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rt style="green"] [맨발 달리기]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사람은 원래 맨발로 달렸다.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맨발 달리기의 그 자연스러움에 대해 길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은,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려한다. [/alert]

1부: 인류는 달린다 ? ⑤ 결정적 증거,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

밀라노 Villa Reale에 있는 아킬레스(Achilleus) 상.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 영웅.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이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황천의 스틱스 강물에 몸을 담갔는데, 어머니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됐다. 아킬레스 건(腱 )의 유래. 사진출처: Flickr>florathexplora

"발은 공학의 걸작이자 예술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말이다. 다빈치는 과학기술자이자 예술가였다. 수학?물리?천문?해부?지리?토목?기계 등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했고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 걸작을 남겼다. 다빈치는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인체를 해부하고 연구했다.

천재 다빈치가 남긴 말이라지만, 발이 정말 예술 작품일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자연 속에서 맨발로 단련된 투박한 발에서도, 수십 년 동안 신발의 보호를 받은 연약한 발에서도,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멋진 ‘작품’을 본 기억이 내게는 없다.

미술평론가 유홍준 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설파했다. 예술 작품을 알아보고 감상하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술 작품인 발의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하는 나는 그럼 공부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걸까? 나도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발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내 눈에 발의 예술성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발을 왜 예술 작품이라고 여기는지 다빈치는 설명하지 않았다. 발이 왜 공학의 걸작인지도 근거를 대지 않았다. 다빈치는 결론만 툭 던졌다. 내 생각에 그건 그가 퉁명스러워서가 아니다. 천재는 소통에 서투르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일반인에게 이해시키는 데 약하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천재가 이른 경지가 까마득히 높은 것이다. 둘째, 천재는 보통 사람도, 자신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력을 갖추고 있겠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여하튼 천재 다빈치는 자신의 ‘발 연구’의 결과를 후세에게 과제로 남겼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되, 다빈치처럼 발을 예술 작품이라고 평가한 사람은 드물다. 천재도 틀릴 때가 있다. 그러나 발은 다빈치 외에 많은 과학자가 연구했고, 다빈치와 같은 결론을 냈으며, 일반인이 알기 쉽게 설명했다.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인체 발 공학’을 익혀보자.

사진출처: Flickr> robswatski

발이 “공학의 걸작”인 이유
두 발의 골격은 52개의 뼈로 이뤄져 있다. 한 발에 26개다. 발 뼈 52개는 우리 몸 전체 뼈 206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인대 214개가 발 뼈를 지탱하고, 38개의 근육이 발을 움직인다. 발뒤꿈치와 종아리 사이에는 인체에서 가장 큰 건(腱)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인대는 뼈와 뼈를 연결하는 조직이다. 건(腱)은 근육을 뼈에 붙이는 결합조직으로 ‘힘줄’이라고도 불린다. 근육은 수축해 힘을 내는 반면 인대와 힘줄은 수축하지 않고 늘어나는 힘에 저항함으로써 제 역할을 한다. 누르면 반발하는 스프링이 아니라 잡아당기면 다시 원상으로 돌아오는 스프링처럼 작동한다. 다른 비유를 들면 인대와 힘줄은 고무줄이다. 당기면 늘어나고 놓으면 수축한다. 힘줄은 편한 상태의 길이에서 약 10%까지 늘어날 수 있다. 잡아당겨졌다가 놓인 힘줄은 원래 상태로 수축하는데, 이때 수축력은 당기는 데 사용된 힘의 93%에 이른다.

발 뼈의 수가 많다는 사실을 들어 발이 그만큼 정교한 구조물이라고 강조하는 설명이 적지 않다. ‘투박하게만 보이는 발이 얼마나 치밀하게 짜인 구조물인지 짐작하겠지?’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서술은 충분하지 않다.

사람 발은 손과 비슷한 모양에서 진화해 현재에 이르렀다. 사람 발 뼈의 숫자 52개가 손 뼈 숫자 54개와 가까운 이유다. 따라서 사람 발을 연구할 때 뼈가 많은 점은 강조할 대목이 아니다. 다른 영장류와 비교해도 사람 발은 뼈가 많은 편이 아니다. 침팬지 발에도 뼈가 많다. 침팬지는 발이 손과 모양이 비슷하고 발로도 손으로 하는 여러 가지 동작을 할 수 있다. 침팬지 발 뼈의 숫자는 아마 사람 발 뼈의 숫자에 버금갈 것이다.

