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전문미디어인 이로운넷은 창사 11주년을 맞아 '사회적경제, 미래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특별인터뷰를 연속 진행합니다. 지금의 사회적경제에 던지는 화두들을 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을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은 사회적경제계에서 '대부'로 통한다.

'사회적경제'라는 말조차 사용되지 않던 1990년대 초, 직접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사회적경제의 못자리가 된 자활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사회적경제 마중물이 될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창립을 위해 정부와 민간의 가교 역할도 자처했다. (사)나눔과미래 이사장, 서울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 의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 나서온게 꼬박 30년이다. 

하지만 그가 '대부'로 통하는 건 화려한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나눔의집', '나눔과미래', 공익활동가를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등 그가 몸담고 있는 곳들이 모두 소외된 이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로운넷에서는 창사 11주년을 맞아 지난 30년간 사회적경제 현장에서 정책 설계까지 주요 역할을 해온 송 이사장을 22일 만나 사회적경제의 오늘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나눴다. 

송 이사장은 사회적경제의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도약이 필요한 지금 시기, △내실화 △규모화 △지역화를 강조했다. 

"이 3가지를 잘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 주체들 스스로가 지금보다 더 성찰해야 합니다. 개인의 욕망 실현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사회적인 필요에 응답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민-관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도 했다. 송 이사장은 "사회적경제는 기본적으로 공공의 역할이 전제돼야 한다"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관계와 신뢰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할 때"라고 제언했다. 이어 송 이사장은 "사회적경제가 우리 사회 소금 같은 역할이 돼야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은 30여년 간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활동해온 인물이다.  

- 사회적경제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초, 협동조합을 시작하셨습니다.

▶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경제’라는 말 자체가 없던 시절이죠.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나눔의집’을 함께 하던 시절인데, 정부가 산업 구조를 재편하면서 당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서민들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어요. 나눔의집을 중심으로 산동네에 같이 살던 분들과 시작한 게 건설노동자협동조합, 도시락 공장인 ‘행복나래’, 청소 회사 ‘푸른환경’, 봉제의류회사 ‘나눔물산’ 등이었습니다. 

- 왜 ‘사회적경제’였나요?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 일하는 사람들이 소외되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힘든 게 뭔지 아세요? 물질의 결핍이 아니라 바로 소외와 배제에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 사회의 ‘주체, 주인’이 아니라 ‘대상’이라는 사회적인 낙인 등이 그렇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고민하다 해외에서 봤던 ‘사회적경제’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가난한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인이 되고, 사회 일원으로 인정받는 일본 등 해외 노동자협동조합을 보며 이윤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경제활동이 대안이 되겠다 생각했죠.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 지금의 사회적경제 기반이 된 자활센터를 만드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셨는데요. 

▶ 나눔의집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여러 시도들을 했지만 우리의 경험을 더 많은 곳으로 확산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정부에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자립을 돕는 자활센터를 제안했죠. 당시만 해도 ‘사회적’이라는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던 때라 사업제안서에는 ‘빈곤 대책 생산자협동조합’으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1996년 5월 자활지원센터가 만들어졌고, 지금은 전국에 249개 지역자활센터가 활동 중입니다. 

자활센터의 탄생은 우리 사회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장에서 탈락한 이들이 다시 재기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물리적·정신적 가난 2가지 문제를 동시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자활센터 출신들이 지금의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의 못자리가 되어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빈곤사회정책 모델로도 평가받았습니다.  

아쉬운 건 자꾸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고 ‘자활사업의 경제적 역할이 미비하다’, ‘시장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입니다. 저는 이런 목소리는 자활의 본래 기능을 무시한 겁니다. 예를 들어 현재 자활과 함께하는 30여만 명이 다시 사회로 나온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건가요. 

또한 '자활센터'를 사회적기업으로 만들라는 요구가 있는데, 이는 자활센터가 만들어진 설립 취지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국가의 사회보장체계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자활센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16조에 의거, 저소득층에 대한 효과적인 자활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자활센터를 통해 이행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자활을 물리·정신·사회·복지적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자활센터를 통해 만들어진 자활공동체사업단 등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지난 1월 23일 출범하고 6개월이 됐습니다.

▶ 6개월은 준비 기간으로도 부족합니다. 국내 사회적금융이 어느 정도 기반이 있었다면 더 빨리 사업이 진행 되었겠죠. 사회적금융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상황에서 시작하려니 준비 기간이 더 많이 걸립니다. 

그동안 지방정부, 금융기관, 민간, 사회적경제가 논의의 틀을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왔고, 짧은 시간이지만 각자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지역 기반의 중개기관 육성, 협력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노력을 본격화 할 예정입니다.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 봅니다. 

그럼에도 시작에 의미가 있습니다. 시작이 안됐으면 이런 논의조차도 어려웠을테니까요. 빨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합니다.  

