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1인 가구, 기후변화, 디지털화 등 현대사회의 새로운 사회문제는 과거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사람, 자연 등을 중시하는 사회적경제 역시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변화 속에서 새로운 사회혁신 전략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역’이다. 구체적 삶의 문제가 존재하는 곳이 우리가 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시민 스스로 실행 방식을 다양화하고, 문제의식을 달리할 때 그 힘이 더 강해질 것이다.”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지역 위기를 넘어 소멸론 마저 나오는 요즘, 여전히 ‘지역이 미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25일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이 개최한 사회혁신 컨퍼런스 ‘2030 세이가담-로컬, 가치를 담은 미래’에는 사회적경제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250여명이 참가해 지역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갔다.  

12개 지역 13명의 발제 및 토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원주, 춘천, 옥천, 홍성, 괴산, 완주, 광주, 목포, 부산, 울릉도, 김포, 서울 등 12개 지역 13명의 발제 및 토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이번 자리는 다양한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청년들이 정주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컨퍼런스의 사회를 맡았던 양동수 더함 대표는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식의 당위가 아니라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공간, 내 인생을 설계하는 공간으로서 로컬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던 자리”였다며 “로컬의 매력과 가능성을 둠뿍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사회적경제 범주에서 활동하지는 않지만 여러 지역에서 로컬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이들이 발제·토론자로 참여해 로컬크리에이터와 사회적경제가 경계를 허물고 함께 할 수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로컬과 소셜이 비슷한 부분이 많고,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왔다는 걸 여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지역은 지금?...위기 넘어 소멸론까지 대두 

컨퍼런스에서는 지역이 처한 현실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특히 지역 인구 감소는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세션 발제자로 나선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대표는 “우리는 한 가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화폐적 발전 모델을 기반으로 성장하지만 인구 감소 현상이 나타나면서 화폐적 발전 모델은 더 이상 적용할 수 있는 발전 방법이 아닌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구 감소는 지역경제를 작은 영향에도 큰 타격을 받는 취약한 구조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인사말을 전한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은 “한국 사회에서 지역, 지방은 1960년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로 점점 힘을 잃고 약해진 상황”이라며 “60년을 지나오며 지방소멸 문제까지 직면했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 위기를 얘기하며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분은 ‘지역에 청년이 없다’라는 점이다. 

괴산에서 문화학교숲 활동을 하는 홍남화 활동가

괴산에서 문화학교숲 활동을 하는 홍남화 활동가는 “서울에서 영상회사를 다니다 쉬러 괴산에 내려와 5년째 거주 중”이라며 “서울에 있을 때보다 삶의 질이 높아져 만족스럽지만 또래 청년들이 주변에 없다는 게 늘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있는 청년들이 괴산을 떠나지 않고, 또는 수도권 청년들이 함께하는 방안을 찾는 게 요즘 화두라고 설명했다.      

전체 인구가 9800명에 불과한 울릉도에서 마을기업 정들포에 핀 울릉국화를 운영하는 이병호 이사는 “울릉도에 정책지원이 많아 일손이 필요한데 이를 실행할 청년이 지역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옥천에 근거지를 두고 지역사회를 다루는 월간지 ‘월간옥이네’ 김예림 기자는 "'지역은 곧 소멸되는 곳'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가 더 많은 청년들을 떠나보내고 있다"며 "누구도 몰락한다는 곳에 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의 이야기·강점 발견해 연결...새로운 비즈니스, 청년들 정주하는 도시로

무엇보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지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또는 따로 살아가는 사례들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무등산브루어리는 광주의 밀과 보리를 활용해 지역 수제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을 직접 운영한다. 지역의 랜드마크가 된 무등산브루어리 매장./사진제공=무등산브루어리

지역이 가진 강점과 역사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광주의 '무등산브루어리'가 대표적이다. 무등산브루어리는 밀과 보리를 활용해 지역 수제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을 직접 운영한다. 광주가 전국에서 우리 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맥주 이름도 ‘무등산 필스너,’ ‘광산 바이젠’ 등 고유 지명을 쓰고,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윤현석 대표는 “지역에서 창업하는 사람들이 카페나 레스토랑을 만들어서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을 이끌어 사업이 짧게 끝나는 사례가 많다”며 “지역의 이야기와 장소를 활용해 생산이 중심이 되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무등산브루어리는 광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해 다양한 지역에서 고객이 찾아온다.

‘재미’, ‘자신의 삶’을 중요시하는 청년들이 정주하고 싶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들도 소개됐다. 목포의 괜찮아마을은 타지에서 내려온 청년들이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마을을 운영하고자 다양한 실험이 펼쳐지는 곳이다. 목포 원도심의 빈집을 활용해 공간을 만들고, 저렴한 가격에 그곳에 머물면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며 살아간다. 현재 괜찮아마을에는 지난해 6주간 진행된 프로젝트를 계기로, 장기 체류하는 청년이 29명이 됐고, 7개의 창업팀이 만들어졌다. 괜찮아마을을 기획·운영하는 ㈜공장공장의 박명호 대표는 "지역에서 청년들의 일자리와 머물자리를 고민하는 곳"이라며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함께 살아가는 혁신공동체를 꿈꾼다"고 말했다.   

목포에 괜찮아마을은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함께 살아가는 혁신공동체를 꿈꾼다./사진제공=공장공장

김포에서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어웨이크는 김포 청년들을 모아 요리를 하고 밥을 함께 먹는 파티인 ‘김동파(김포 동네 파티)’을 열어 현재 200명이 모였다. 김동파의 성장은 김포시에 청년과를 만드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원주 언어재활치료기관 두루바른사회적협동조합에는 지역 대학을 졸업한 청년 재활치료 전문가들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힘쓰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2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며, 이 중 15명이 정규직이다. 정주형 이사장은 “많은 재활 치료 전문가들이 수도권에서도 계약직으로 일하는 반면, 우리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꾸준히 정규 월급을 받고, 수도권보다 생활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고 수도권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직원들이 원주에서 계속 일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이 미래가 되려면?...성장보다 '순환'에 초점

컨퍼런스에서는 시민들의 일상의 문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탄생한 사회적경제가 지역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도 함께 얘기됐다. 

김인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은 “이미 양적으로 풍성해진 사회적경제 조직이 새로운 채비를 해야 하는 현 시점에 지역이야말로 순환적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며 “지역의 변화를 통해 사회적경제가 궁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풍요롭고 건강한 사회로 성큼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대표는 지역발전의 핵심을 '성장'이 아닌 ‘순환’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환적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대표는 지역발전의 핵심을 '성장'이 아닌 ‘순환’에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순환에 집중하기 위해 지역경제순환 지표를 도입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지역경제의 구멍을 막고, 중앙정부의 지원과 예산을 지역에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방법”이라며 “지역의 사회적자본을 높이기 위해 중간지원조직이 지역에 더 밀착하는 것도 사회적경제를 순환 시키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지역에 가보면 사회적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구현하는 로컬크리에이터(지역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은 비즈니스로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그럼에도 일부 지방정부, 공공기관, 단체장들은 지역 청년 창업가들을 보고 ‘지역의 소상공인’ 정도로 생각하지 이들을 지역의 미래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진. 최범준(이로운넷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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