 발생하는 문제 해결 △공공장소 부족: 닫힌 공간 개방해 잠재력 발휘 △에코 시티: 녹지 조성, 빗물 활용 등 친환경 활동 △식량 생산: 평지?햇빛?빗물 활용해 소비자 가까이에서 식료품 재배 △지속가능한 건물: 85도 이상으로 오르는 태양열 및 빗물 활용해 건물 난방 및 물 자체 조달 등이다.

지난해부터 옥상에서 ‘루프탑 페스티벌’을 선보인 ROEF는 올해 9월에도 옥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축제를 연다. 렘코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옥상의 잠재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Show),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옥상의 가능성을 키우며(Grow), 네트워크를 확대해 도시 내 여러 옥상을 서로 잇는 것(Connect)”이라고 밝혔다.

로테르담 다큰다흔 “기계가 차지한 옥상 공간, 시민에게 돌려줘야”

로테르담 루프탑 페스티벌 진행 모습. 아티스트가 음악을 연주하거나 시민이 휴식하는 복합 공간으로 옥상이 이용된다./사진제공=Dakendagen

네덜란드 제2의 도시로 불리는 로테르담의 옥상 단체 ‘다큰다흔(Dakendagen)’의 리온 판 헤이스트(Leon van Geest) 대표가 발표를 이어갔다. 인구 60만 도시 로테르담의 건물 옥상 면적을 더하면 약 1km²로, 동쪽에 위치한 크랄링세 플라스 호수와 맞먹는 크기다. 

다큰다흔은 로테르담 옥상을 활용해 매년 6월 첫째 주 약 1주일간 축제를 여는데, 올해 행사에는 65개 옥상에 총 2만 2000여 명 관광객이 몰릴 만큼 인기 행사였다. 리온 대표는 옥상 축제 인기 비결에 대해 “사람들이 옥상에서 찍는 사진을 ‘섹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리온 대표는 “도시가 사람들로 밀집화하면서 살 곳이 부족해지고, 쉴 만한 공간도 모자란 현 상황에서 옥상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 옥상은 대부분 기계가 차지했는데, 사람들에게 개방해 서로 만나 교류하는 공공장소로 쓰는 방향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옥상 활성화 “더위?추위 극복할 혁신 프로그램 설계해야”

13일 열린 '2019 혁신파크포럼'에 참석한 네덜란드 옥상 단체 ROEF의 렘코 문 마르카르 대표(오른쪽)와 Dakendagen의 리온 판 헤이스트 대표의 모습./사진=박재하 에디터

날씨가 매우 덥거나 춥고 미세먼지 탓에 공기 질이 나빠 야외 활동이 어려운, 더군다나 인구 1000만이 넘는 대도시 서울에서 어떻게 하면 옥상 활동을 늘릴 수 있을까. 렘코와 리온 대표는 한국의 옥상 공유지 활성화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리온 대표는 “이미 활용 가능한 옥상의 문을 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번에 서울에 와서 잠깐 건물 옥상을 봤는데, 실제 20곳 이상에 나무가 있었다”며 “이런 옥상 중 개방이 안 된 곳도 있고, 개방됐는데 사람들이 잘 모를 수도 있다. 처음부터 모든 옥상을 전부 바꾸려 하기 보다는 몇 곳을 정해 ‘옥상은 멋진 곳’이라는 긍정적 인식을 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렘코 대표는 “옥상 활동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하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옥상은 잠재력이 많은 공간인데, 만약 더위가 문제라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그늘이나 수영장을 만들고, 추위가 문제라면 야외에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등 창의적 방법을 생각해 보라”면서 “장애물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의 서울혁신파크와 네덜란드의 ROEF, 다큰다흔 등 3개 단체는 옥상 프로그램 등 정보 공유 및 글로벌 옥상 프로젝트 네트워크 구축 등을 골자로 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을 바탕을 향후 옥상 공유지 활성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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