지난 1월 23일 진행된 연대기금 출범식에서 발언하는 송 이사장./사진=백상훈 기자

-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경제가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문 정부 사회적경제 2년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 나서준 문재인 정부에 감사합니다. 이번 사회적경제 박람회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강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정부가 의례적으로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국가 중점 정책으로 생각하는 걸 확인하는 상징적인 자리였습니다. 또 하나 청와대에 사회적경제 비서관실 신설은 놀라운 일입니다. 처음에 제안했을 때 다들 회의적인 반응이었지만 실제 만들어졌고, 정부가 사회적경제를 펼쳐가는데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 정부가 적극 나서면서 관 주도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 우리나라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정부의 역할이 그동안 컸던 게 사실입니다. 저는 이걸 꼭 나쁘게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세계에도 어려 모델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아시아는 관 주도가 강하고, 유럽은 역사적으로 시민운동이 발달되어 민간의 역할이 크죠. 사회적경제로 유명한 퀘벡은 민-관 모델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몬드라곤도 성장 과정에서 관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향후로는 민간, 시민의 역량이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다만 민간-관 주도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경제가 그렇게 딱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나요. 사회적경제는 기본적으로 공공의 역할이 전제돼야 합니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생태계 내에서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관계와 신뢰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더 유연하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 사회적경제가 양적으로 확대되면서 질적 도약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사회적경제 2.0’을 고민한다면 어떤 과제가 있을까요?    

▶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서산대사의 선시(禪詩)가 있습니다. ‘답설야중거(踏 雪 野 中 去) 불수호란행(不 須 胡 亂 行) 금일아행적(今 日 我 行 跡) 수작후인정(遂 作 後 人 程)’인데요.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모름지기 허튼 걸음을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마침내 후인의 길이 되리니’라는 뜻입니다. 사회적경제와 그동안 이런 마음으로 함께해 왔습니다.   

저는 3가지 과제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내실화 △규모화 △지역화입니다.

연대기금 사무실 한쪽 벽면에 송 이장이 직접 사회적경제인으로서 지향을 적어두었다.  

- 내실화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 저도 기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처음 단계 3-5년은 사회적경제 부양을 위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우리 내부를 향해서는 냉철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자기 혁신을 하고 있는지, 사회적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제도의 틀 안에서 재정적 의존 등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경영 능력은 향상되고 있는지, 기술이 사회적으로 경쟁력이 있는지...완전히 환골탈태 해야 할 때입니다.

공공자원은 모든 시민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중 일부를 당겨쓰는 겁니다. 정체되어 있다면 우리가 제 역할 하지 않는 걸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냉정해야 합니다. 또한 개인의 욕망 실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이 좋아하는 것은 사업의 동기는 되지만 그게 사회화 되지 않으면 개인의 욕망으로만 끝납니다.  

- 지역화도 강조하셨는데, 사회적경제의 절반 이상이 지역에 있지만 많은 자원이 서울 중앙에 몰려있습니다. 사회적경제에서 지역 기반은 어떤 의미일까요?

▶ 지역화는 긴 안목으로 봐야 합니다. 지방 소멸 과정이 1960년대부터 두 세대에 걸쳐 이루어져 왔습니다. 산업화가 되면서 농촌에 있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왔습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죠. 복원에도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더 빨리 갈 수 있어요. 저는 사회적경제인들이 지역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먼저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기업 관점에서만 볼게 아니라 지역을 구성하는 주체(지방정부-공공기관-주민)와 역관계를 파악하고 내가 어디쯤에 위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지역에 기반 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지역의 필요가 뭔지 파악하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에 가는 사람들 고맙고 대견하지만 그 부분을 스스로 성찰해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내가 하고 싶은 건지, 지역 실정에 맞고 지역의 회복력 향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인지.

그 고민이 정리되면 어떻게 지역의 주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건지, 안착화할 건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분명 쉽지 않죠. 하지만 노력해야 합니다. 

- GSEF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국내를 넘어 세계 속에서 사회적경제의 역할을 고민해왔습니다.    

▶ “발은 지역에, 눈은 세계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는 초국적 자본주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멍가게 하나를 해도 다 연결되는 사회죠. 우리가 사회적경제를 왜 하나요? 빈곤, 환경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싶어서죠. 그럼 고립되면 안됩니다. 몸은 지역에 있더라도 세계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하는 게 사회적경제인으로서 태도여야 합니다. 그래서 GSEF(Global Social Economy Forum,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도 시작하게 된 겁니다. 누군가는 하겠지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먼저 찾아나섰습니다. 

제 소망은 GSEF가 다른 목소리, 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기구로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과 대등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송 이사장은 사회적경제가 우리 사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 사회적경제가 더 시민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려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문제에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사회적경제입니다. 

구체적으로 6가지 영역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첨단기술-대기업 중심이 아닌 시민, 노동이 중심이 되는 △도시문제-도시재생, 사회주택, 사회적부동산, 시민자산화 등 △환경·에너지△고령화-고령자들이 스스로 자립적인 생활양식의 기반 만들어가는 △불평등/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고 △문화예술 분야 등입니다. 

- 10년, 20년 후 미래에 사회적경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 바닷물의 소금이 3%라고 합니다. 사회적경제가 우리 사회의 소금 같은 역할로서, 전체 역량의 3%가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3%도 쉽지 않죠. 하지만 10년, 20년 전을 돌아보면 많이 발전해왔어요. 민-관이 테이블에 앉아 함께 고민하고 대화도 하잖아요? 과거를 생각하면 천지개벽이 일어난 거죠. 길게 봅시다. 지금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한 매듭이 지어져 있고 새로운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분명 도전해볼 만한 일입니다. 

 

사진=이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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