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베지강의 석양/사진=이로운넷

사자의 머리에 뱀의 몸을 가진 냐미냐사가 살고 있다는 신비하고 장대한 물줄기인 잠베지강이 거기 있었다. 잠비아 북서쪽 므위리룽가에서 발원하여 빅토리아폭포와 카리바호를 이루고 짐바브웨, 모잠비크, 잠비아, 앙골라, 보츠와나, 말라위를 굽이쳐 인도양으로 유유히 흘러든다.

전설적인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톤이 찾아 나섰다가 사자에 팔다리를 물어 뜯기고 독충의 공격을 받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세상에 알린 곳이기도 하다. 말라리아로 열병을 앓다가 마침내 아내마저 잃는 등 천신만고하며 선교활동과 노예해방에 일생을 바친 불멸의 위인이 그토록 사랑한 땅을 밟으니 감회가 무한하다. 여관마다 만원이라 서너 군데를 헤매다가 가까스로 조그만 수영장이 딸린 아늑한 숙소를 정했다.

크고 작은 선셋크루즈선에는 해질녘의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감상하기 위해 세계각처에서 찾아온 유람객들로 가득하다. 악어의 무리들이 강어귀 모래톱에서 줄지어 졸고 있고 숲속에서 코끼리가 머리를 갸우뚱 내밀기도 한다.  하마 가족이 출렁이는 강물에 몸을 숨긴 채 이따금씩 콧바람으로 물을 뿜어내면서 빙판에 나자빠진 황소마냥 커다란 눈만 유람객을 향해 멀뚱거린다. 짙은 선그라스를 낀 땅딸막한 선장은 그곳을 가리키며 뱃머리를 튼다.

알라스카에서 왔다는 옆에 앉은 노부부는 망원경을 콧등에 올려놓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면서 연신 스마트폰 셔터를 눌러댄다. 멀지 않은데서 온 듯한 사람들은 토속적인 헤미올라 리듬과 틈북의 장단에 맞추어 발을 굴러가며 흥겹게 춤을 추고 끝없이 이어지는 노랫가락은 여울에 실려 떠내려 간다. 한사람이 끌어주고 여럿이 화답하듯 코러스하는 남부아프리카의 음악이 마치 우리나라의 농요처럼 들린다.

붉게 물들어 가는 로맨틱한 저녁노을이 한 폭의 데칼코마니로 강물위에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버킷리스트의 앞 순위인 잠베지강의 석양은 가히 환상적이다. 온갖 물새들이 3자, 八자를 그리며 노을 진 하늘을 낮게 종횡으로 나르고 있다. 선상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로제와인을 즐기는 사이 강의 양옆 열대림 사이로 늘어 선 그림 같은 목조 갈대집들이 하나 둘씩 불을 밝힌다.

선상환담

이집트에서 온 화가 대머리 아저씨는 며칠 더 묵으면서 잠비아 강의 경치를 깨알 같이 낱낱이 그려서 본국으로 돌아가 작품전시회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나일강과는 다른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하며 거듭 포도주를 주문하고 잔을 권했다.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었지, 저이가 이 강이 간직한 수많은 사연도 그림에 담아낼 수 있을까,,, 대자연과 인간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공존하는 이상향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과 같이 이국의 풍정을 즐기고 환담하며 풋정이 들어 이다음에 또 만나자고 한 재회 약속이야 지켜지기가 어렵겠지만 그 강은 이제나 저제나 그대로 거기 있으리라.

어둠이 깔리고 인근 한 카페에 들렸더니 벽에 그려진 태극기가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소인가 했는데 여러 나라의 국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작년 러시아에서 개최된 월드컵 본선 진출팀의 국기들이라고 했다. 현지인 매니저를 불러 태극기의 잘못 그려진 4괘를 종이조각에 그려 주었더니 죄송하고 고맙다고 굽신하고 군말없이 내일 화가를 불러 새로 그려 놓겠다고 한다. 지구촌 구석까지 대한을 알린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리빙스톤박사가 걷던 숲길을 따라 느릿 느릿 신의 걸작품인 빅토리아 폭포에 올랐다. 대륙을 장검으로 자른 듯한 천애절벽에 마치 흰 비단을 아래로 길게 드리운 듯 장엄하다. 가마득한 깊은 계곡 아래로 떨어져 부서지는 물소리는 우렁차다. 필자는 절구 한수로 감회를 읊었다.
 
 千尋絶岸膽肝驚 천길 낭떨어지에 간담이 서늘한데
 萬瀑轟音天地動 만장폭포의 굉음이 천지를 진동 하네
 忽現猿群回路杜 갑자기 나타난 원숭이떼들이 돌아가는 길을 막아서니
 或如客子挽留情 아마도 길손을 붙들어 더 머무르게 하려는 뜻이 아닐는지.

빅토리아 폭포/사진=이로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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