사람 발이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의 발과 다른 점은 다른 데 있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이다. 사람 발에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아치가 발달했고, 다른 영장류보다 아킬레스건이 훨씬 길고 강하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은 호모 속에서 발달했다. 호모 속의 사촌 격인 오스트랄로피테신에서는 발달한 아치와 강한 아킬레스건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발의 아치는 두 방향으로 쌓아올려졌다. 하나는 발뒤꿈치에서 발가락 쪽으로 세로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발등의 가로 방향이다. 아치 구조와 함께 나타난 조직이 족저근막이다. 족저근막은 띠 모양의 두껍고 강한 섬유 조직이다. 발뒤꿈치뼈에서 시작해 발바닥 앞쪽으로 다섯 갈래로 뻗어나가 발가락 밑 부위에 붙어 있다. 발의 아치가 펴졌을 때 고무줄처럼 작용해 아치가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도록 한다.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도 한다. 족저근막 역시 영장류 중 사람만 갖추고 태어난다.

아치와 아킬레스건은 달리기용
인류학자는 뼈를 좋아한다. 인류학은 새로 발견된 뼈로 인류 역사의 공백을 메워왔다. 사실 인류학자에게는, 선행 인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골 말고는 연구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인류학자는 두개골에서 뇌의 용량을 추정하고 턱뼈와 이빨로부터 섭취한 음식의 종류를 짐작한다.

오스트랄로피테신도 뼈만 남겼다. 오스트랄로피테신의 발 뼈는 아치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신에서는 아킬레스건이 발달하지 않았음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아킬레스건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그것의 크기를 추정했을까? 데니스 브램블 유타대 생물학 교수와 다니엘 리버만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 교수는 “아킬레스건이 붙는, 뒤꿈치뼈에 가로로 파인 홈”을 들어 설명한다.

뼈와 근육을 잇는 힘줄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당기는 힘에 잘 버텨야 하고 뼈에 단단히 붙어있어야 한다. 힘줄이 뼈에 강하게 부착되도록 돕는 구조가 홈이다. 큰 힘이 걸리는 힘줄일수록 폭이 넓고 깊이 파인 홈에 뿌리를 붙인다. 두 연구자는 “오스트랄로피테신의 발뒤꿈치뼈에 있는 아킬레스건 홈은 크기가 침팬지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전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아킬레스건 홈은 그보다 훨씬 크다. 이로부터 오스트랄로피테신의 아킬레스건은 침팬지의 아킬레스건과 비슷했고, 현생 인류의 것보다 작았다는 판단이 나온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발견된 호모 속의 초기 종 유골에는 발뒤꿈치뼈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신과 다른 진화의 경로를 밟은 호모 속의 어디에선가 아킬레스건이 커지고 강해지는 변이가 일어났다고 본다. 그랬지 않았다면 호모 사피엔스가 강한 아킬레스건을 물려받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린 인류학자도, 해부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도 힘줄이 이는 뼈의 홈을 확인할 수 있다. 닭고기를 먹을 때면 닭다리에서 뼈와 근육을 있는 힘줄을 찾아보라. 그리고 그 힘줄이 뼈의 어디에 어떻게 부착됐는지 확인해보자. 닭다리를 뜯으며 잠깐 아킬레스건과 인류의 기원을 상상하는 것. 이 또한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은 우리가 걷는 동안에는 별 역할을 하지 않는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은 달리는 동작을 돕는다. 달릴 때 착지 충격을 완화하고, 나아가 몸이 땅에 부딪히는 힘을 다시 몸에 되돌려준다. 완충과 반발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달릴 때 착지 충격은 걸을 때의 두 배에 이르고, 몸무게의 3~4배가 가해진다. 이 충격을 아치와 아킬레스건이 어떻게 흡수하고 활용할까? 아치는 알파벳 U자를 뒤집은 뒤 완만하게 펴 놓은 모양이다. 맨발로 달릴 때에는 발의 앞부분부터 땅에 닿는다. 이 때 아치가 펴지면서 충격을 흡수하고, 아치 구조와 족저근막의 역할로 아치가 원형으로 돌아가면서 받은 힘의 일부를 발 위로 돌려준다.

