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초록리본도서관에서 진행된 김지선 아줌마와 함께 책읽기+희망토크콘서트 현장. 도서관은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폭염 경보를 뚫고 모였다. 지난 10일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 잡은 초록리본도서관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청소년들과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들로 북적댔다.

‘김지선 아줌마와 함께 책읽기 + 희망토크콘서트' 시간이다. 그날의 동화책은 ’용기가 사라진 날‘. 초대 손님은 로봇 천재 20대 CEO인 '럭스로보'의 오상훈 대표가 나왔다. 이 행사는 매월 1회씩 9년째 이어지는 도서관 장수프로그램이다. 개그우먼 김지선 씨는 초록리본도서관의 공동 관장이다. 

초록리본도서관은 사회복지NGO '러빙핸즈'가 운영한다. 러빙핸즈는 조손이나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일대일 어른 친구를 맺어줘 성인이 될 때까지 멘토링을 해준다. 그는 2010년 러빙핸즈에서 홍보대사로 인연을 맺었다가 덜컥 도서관장까지 맡게 됐다. 어느새 9년. 바쁜 연예 활동 중에도 시간을 쪼개 러빙핸즈와 함께 하는 김지선 씨를 초록리본도서관에서 만났다. 

 

애들에겐 놀이터가 필요해

 

러빙핸즈와 인연을 맺은지 9년이 되는 김지선 씨는 "이름만 걸어 놓는 홍보대사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 "소신을 갖고 꾸준히 관계를 맺고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초록리본도서관은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모래나 철봉, 미끄럼틀이 아니라 책이 있는 곳이죠. 요즘 청소년들은 언니·오빠들처럼 카페에서 공부하는 걸 따라 해보고 싶어해요. 하지만 그런 공간은 커피값이 비싸고 오래 앉아 있으면 눈치도 보이죠. 초록리본도서관은 카페를 차려놓고 책으로 벽지를 둘렀다고 보시면 돼요. 

음료와 음식은 유기농이고 애들한테는 1000원을 받습니다. 푼돈이라도 받는 이유는 이 공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에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보드게임을 하거나 피아노를 칠 수도 있어요.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서관에 신청하면 함께 배울 친구들을 모집해 멘토 선생님을 연결해줍니다. 영상 제작에 관심이 많은 저희 큰애도 이곳에서 영상 수업을 듣고 있어요. 

 

나는 왜 책 읽어주는 아줌마가 됐나?

 

성대모사의 달인답게 김지선 초록리본도서관 관장은 동화를 실감나게 읽어내 청중들에게 상상력과 재미를 선물했다.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와 공동으로 도서관장을 맡으면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결론은 책 읽어주기였어요. 방송을 하며 성대모사도 많이 해봤고 발성 훈련도 받았거든요.  동화책은 길이는 짧지만 연령대나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달리 느낄 수 있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어 좋아요. 

성우 안지환 씨가 초대석에 나왔을 때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을 읽으며 함께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책 내용 중에 애벌레가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다른 애벌레를 밀치고 밟아야만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저에겐 그 모습이 마치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아 목적의식 없이 남들 따라 하기 급급한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어요. 동화책엔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희망토크콘서트는 연사를 초대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코너이지만 실은 부모님들이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기다려주라... 다그치지 말라

 

영재발굴단이란 TV프로그램과 러빙핸즈에서 활동하면서 저의 가치관도 많이 변했습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 

재능나눔을 해주시는 분들이 공통으로 하는 얘기가 있어요. ‘지켜봐 주고 기다려줘라’ 강압적으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다그치지 말고 애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라는 거죠. 물론 쉽지는 않아요. 

길게는 40살이 되도록 헤맬 수도 있고 (웃음).. 분명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100세 시대에는 우리의 직업도 2-3번 바뀔 수밖에 없어요. 첫 번째 직업을 안 가지면 어때요?  2-3번째 직업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밑거름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거죠. 

 

해(害)가 되는 경험은 없더라

 

김지선 관장과 오상훈 럭스로보 대표(오른쪽). 오 대표는 희망토크 콘서트에 나와 자신의 성장과정과 꿈을 향한 도전기를 들려줬다.

희망토크콘서트의 초대 손님은 성공했거나 유명한 사람들만 모시는 건 아니에요. 프로듀스 101에서 탈락했던 친구가 나온 적이 있어요. 그는 학창시절 친구를 괴롭힌 적이 있었고 이 내용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큰 시련을 겪게 된 이야기를 해줬어요. 

“지금은 많이 뉘우치고 달라졌지만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미래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과거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나쁜 행동이 내 꿈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라고 충고해줬습니다.
 
하지만 그는 “난 아직 24살에 불과하다. 어떤 일이 내 앞에 펼쳐질지 모르지만 두렵지 않다. 나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해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세상에 해가 되는 경험은 없다는 것, 그 경험이 비록 본인에겐 치명타가 됐겠지만 다른 사람에겐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놀라운 교훈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죠.

 

내 아이의 장점을 보는 눈을 키워야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줄 때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가족은 잘 안돼요. 

저만해도 자꾸 지적하고 잔소리를 합니다. 안 좋은 이야기로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파놓기도 하고요. 아이를 넷 키우다 보니 다른 엄마랑 통화할 일이 많아요. 그때마다 서로 남에 애가 갖고 있는 장점을 이야기하며 부럽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남의 애가 아무리 잘나 보여도 바꿔서 살 순 없잖아요.

전 요즘 다른 엄마들이 이야기해주는 우리 아이의 장점들을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애 장점은 당연한 것이고 단점은 빨리 고쳤으면 좋겠다는 식에서 벗어나 보려고 해요. 저 역시 제가 개그맨이 됐을 때 부모님이 ‘정말 지지한다. 열심히 해봐라’ 하셨고 그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김지선아줌마와 책읽기+ 희망토크콘서트는 매월 둘째 토요일(올 추석엔 7일) 초록리본도서관에서 오후 2시~4시까지 진행된다. 지금까지 약 50회가 열렸다.

 

축복받은 삶.. 나만을 위해 살지 말라는 뜻

 

살면서 제게도 힘들었던 고비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개그맨이 된 후에는 무대 뒤에 공허감 때문에 8년 만에 한국을 잠시 떠나 있었고 출산 뒤에는 우울증이 심했어요. 그때마다 저를 붙잡아 일으켜 준 건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동료들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나누기 위해 저도 후배들을 위한 작은 모임들을 만들어가고 있고 러빙핸즈에 꽂힌 것도 아마 일대일 어른 친구 맺기의 중요성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김지선 관장은 장학금을 받은 청소년들이 "저도 힘들고 어려운 친구들이 있다면 꼭 관장님처럼 그 애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할때 무척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지선 관장은 해마다 5000만 원 이상을 장학금으로 내놓는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로 나가는 청년들에게는 출근 준비물을, 대학을 진학하는 청년들에겐 첫 번째 대학 등록금을 대준다. 그는 9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올곧게 성장한 멘티가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며 멘토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라고 말했다.

“우리가 한 일들이 아래 세대에 영향을 줘 사랑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내 아이만 잘 돼선 이 사회가 절대 좋아질 수 없어요. 모든 아이들이 잘 돼야 우리 애도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전 우리 아이들만이 아니라 모두가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넷째를 낳고 나서 러빙핸즈와 인연을 맺었고, 그 이후 축복받을 일들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축복받았다는 건 나만을 위해 쓰란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나누기로 했습니다. 도서관장이요? 가문의 영광이죠. 힘닿는 데까지 계속해보려 합니다.”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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