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순 몬테소리 스쿨 교장/사진=이정재 시니어 기자

잠비아(Zambia)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중부 고원에 위치한 나라다. 이웃 7개국과 국경을 접해 있고 잠베지(Zambezi)강, 카푸에(Kafue)강, 루안과(Luangwa)강이 동서남북으로 흘러 끝없는 초원을 이루고 각종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자연 그대로의 땅이다. 하지만 오랜 영국 식민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이후에는 부정과 부패로 점철된 통치로 이곳 사람들은 가난을 숙명으로 알고 옥수수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 땅에 한국에서 온 한 당찬 여성이 큰 꿈을 품고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노영순 선교사(64세)다. 기자가 7월 23일 현지에서 그녀를 만났다. 노 선교사는 파주 봉일천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다가 2005년 선배의 권유를 받고 이곳에 왔다. 처음 이곳에 와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이 태어났던 50년 전 함평 산골마을, 아니 달나라에 온 느낌이었다고 했다. 천만리 타국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독신인 박상순(74세) 선교사뿐이었고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새소리뿐이었다. 깜깜한 밤이 되면 온통 새까만 사람들이 무섭기까지 했었다.

“마치 바위와 마주한 기분이었고 제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어요. 먹거리조차 변변치 못한 황량한 땅에서 몇 명의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자니 말도 통하지 않고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거기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고 우울증마저 겹쳤지요. 마침 소통이 되는 북한에서 온 의사가 저를 살려냈어요. 그러나 이대로 다시 돌아 갈수는 없고 이 일이 저에게 맡겨진 소명이라 생각해서 남편에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곳에 와서 저를 도와 달라고 눈물로 간청했지요.”

"북한 의사가 말라리아에 걸린 저를 치료했어요. 저의 소명이라는 생각에 직장에 다니던 남편까지 오라 눈물로 간청했죠."

말을 마친 노 선교사는 옆에 있는 남편 이병운(65세) 장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3에이커의 넓은 대지에 늘어선 학교 건물들이 모두 그들 부부의 노작이다. 이 장로도 이곳에 온 후 여러 번 힘든 시련을 겪었다고 했다.

노 선교사가 세운 드림 몬테소리(Dream Montessori) 유치원과 차롬 몬테소리(Charom Montessori) 초등학교의 교훈은 ‘하나님과 겨레를 사랑하자’이다. 그는 "미래의 이 나라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을 모토로 ‘오늘 열심히 배워서 내일 나라와 민족을 이끌자' 라고 학생들에게 거듭 강조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각 교실 문 앞에는 지혜의 문, 사랑의 문, 성실의 문, 진실의 문 등이 표기된 걸개를 붙여 학생들이 드나들며 마음에 새기도록 했다.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는 1907년 로마의 슬럼가인 산 로렌츠에서 어린이집(Casa dei Bambini)을 열어 전인교육을 실시하다가 파시스트 통치를 피해 스페인, 네덜란드, 실론섬에서 교육 사업에 헌신한 교육자이다.

노 선교사는 몬테소리의 전인교육정신을 본받아 바른 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피아노반, 미술반, 컴퓨터반, 과학실험실, 예절교육실, 도서실을 갖추고 체육의 날, 야외학습, 소풍, 캠핑, 수학여행도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다.

이 학교에는 260여명의 학생과 36명의 교사가 있다. 전체 학생의 20%는 극빈자를 뽑아 학비를 면제해 주고, 각반에 1명은 꼭 장애인 학생을 편입시켜 ‘더불어 성장하는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또한 학비로 들어오는 돈의 일부로 시골마을에 샘을 파주고 학교를 세워 무료로 그 지역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지방에 3개 학교를 설립했고 앞으로 재정이 닿는 대로 그 숫자를 차츰 늘려 나갈 계획도 밝혔다.

DMS유치원 어린이들/사진제공=DMS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재/사진제공=DMS

초등학교에서 불어와 컴퓨터 교사로 일하는 에릭(Eric, 36세)은 “이 학교에서 일하게 된 것은 신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콩고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이 학교에서 일하게 된 날 온 동네사람들이 기뻐하며 축하의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고 했다. 이곳에도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신형 컴퓨터를 지원 받기를 희망했다. 한 달 전에 이곳에 와서 학교 행정실에서 사무보조에 바쁜 권도윤(24세)봉사자는 “여기 와서 봉사하게 된 것이 저에겐 더 없이 소중한 경험이고 1년간의 봉사를 마치고 귀국했다가 다시 이 학교에 돌아와서 교사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잠비아에서는 노 선교사를 돕는 봉사자들의 손길도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노 선교사는 "신형 컴퓨터도 필요하고, 컴퓨터와 전기를 다룰 기술자들, 간호 인력 등 전문인력이 짧아도 좋으니 더 많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노 선교사는 비록 미흡하지만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완성했고 앞으로 중고등학교와 교사훈련원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이 나라를 일으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현지 교사들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생각에서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 사람들에게 거짓을 뿌리 뽑고 정직을 심어주며 기술을 습득시켜 주어 참답게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고 싶다고 자신의 간절한 심정을 토로했다. 우리나라에서 단기 봉사자라도 컴퓨터, 전기 등 기술 인력과 의사, 간호사를 보내주면 이 나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노영순 선교사 부부와 환담/사진=이정재 시니어기자

노 선교사는 “어제도 오늘도 저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저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이 내일도 저와 함께 하실 줄 믿기에 나날이 감사할 따름”이라며 조용히 머리 숙이고  두 손을 모았다.

사랑과 겸양의 화신처럼 보였다. 창문 밖 놀이터에서 천진난만하게 뛰놀고 있는 어린이들의 머리 위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 내리고 저 멀리 하늘가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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