아킬레스건은 인체의 힘줄 중에서 가장 크고 강하다. 발 뒤꿈치뼈에 붙어 있고 장딴지근육으로 연결된다. 달릴 때 발 앞부분으로 착지하면 장딴지에 있는 근육이 수축되면서 충격이 일부 흡수된다. 장딴지 근육이 수축되면 여기에 붙은 아킬레스건이 강하게 잡아당겨진다. 팽팽하게 신장된 아킬레스건은 원래 상태로 돌아오려는 힘을 발생시킨다. 아킬레스건이 원 상태로 수축하면 몸에 어떤 힘을 줄까? 아치가 원형으로 돌아갈 때처럼 몸을 위로 미는 힘을 준다.

아킬레스건이 작동하는 원리를 달리지 않더라도 다음 동작으로 체험할 수 있다. 손으로 난간을 살짝 잡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두 발 앞부분을 계단에 올려놓자. 체중을 강하게 실어 뒤꿈치가 계단 평면보다 아래로 내려오도록 해보자. 몸이 다시 조금 올라온다. 아킬레스건이 당겨졌다가 수축되면서 주는 반발력이 작용한 결과다. 물론 이 동작에서 아킬레스건이 인장되는 과정은 달릴 때 아킬레스건이 당겨지는 과정과는 다르다. 하지만 당겨졌다가 줄어드는 원리는 같다.

사진출처: Flickr>roujo

사람은 캥거루처럼 뛴다
이런 원리로 아킬레스건은 사람이 캥거루가 뛰는 것과 같은 원리로 달리도록 돕는다. 캠벨 등이 쓴 <생명과학>은 “캥거루가 착지할 때 순간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뒷다리의 힘줄에 저장한다”고 설명한다. “멀리 뛸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힘줄에 저장된다. ‘눌린 용수철처럼’ 힘줄에 저장된 에너지는 다음 도약에 사용되면서 에너지 소모량을 줄여준다. 이러한 용수철 효과는 곤충 개 사람의 다리에도 적용되어서 캥거루보다는 덜 하지만 걷고 달리는 동안 에너지를 저장한다.”

이대택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는 “사람이 달리는 동안 발이 땅에 닿을 때는 몸에 저장된 일정량의 기계 에너지가 땅에 전달된다”며 “이렇게 땅에 전달된 에너지는 모두 소실되는 것이 아니라 아킬레스건과 아치를 통해 되돌아온다”고 설명한다. 착지 에너지 중 일부가 반발력으로 되돌아온다. 반발력은 위로 작용하지만 그 힘이 앞으로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달릴 때 우리가 몸의 무게 중심을 착지한 발의 앞에 두기 때문이다.

착지 에너지 중 얼마나 되돌아올까? 리버만과 브램블은 논문에서 “아킬레스건을 비롯한 인체의 힘줄은 달릴 때 신진대사 비용의 약 50%를 절감해준다”고 주장한다. 두 연구자는 또 “발의 아치는 달릴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약 17%를 돌려준다”고 분석한다. 이들 수치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내가 맨발로 달려본 바로는 에너지 절감 효과가 기록으로 나타날 만큼 뚜렷하지는 않았다. 맨발을 충분히 단련하고 맨발 주법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 맨발 기록은 아직 신발 기록에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잠시 후 생각해보기로 한다.

달리기는 걷는 동작을 빠르게 한 결과가 아니다. 달리기는 걷기와 판이한 운동이다. 이는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이 걸을 때엔 상대적으로 기능을 하지 않지만 달릴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은 인류가 갖게 된, 힘을 덜 들이고 오래 달리는 능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이 없었다면 선행 인류는 오래 달리지도, 오래 달려서 사냥하지도, 사냥으로 얻은 단백질을 듬뿍 섭취하지도, 뇌 용량을 획기적으로 키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거친 인류는 달리기에 적합한 몸으로 태어난다. 인체는 걷는 기계가 아니라 달리는 기계다. ‘달리기에 적합한 26가지’는 선택사양이 아니라 기본사양이다. 정상적인 사람으로 태어난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그러나 달리기에 적합한 기본사양은 둘로 나뉜다. 어떤 기본사양은 누구나 활용한다. 달리다보면 저절로 쓰인다. 예를 들어 달리면서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달릴 때 원숭이처럼 머리가 어깨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은 달리기에 적합한 구조와 조직이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났으면서도 많은 사람이 제대로 쓰지 않는다.

