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고래 같은 놈이 될 거다.”
어릴 적 옆집 아저씨의 말에 신기용 인라이튼 대표는 고래가 궁금해졌다. 알수록 멋진 구석이 많았지만 그중 그의 맘을 사로잡은 건 ‘약자에 대한 배려심’ 이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 사이에선 한 마리가 병이 들거나 다치게 되면 무리에서 도태되거나 버려집니다. 하지만 고래 사회에서는 그 한 마리를 다른 고래들이 떠받혀서 천천히 이동합니다.”
포경선은 이런 고래의 습성을 악용해 무리 중에 가장 작고 약한 고래를 잡아 끌고 간다. 이를 본 다른 고래들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따라오기 때문이다. 포경업자들은 새끼가 잡히면 그 곁을 부모가 떠나지 않는 고래의 성격을 이용해 새끼 고래를 계획적으로 먼저 잡기까지 한다.
신 대표는 공동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약자를 내치지 않는 그런 고래의 습성에 감명 받았고 옆집 아저씨의 예언대로 고래 같은 사나이가 됐다. 인라이튼은 2014년 창업 이래 ‘버리지 않고 고쳐쓰기’라는 지속가능한 서비스로 가전 쓰레기(e-waste) 문제를 해결하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시니어 기술 장인들과 특성화고 학생들의 일자리 창출에 골몰하고 있다.
“ 제 경영철학에는 밝은 곳을 더 밝게 비추기보다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고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고래를 닮고 싶다는 또 한명의 청년을 만났다. 김재령 웨일러블 팀장이다. 그는 학업을 잠시 중단 한 휴학생 신분으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가치나눔 청년 기자단 2기로 활약하며 사회적가치 전파에 힘쓰고 있다.
김 팀장은 이달 초 웨일러블<Whalable>이란 팀을 꾸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와디즈를 통해 어린이 화상 환자들의 치료비를 모금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다. 리워드로 준비한 티셔츠에는 고래가 그려져 있다.
김 팀장은 “고래처럼 사회적 약자들에게 속도를 맞추어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팀의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 신분으로 자본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며 제작비를 마련했다.
펀딩은 종료 5일을 남겨둔 현재 목표 금액의 130%를 달성했다. 그에게 크라우드펀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 한 저소득층 지체장애 아동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모금하는 펀딩을 대학 선배와 함께 진행해본 경험이 있다.
그는 지난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마련한 <청년 사회적경제 캠프>에 참여하고 난 뒤 사회적경제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회적기업가들의 강연을 들으며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은 움직임들이 모이면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기울어진 운동장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외고대 일반고, 강남과 강북,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누구나 어느 한 쪽이 몹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올라간 곳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낮은 곳을 떠 받혀 올림으로서 수평을 맞추는 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움에 있어 고래처럼 기울어진 쪽을 떠 받쳐주는 것이 어떨까.
최고의 선생님을 일반고에 보내 교육혁신을 일으키자. 강북에 사회적 인프라를 우선 구축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어렵게 하는 장벽을 허물자. 장애인이 편리한 세상으로 우리 모두가 편리한 세상을 만들자.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려고 만든 지하철 엘리베이터 덕분에 무거운 가방을 든 사람들이나 유모차를 끄는 보통의 엄마들이 편리해졌듯 말이다.
고래의 습성에서 사회적경제가 나아갈 길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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