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사회에 ‘제로포장’운동으로 핫 이슈가 되었던 프랑스의 유기농 전문매장 '비오쿱(Biocoop)'. 그 조직의 활동보고서를 보고 필자는 그 철저한 친환경적 운영 방식에 놀랐다.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성장을 해왔다는 점에서 저성장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부문에 시사점이 있을 듯하여 직접 가서 조사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이번에 만나 인터뷰를 한 본사의 전략본부장에 따르면, 비오쿱은 연평균 28% 정도를 성장해왔고, 미국발 서브프라임의 여파로 2010년 유일하게 낮은 성장을 기록했을 때도 5% 성장률을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적자가 아님에도 운영 비용을 낮추기 위해 출장이나 회의를 줄여 교통비를 아끼고 화상회의로 대체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어 극복했다는 사실이다.      

유기농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전 세계가 저성장시기로 접어들어 경기가 침체되는 이 때, 비오쿱은 도대체 어떤 힘으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프랑스의 유기농 전문매장 '비오쿱(Biocoop)'은 연평균 28% 정도를 성장해왔다.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을 협동할 것인가?

비오쿱은 한국의 대표적인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과 동년배이며 비슷한 역사를 가진다. 시작은 1970년대 유기농 제품을 공급하고자 했던 소비자들이 결사하여 공동구매를 추진했는데, 이들이 70년대 말 생산자들과 함께 양질의 유기농 소비를 확산하고자 유기농업 지원에 나서면서 설립한 게 바로 소비자협동조합 ‘les coops’이다. 이후 체계화되지 않고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유기농업의 현실에 직면하여 2개 광역 단위의 소비자협동조합으로 분화되어 1983년에 서부지역에서 'Intercoop'을, 1984년에 남동부 지역에서 'Biopaïs'를 설립했다. 하지만 유기농업의 구조화를 위해 1986년에 전국 단위의 모임을 개최하였으며, 이후 비오쿱(Biocoop)이라는 명칭의 결사체(association)로 단일화하며 설립 헌장을 제정하였다. 비오쿱은 당시 이미 40개의 상점(매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2002년에 비오쿱은 일반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더 이상 소비자협동조합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600여개가 존재하는 비오쿱 상점, 20여개의 농민생산자그룹, 비오쿱 본사 및 상점, 농민그룹에서 일하는 400여 명의 임금노동자, 그리고 3개의 소비자단체로 조합원이 구분되는 다중이해당사자 구조의 협동조합으로 현재 재구성되었다.  

비오쿱의 조직 체계에서 흥미로운 점은 600개의 상점이 똑같은 형태가 아니라 상점 스스로 법인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노동자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40%이고, 나머지 60%는 유한회사 형태로 운영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 상점은 비오쿱 본사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므로 개별 상점이 협동조합이건 아니건 기본적으로는 협동조합의 질서를 따른다는 점이다. 

비오쿱이 이런 구조를 가지게 된 경위는 비오쿱 매장의 입구에 크게 써붙여 놓은 비오쿱 헌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비오쿱의 설립헌장>

 

1. 우리 비오쿱 상점 네트워크는 공정함과 협동의 정신으로 유기농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우리는 생산자 공동체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하여 보다 엄격한 사회적, 환경적 기준을 준수하며 공정한 부문별 사업을 만들어간다. 
3. 우리는 활동의 투명성과 공급품의 추적 가능성을 약속한다.
4. 우리는 양질의 유기농업을 보장하기 위하여 관련된 전문 분야의 모임에 참석한다.
5. 우리 비오쿱 상점은 교류의 공간이며, 책임소비를 알리는 공간이다.

이런 독특한 구조를 가진 비오쿱이기에 필자는 본사의 전략본부장인 뱅상 후슬레(Vincent Rousselet, 이하 V.R) 씨와 11구에 소재한 상점의 대표 올리비에 드로(Olivier Drot, 이하 O.D) 씨를 따로 만나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를 진행하며 비오쿱이 어떻게 어려운 시기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한 조직으로 성장해 올 수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비오쿱 본사의 뱅상 후슬레 전략본부장(오른쪽)과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회장 

비오쿱 중앙(본사)과 지역 상점은 '운명공동체'

▶ 김신양 : 비오쿱은 상점, 농민(생산자)그룹, 노동자, 소비자단체가 조합원이 되는 독특한 구조인 것 같다. 그런데 상점 중 협동조합도 있고, 일반기업도 있는데 전체 운영에서 어려운 점은 없는가?     

