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의 측정은 어렵다. 그런데 지금 전세계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은 아니다. 이른바 “측정 없이 성과 없다”는 식의 경영관리 기법의 차원에서 중요성이 인정받고 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적경제가 대세로 떠올라서 그런가? 사실 그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가치 측정이 지금 우리시대의 절대절명의 논제로 떠 오르고 있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경제적 가치 일변도의 발전으로는 지구와 인류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냉엄한 깨달음 떄문이다.

정부의 정책, 기업의 경영, 자본가의 투자 등 모든 행위가 갖는 사회적 불균형에 대한 영향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경제성과 동등하게 고려하여 자원을 분배하는 의사결정을 해야만 이제 우리는 살 수 있다. 자원배분의 패러다임을 혁명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UN은 이미 지속가능성장목표(SDGs)로서 강조하였고, OECD, G7, G20 등 국가간 협의체 또한 뒤질세라 따라 가고 있다. 더 이상 구호가 아니고 이제 죽고 살기의 문제라는 것을 인류는 몸소 느끼고 있는 것이다.

IMP 홈페이지 캡처.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를 위해 자원배분 집행자가 의사결정으로 창출한 결과를 어떻게 자원의 원래 소유자 (예를 들어, 연금 및 정부의 경우, 공공기금과 세금을 낸 국민, 기업의 경우 주주 및 채권자 등)에게 설명하는 가의 이슈이다. 경제적 가치란 화폐가치에 의한 표현이 수월하다. 반면,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의 경우에는 이를 화폐적으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어느 정도가 잘한 것이고 못한 것인가의 기준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투자수익의 2%가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 창출을 위해 희생되었다라고 표현을 하려면 이 2%를 창출할 수 있던 재원이 투입되어 어떠한 사회적 및 환경적 가치가 대신 발생하였는지가 첫째, 명확하게 측정되어 전달되어야 하고 둘째, 그 사회적 환경적 가치의 내용과 규모가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겪는 투자자들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이 가치에 대한 측정과 설명이 주관적이고 다른 대안적인 투자 사례들에 비해 좋고 나쁨이 비교가 안 되는 성격이라면, 재원의 원래 소유자인 국민들은 사회적 환경적 가치에 대해 연금이 투자한다면 “좋지”하고 감성적으로는 일단 동의할 수 있어도, 막상 “과연 내 은퇴 이후를 보장할 돈이 잘 투자되는 것인가”라는 현실적 질문에 닥치면 합리적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사회적 환경적 가치에 대한 강조가 높아질 수록 믿을 수 있는 수준의 가치 측정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적 가치의 측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근 20여년간 전세계의 수 천 개의 전문기관과 학자들이 노력을 경주하였다. 결론적으로 측정 문제에 대한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갈 길은 먼 상황이다. 자원투입을 통한 개입(Intervention)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삶의 질이 어떻게 개선되었는가를 통해 측정하여야 한다는 개념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얼마나 노력을 투입하였는가 (Output), 즉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몇 개 제공하였는가라는 행위의 수준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로써 어떠한 삶의 질의 개선이 이루어졌는가 (Outcome), 즉 예를 들어 노인들의 건강이 도시락 제공을 통해 얼마나 증대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개입을 통해 발생된 (즉 자연적 발생이 아닌) 삶의 질의 개선을 구체적으로 어떠한 지표로 측정하는 것이 타당한가의 문제 (지표의 개념타당성, Construct Validity)를 교육, 문화, 농업 등 다양한 영역별로 표준화된 주요 지표군을 개발함으로써 진전을 이루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예, Global Impact Investment Network의 IRIS지표군 개발). 과거 유사 데이터에 기반하여 일정한 지표를 놓고 어느 정도 성과이면 상대적으로 얼마나 우수한가를 통계적 관점에서 평가하려는 노력도 있었으며 (예, GIIRs), 어떠한 삶의 질 개선이 달성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가치에 해당하는가를 묻는 이른바 화폐가치 전환의 방법론적 노력도 있어 왔다 (예, Social Return on Investment 방식). 개입이 있었던 그룹과 개입이 없었던 통제그룹간의 삶의 질 개선의 차이를 비교하여 가치 창출의 수준을 측정하는 방식 (RCT기법, Randomized Control Test)과 수혜자에게 삶의 질 개선을 직접 설문하여 가치 발생의 정도를 측정하는 Acumen의 방식까지 다양한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론의 진화가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측정방법론적 노력들이 개별적으로는 모두 의미가 있으나 통합적으로 사회적 환경적 가치의 측정에서 요구되는 답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방법론의 결과를 합한다 해도 답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양한 방법론과 문제영역을 포괄하는 공통의 프레임워크를 갖추려는 노력이 없이 개별적으로 연구를 하고 이를 각 방법론을 신봉하는 컨설팅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 확산시킨 결과로 보인다. 각 방법론이 스스로 제도화된 것이다. 공통의 프레임워크를 갖추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컨센서스 빌딩(Consensus Building)”이다. 도대체 사회적 가치란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어떻게 구현되는가, 발생시키기 위한 전략들은 대체로 어떠한 유형인가, 기본적인 표현요소들은 무엇인가 등의 근본적 논점에 대한 전문가들의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미완성적인 컨센서스라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래야지만 추가적인 논의가 진전되고 개선이 가능하다.

지난 6일 대전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 부대행사로 NAB가 주최한 ‘사회적금융과 사회가치평가 국제학술대회’ 현장. /사진=NAB

이러한 컨센서스 빌딩의 첫 단추가 최근 맞추어지고 있다. 바로 IMP(Impact Management Project)의 노력이다. IMP는 이미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18년 9월 UNDP는 SDG의 목표별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론으로서 IMP를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SDG Impact라는 어젠다를 발표하여 시행 중이다. 또한 2019년 7월 G7의 개발협력 관계장관 회의는 임팩트금융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한 측정체계로서 IMP를 활용할 것을 공식선언문에 담았다. 이외에도 USAID, UKAID, CDC 등 유수한 개발협력기관이 IMP의 활용에 동참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가치평가와 관련된 전세계 2,000여 개 이상의 기관들이 IMP의 연구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기존의 고유한 측정방법론을 개발했던 GIIN, Tonic, PRI, GRI, SASB 등의 평가기관들도 IMP와 협력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기존의 방법론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IMP의 개방적 틀 안에서 이들이 상호 보완되도록 연계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컨센서스가 없는 개별적 연구의 합이었다면 이제부터는 IMP라는 통합체제 하에서 컨센서스가 있는 협력적 진화가 이루어진다.

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고 표현하는 기업회계가 지금의 IFRS 형태로 자리 잡는데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고 이마저 아직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험적으로 누군가가 이것이 기업의 재무상황을 표현하는 정답이다라고 제시할 수는 없는 성격의 문제이고 오직 컨센서스 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회적 환경적 가치의 측정도 지금 당장은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컨센서스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게 해야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두가 인정하고 반복적으로, 객관적으로 그래서 비교가능한 형태로 진화되어 결국에는 사회적 가치의 크고 적음이 평가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문철우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방문교수 (한국임팩트금융민간자문단 NAB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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