사진출처: Flickr>TiffanyLynn Photog
좋은 신발 두고 굳이 맨발로?
“많은 사람이 발을 설계된 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렇게 물어볼 독자가 있으시리라. 사람 탓이 아니다. 신발 때문이다. 러닝화는 대부분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이 제 구실을 하는 걸 방해한다.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겨나리라. “신발을 신고 달리면 맨발로 달리는 데 비해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을 덜 활용한다고? 그렇다면 다른 조건이 비슷할 때 맨발에 익숙한 러너는 신발 신은 러너보다 기록이 좋아야겠네?”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옛말 중 족탈불급(足脫不及)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족탈불급은 신발을 벗고 뛰어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이 제 구실을 하는 데 신발이 족쇄가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신발은 옛날 신발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화했다. 우리가 신는 러닝화는 충격을 흡수하고 반발력을 주는 소재로 만들어졌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이 신발에 감싸여 제 구실을 하지 못하더라도 신발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첨단 신발은 기능으로만 따지면 맨발을 능가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 러닝화는 충격을 흡수하고 그 중 일부를 반발력으로 돌려준다. 반발력이 맨발보다 다소 좋을 수 있다. 내가 맨발로 달린 기록이 아직 신발 기록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엘리트 마라토너 중 맨발로 뛰는 선수가 없는 까닭도 비슷하리라고 본다.

논의가 여기에 이르면, 맨발로 달리는 내 처지가 좁아진다.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사람은 달리도록 태어났다. 맨발로 달리도록 태어났다. 맨발로 장거리를 달리도록 태어났다. 신은 사람을 맨발로 오래 달리도록 창조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맨발로 달려야 한다.”

이 주장은 다음 반박에 직면한다. “신은 사람을 맨발로 오래 달리도록 창조했지만, 사람은 신발을 발명했다. 사람이 맨발로 달리도록 태어났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좋은 신발을 두고 굳이 맨발로 달려야 하나? 맨발이 러닝화보다 달리기에 유리하지 않은데? 또 맨발로 뛰면 발바닥을 다칠 위험이 있는데? 발목과 무릎 관절도 훨씬 큰 충격을 받을 거다. 나는 신발 신고 뛰련다. 맨발, 너나 실컷 즐겨라.”

다음 회부터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풀어놓을 생각이다. 발을 설계에 따라 활용하는 달리기 방법과 발 건강, 여기에 비추어 뜯어본 신발의 문제를 살펴본 뒤, 맨발 달리기에 버금가는 운동을 알려드리겠다. 지금까지 이야기가 주로 여러 자료를 생각으로 버무려 자아낸 것이라면, 앞으로 펼칠 내용은 배운 지식을 경험으로 녹여낸 ‘산 지식’이다.

유홍준 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알게 된 만큼 안다’고 본다. ‘스스로 겪어 알게 된 만큼 안다’는 뜻이다. 앎은 머리에 입력한 정보와 직접 쌓아온 경험으로 나눌 수 있다. 배운 걸 경험해보고 축적된 경험을 배운 정보에 비추어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온전한 지식을 얻게 된다. 겪어보지 않은 채 입력한 정보는 껍데기 지식이다. 나는 맨발로 달리면서 뼈와 힘줄과 근육으로 우리 몸에 대한 몇 가지 지혜를 터득하게 됐다.

참고 책
- 이대택, 인간 사냥꾼은 물 위를 달리고 싶어했다, 지성사, 2009
- 캠벨 등, 생명과학, 바이오사이언스, 2008

관련 자료- Dennis M. Bramble & Daniel E. Lieberman, Endurance running and the evolution of Homo, Nature 18 Nov. 2004
- 이수찬 등, 내 발 사용 설명서, 한국경제신문, 2009

(*편집자 주 :백우진 필자의 [맨발 달리기] 는 매주 금요일 에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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