V.R : 모든 상점은 한 표를 가지는 본사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협동조합이든 아니든 동일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예컨대 상점은 총 매출의 2%를 출자해야 한다. 2017년 총 매출이 100유로면 2유로를 출자하고, 2018년에 총 매출이 110유로면 0.2유로를 추가하여 출자금은 2.2유로가 된다. 따라서 매장의 매출이 증가할수록 본사 또한 발전한다.

▶ 김신양 : 적자가 난 매장을 지원한다고 들었는데 기준이 무엇인가? 일을 게을리 하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적자가 난 경우를 어떻게 판별하는가? 혹시 매출 부진의 요인을 분석해보았는가? 

V.R : 매장에서 일하기 싫어서 게을리 했다면 그들이 이 가게에서 일하기 싫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여기 있을 리가 없다. 대부분은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부 분란이 있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비오쿱 매장의 노동자들은 노동 조건도 좋고 유기농제품과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데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매년 평균 40개 정도 매장의 매출이 부진하다. 요인을 분석해보니 근처에 경쟁업체가 등장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때, 협동조합에서 임원이나 소비자들끼리 갈등이 있어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경우였다.        

비오쿱 매장의 노동자들은 노동 조건도 좋고 유기농제품과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데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유기농은 신뢰의 문제, 고객은 비오쿱이 원칙을 지킨다는 것을 안다

▶ 김신양 : 한국에서는 조합원들이 많지만 적자를 보고 있어 염려가 크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비오쿱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V.R : 우리는 성장을 멈춘 적이 없다. 우선 유기농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이고, 우리 비오쿱이 시장의 성장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유기농은 신뢰의 문제이다. 유기농은 제품의 질은 물론 투명성, 인접성(공정무역) 등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다 신뢰를 가지게 했고, 비오쿱이 이런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래서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인 독일을 따라잡는 수준에 이르렀다.     

2010년에 낮은 성장을 거둔 적이 있는데, 이건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라 생각한다. 연 성장률 28%에서 5%로 추락했다. 이 때 인력 감축은 하지 않고 비용 절감을 했다. 계획된 투자를 연기하거나 운영 비용 절감으로 극복한 셈이다. 특히 이동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회의 횟수를 줄이는 등의 노력을 기율였다. 매사에 조금씩 절약했다.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모든 부분에서 줄이고, 그것을 다 모으면 큰 돈이 되는 것이다. 또 판매 진작을 위한 노력(홍보 등)을 기울였다. 현재는 성장이 회복되어 신규 매장을 확대 중이다. 2018년에 70개 신규 매장이 오픈했다.  

▶ 김신양 : 다른 유기농 매장이나 대형마트의 유기농 코너에 비해 비오쿱의 비교 우위는 무엇인가?

V.R : 우선은 제품의 질이다. 우리는 관행보다 더 까다로운 규칙을 적용한다. 100% 유기농이어야 한다. 예컨대 빵에 건포도가 유기농이 아니더라도 유럽연합의 기준에 따르면, 유기농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비오쿱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프랑스 유기농 시장의 25%가 해외 수입품이다. 우리는 아르헨티나나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라 국내 먹거리를 취급한다. 소비자들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원산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셋째, 맛은 개선 중이며 최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편이다. 특히 과일과 야채는 제철 식품을 공급하고 있기에 아주 인기가 좋다.   

▶ 김신양 : 요즘 사람들이 시간이 없거나 귀찮아서 반조리제품이나 완조리제품 등 가공품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비오쿱은 어떠한가?

V.R : 우리는 이런 제품을 줄이는 중이다. 너무 요리가 된 제품은 과대포장 문제도 있지만 너무 많은 식재료가 들어가 유기농인지 아닌지 다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고객은 시간이 없어 간편한 것을 원한다. 우리는 쉽고 빨리 요리하되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혁신 중이다. 이를 위해 연구소와 스타트업 인큐베이팅하는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조리제품의 포장 또한 재이용 가능하도록 한다. 야채와 과일의 계절성도 지킨다. 우리는 겨울에 토마토를 판매하지 않는다(난방을 하는 비닐하우스 재배를 금지한다). 농민그룹과 이를 지키는지 확인한다.

비오쿱은 다른 유기농 매장에 비해 제품의 질을 중요시한다. 100% 유기농이어야 한다.

