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이 개최한 ‘2030 세이가담-로컬, 가치를 담은 미래’ 컨퍼런스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가치로 '지역'을 조명했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울릉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콘텐츠로 활동하는 이들을 통해 지역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다. 본지는 이번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지역에 기반해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을 연속으로 조명해 본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윤현석 컬쳐네트워크 대표는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는 문화적 도시재생을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역만의 유일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라고 합니다.”

광주광역시를 기반으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는 윤현석 컬쳐네트워크 대표는 스스로를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했다. 지역 내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가치를 창출해내고, 이를 주민들과 공유해 보다 살기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것이 주요 목표다. 

지난달 열린 이로운넷 사회혁신 컨퍼런스 ‘2030 세이가담-로컬, 가치를 담은 미래’에서 오직 광주에서만 마실 수 있는 수제 맥주를 소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윤 대표는 지역에서 나는 밀로 맥주를 만들어 2016년 양조장 ‘무등산 브루어리’와 펍 ‘애프터 웍스’의 문을 열었다. 광주의 명산 ‘무등산’을 브랜드명에 넣고, 무등산을 상징하는 ‘수달’을 마스코트로 삼았다.

소규모지만 유일한 지역 맥주 “펍 오려 일부러 광주 방문”

무등산 브루어리의 수제 맥주는 광주만의 히스토리와 스토리를 담아 개발했다. 최근 다양한 지역맥주가 개발되면서 외부에서 펍을 방문하러 일부러 광주를 방문하는 맥주 팬들도 많다.
광주 무등산 국립공원을 상징하는 '수달'을 브랜드 마스코트로 내세웠다. 윤현석 대표는 "보통 주류 마케팅은 섹슈얼한 접근이 많은데, 귀엽고 친근하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역 작가와 협업해 캐릭터를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직접 개발한 수제 맥주 6종 안에도 광주만의 맛과 스토리텔링을 넣어 차별화를 꾀했다. △진한 술 색깔이 무등산 억새밭을 닮은 ‘무등산 필스너’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며 만든 ‘평화 페일에일’ △광산구에서 생산한 밀로 만든 ‘광산 바이젠’ △무등산 수박과 히비스커스 꽃잎을 더해 만든 ‘워메2 사워 IPA’ △무등산 수박과 초콜릿을 조화롭게 섞은 ‘워메3 Nutty IPA’ 등이 그 이름부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명동에 자리한 펍 역시 1963년 지어진 양옥주택을 개조해 옛것에 새로운 것을 더한 ‘뉴트로(New-tro)’ 스타일로 꾸몄다. 요즘 말로 ‘힙(hip)한 감성을 머금은 공간과 특색을 더한 수제 맥주 덕분에 먼 지역에서 일부러 펍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다. 윤 대표는 “맥주 한 잔만으로 지역을 만날 수 있다”며 “이 맥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광주에 오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일본, 유럽 등의 유명 양조장에서 지역의 재료로 술을 빚고, 마을을 지키는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수제 맥주’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무엇이 나고 자라는지 관심이 많았다”며 “우리밀의 70%가 광주에서 생산되는데, 밀가루나 건빵 등 제품 생산에 그친 것이 아쉬워 맥주를 만들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규모로 생산하고 있지만,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맥주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재생 지속가능하려면 ‘생산’ 중요…마을 산업단지 이루고파

맥주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브루어리 펍은 지어진지 50년 넘은 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옛 감성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더해져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펍 외에 동네 안에 작은 제조업체 여럿이 모인 커뮤니티로의 확장이 앞으로의 목표다. 맥주와 어울리는 소시지를 만드는 육가공 공장, 맥주를 만드는 홉으로 비누나 반려견 간식을 만드는 업체 등 ‘생산’을 중심으로 하나의 산업단지를 이뤄가는 것이다. 윤 대표는 “도시재생의 핵심 가치는 생산”이라며 “내가 하는 일을 일종의 ‘도시제조업’이라 생각한다”며 이야기를 이었다.

“서울의 익선동, 경리단길 등 관광객이 많이 모인 지역을 보면 대부분 ‘소비 마을’이에요. 외부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뿐 생산이 거의 없죠. 지역 안에서 생산이 이뤄져야만 산업이 되고, 생태계 순환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소비가 아닌 생산에 중점을 두면 소상공인들이 다른 업체와 경쟁하기보다 협력하고, 지역 주민과도 만나는 접점을 고민하게 돼요.”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윤 대표는 군 제대 후 진로를 찾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로컬 크리에이터’의 길로 들어섰다. 광주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립 당시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이 생겨 석사로 문화기획을 공부했고, 이후 문화적 도시재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박사로 도시계획을 전공했다. 

2013년 문화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컬쳐네트워크’를 설립한 뒤,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도 받았다. 지역 기반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마이밈(MYMEME)’을 개설해 문화예술인이 경제적 부담을 덜고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광주 토박이인 그는 나고 자란 지역을 무대로 ‘세계청년축제 청년마켓’ ‘1913송정역시장 청년상인 창업’ ‘도시형 마켓 모태보태’ 등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했다. 무등산 브루어리 역시 컬쳐네크워크의 결과물인 셈이다. 

컬쳐네트워크에서 2016년 진행한 '1913송정역시장 청년 상인 창업' 프로젝트. 쇠퇴한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빈점포 17개에 입점할 청년 상인을 모집해 교육 및 컨설팅을 진행했다.

제주 감성 담은 의류 출시, “광주에서 실험, 타지역 변주 가능”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도시재생’에 대해 윤 대표는 “무엇보다 도시철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지역이 가진 역사와 이야기를 무시하고, 경관이나 편리함만 따르면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그는 “행정가나 학계의 일부 사람들이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닌, 실제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존중하며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철학으로 삼아 도시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컬쳐네트워크는 광주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확장도 고민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지난 7월 새로 출시한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아일랜드 리서치’다. 제주도 자연을 모티브로 지역만의 감성을 디자인해 담았다. 제주 서문시장에서 오랜 시간 포목점을 운영해온 재봉 기술자들과 협업해 옷을 만들었으며, 여름용 상?하의에 이어 현재 가을용 외투를 기획 중이다. 윤 대표는 “우리나라의 섬에 매력을 느껴 울릉도, 흑산도 등 다양한 에디션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태어나고 사는 곳이 광주라서 이곳을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의 실험은 광주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에요. 지역의 풍토에 맞는 실험에 어떤 결과를 얻으면, 타 지역이나 나라에서도 충분히 변주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른 곳에서 저를 보고 비슷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도 하고 싶어요.” 

컬쳐네트워크에서 최근 출시한 의류 브랜드 '아일랜드 리서치' 화보. 제주도 만의 감성을 넣어 디자인하고, 지역 인력을 활용해 옷을 만들었다.

사진제공. 컬쳐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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