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열린 사회혁신 컨퍼런스 ‘2030 세이가담-로컬, 가치를 담은 미래’에서 기조강연 하는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 수석.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 수석은 “우리 사회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르게 인식하고, 다르게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5일 오후 1시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열린 사회혁신 컨퍼런스 ‘2030 세이가담-로컬, 가치를 담은 미래’에서 하 전 수석은 ‘지역의 자립?자치와 사회혁신’을 주제 기조연설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이 창사 11주년을 맞이해 개최한 첫 번째 행사로 사회적경제 분야이 핵심 주제인 ‘로컬’을 주제로 했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 약 7개월 동안 머물렀던 하 전 수석은 도시와 지역,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안고 돌아왔다. 베를린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공간, 현상 등을 통해 그가 떠올린 사회가치와 사회혁신에 관한 생각을 청중들과 공유했다.

하 전 수석은 ‘지역의 자립?자치와 사회혁신’을 주제로 강연하며 독일 베를린에서의 경험을 공유했다.

하 전 수석은 먼저 ‘베를린의 동네 가게는 왜 망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베를린의 작은 동네에 머물던 그는 “한국과 달리 이곳의 상점들은 잘 망하지 않을뿐더러 식당, 빵집, 약국 등 100년 이상 된 가게가 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실제 100년 된 동네 음식점에 우연히 들어갔는데 조용한 동네 분위기와 달리 손님으로 바글바글한 내부 광경에 놀란다.

“손님들 대부분이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라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고령사회인데, 이 동네 어르신들이 같이 식사를 하고 카드놀이도 하면서 저녁 내내 여유를 즐기시더라고요. 식당도 이들이 단골손님이니까 내쫓거나 하지 않았고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장면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하 전 수석은 “독일 노인들은 충분한 사회연금을 받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구매력’이 있다. 특히 대부분 사회주택에 살기 때문에 주거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면서 “사회안전망이 잘 작동하면 동네의 작은 가게까지도 함께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의 100년 된 빵가게에 주민들이 아침부터 줄을 사서 빵을 사는 모습. 상점 외관에 '우리는 제빵 기계가 아니라 마이스터가 직접 만듭니다'라고 써있다./사진제공=하승창

두 번째로는 ‘혁신의 실험실이 된 베를린’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베를린은 최근 전 세계 스타트업 시장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도시로 떠올랐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규제의 벽이 낮고,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진 덕분에 관련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분야는 공유차 등 ‘모빌리티 서비스’ 분야다.

예를 들어 독일의 유명 자동차 기업인 ‘다임러-벤츠’와 ‘BMW’는 각각 운영하던 차량공유 플랫폼인 ‘카투고(Car2go)’와 ‘드라이브나우(Drivenow)’를 합병해 운영하기로 했다. 하 전 수석은 “이들 기업은 단순히 자동차를 만들어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려 한다”며 “내비게이션, 주차 등 관련 서비스를 개발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최근 ‘모빌리티 서비스’를 둘러싸고 구산업인 택시와 신산업인 카카오 카풀, 타다 등의 충돌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하 전 수석은 “독일이라고 해서 신구 산업의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일정한 타협을 통해 사회혁신이 이뤄졌다”면서 “피할 수 없는 변화와 혁신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타협해나가야 할지 전략을 새롭게 짜야할 때”라는 생각을 밝혔다.  

문화예술인들이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위에 그림을 그려 벽 전체를 캔버스로, 거리를 갤러리로 만든 모습./사진제공=하승창

마지막으로 ‘오래된 공간에서 혁신을 꿈꾼다’를 주제로 베를린의 도시재생을 소개했다. 베를린에는 유독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은데,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한 덕분이다. 도시계획자 한스 슈팀만은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과거의 전통을 살리면서 일관된 건축으로 새로운 수도를 만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 덕분에 22m가 넘는 빌딩은 세우거나 옛 건물을 쉽게 허물 수 없었다.

베를린 내 오래된 건물은 문화예술가들의 ‘훌륭한 점거지’가 됐다. 빵공장이 전시장으로, 양조장이 공연장으로 바뀌고, 가스공장이 에너지 분야 스타트업의 연구공간이 됐다. 심지어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미술가들의 캔버스가 됐고, 전쟁의 흔적인 레이더 기지는 독특한 카페로 변신했다. 하 전 수석은 “도시발전에 대한 새로운 전략 덕분에 현재 베를린 안에 1000개 가까운 문화예술 공간이 있고,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3가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하 전 수석은 “기존의 패러다임과 다른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령화, 1인가구, 기후변화, 디지털화 등 현대사회의 새로운 사회문제는 과거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그는 “사람, 자연 등을 중시하는 사회적경제 역시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 전 수석의 기조강연을 귀기울여 듣는 컨퍼런스 청중들의 모습.

새로운 사회혁신 전략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역’이다. 하 전 수석은 “구체적 삶의 문제가 존재하는 곳이 우리가 사는 지역”이라며 “시민 스스로 실행 방식을 다양화하고, 문제의식을 달리할 때 그 힘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우리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분류와 질문을 통해 사회를 봐야 합니다. 무엇을 보든, 어떤 생각을 하든, 새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려는 노력이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시도가 될 겁니다.”

사진. 최범준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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