“탈핵을 주장하면서 핵에너지를 쓰면 안되죠” 

▶ 김신양 : 입구의 출입문에 100% 재생에너지 사용 마크가 붙어 있는데, 에너지 전환 관련 실천을 소개해달라.

O.D : 모든 매장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본사의 규칙이다. 우리는 비오쿱이 출자하여 설립한 재생에너지협동조합 'Enercoop'이 공급하는 전기를 사용한다. 프랑스는 전기공급네트워크(enedis.fr)는 단일하나 공급자는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구조이다. 우리 매장은 약 4년 전부터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왔는데, 약 20% 비싸지만 사용한다. 

또한 가게 운영을 위해 사용하는 차도 디젤 엔진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매장에 오는 배송탑차는 가스 차가 10%이며 확장 추세이다. 매장의 박스와 벌크 판매하는 목재 과일 야채 상자는 본사에서 수거하여 재활용 처리한다.

비오쿱의 모든 매장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 김신양 : 이러한 이유로 비오쿱은 다른 가게보다 가격이 조금 더 비싸지 않는가?

O.D : 우리의 목표는 저가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오쿱 본사의 임금 정책은 업종 단협에서 정한 수준을 10% 정도 상회하여 좋은 일자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건 의무는 아니지만 아주 강력한 권고사항이다. 또한 매장의 운영의 어려움을 겪어 매출이 부진할 때 본사에서 보조해준다. 지원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필요할 경우 1~2년 동안도 가능하다. 

“비오쿱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정치적인 선택이다”

▶ 김신양 : 고객들에게 있어 비오쿱의 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O.D : 비오쿱 마크가 주는 신뢰가 있다. 비오쿱에 오는 것은 고객들의 정치적 선택이다. 녹색당을 찍는 것과 비오쿱에 물건을 사는 것은 같은 행위이다. 사실 사람들은 비오쿱에 투표를 하러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김신양 : 질도 좋고, 뜻도 좋은데 맛은 어떤가? 고객들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은가?

O.D : 보통 맛은 좋은 편이다. 일단 제철 과일과 야채를 취급하고(계절성), 노지 재배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유기농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감자튀김 때문이다. 이건 아주 간단한 요리인데 감자와 올리브유만 써도 맛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다른 제품들은 화학제품이라 제 맛이 나지 않았다. 

 


비오쿱 성공의 비결?...'무너지지 않은 협동의 원칙'과 '철저함'

비오쿱의 핵심 운영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활동을 조사하는 내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그건 ‘철저함’과 ‘강력한 협동 체계’이다. 

우선 비오쿱은 전국적인 규모의 거대한 조직이지만 권력이 중앙집권화되지 않고 각 매장에 독립성을 부여한다. 물류 체계 또한 4개 권역으로 분산하고, 지역물품도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어 지역화와 중앙화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비오쿱의 중앙은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체계가 아니라 철저한 재분배 정책을 실시한다. 매장이 어려울 때 매출을 보조하여 지원함으로써 연대를 실천하여 충성심과 소속감을 이끌어낸다.

비오쿱 상점은 조합원이 아니라도 이용할 수 있지만 비오쿱의 철저한 유기농 정책, 에너지 전환 정책에 신뢰를 가지고 있기에 비오쿱의 이용을 정치적 선택으로 사고하여 충성도를 확보한다. 특히 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 비용 부담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탈핵의 정책을 실천하고, 유기농을 안전식품으로만 여겨 무조건 많이 팔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유기농업의 발전을 위해 계절성을 지키는 원칙 등 일관된 운영 방침이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는 주요인이 된다. 

비오쿱은 노동자를 본사의 조합원으로 두며 노동의 이해를 적용할 뿐 아니라 좋은 직장이 될 수 있는 정책을 실현한다. 95%가 정규직이며, 원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또한 단협을 통한 부문의 통상 임금 수준을 상회하는 임금을 유지하도록 강력히 권고하고 있으며, 매출 부진으로 임금을 체불하거나 인상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앙에서 보조하는 정책을 실천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은 편이다. 

초기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중앙의 정책 실현 의지 또한 중요하다. 자회사를 설립하여 기금을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유기농으로의 전환을 지원하고 있으며, 청년 유기농 생산자를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 또한 중앙 본사의 총회에서 채택하여 전 매장이 준수하도록 매장의 운영 조건에 포함시키는 결단력을 보인다.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회장

사진제공=김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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