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레오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자'는 것. 소방관들이 불길에 몸을 던져 우리를 구해줬듯이 그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우리가 도와주자는 취지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 (Rescue Each Other)’

험난한 세상에서 말만 들어도 든든한 소리다. 소셜벤처 119REO(이하 119레오)를 한 줄로 평해달라는 질문에 이승우 대표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화답했다.

그들이 함께 지켜내고자 하는 대상은 소방관들이다. 119레오는 폐방화복을 새활용한 패션제품을 제작· 판매해 그 수익금의 절반을 소방단체에 기부한다. 

119 레오는 폐방화복 뿐 아니라 소방호스 같은 소방장비도 새활용해 패션 제품을 만든다.

친환경에 상생이 더해졌다

수거한 폐방화복은 이중 세탁과 분해 과정을 거쳐 원단으로 만든 뒤 가방으로 제작된다. 새활용 제품의 특성상 품이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자활센터 봉제교육 근로자들이 맡는다. 디자인은 119레오가,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마무리는 26년 경력의 봉제 마이스터가 담당한다. 이처럼 119레오의 제품 속에는 환경을 지키려는 마음과 상생의 의미가 깃들여져 있다.

갈색 방화복은 700~800도의 고열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방염효과가 뛰어나다. 이 원단을 소재로 만든 119레오 가방들.

방화복의 내구연한은 3년. 1년간 버려지는 방화복은 1만 여벌이 된다. 방화복은 태생적으로 고강도의 신소재로 만들어져 생활방수 기능은 물론 불이 옮겨붙거나 타지 않는 방염 기능이 탁월하다. 시간이 지나도 이 기능은 여전히 존재한다.

119레오는 이런 튼튼한 소재로 가방 제작에 도전했고 점차 팔찌, 열쇠고리, 인형 등 제품군을 늘려 현재 18종의 패션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올해 4월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목표금액의 7배가 넘는 금액을 모아 119레오에 대한 인기와 신뢰를 실감케 했다.

119레오 패션제품들. 백팩에서 크로스백,파우치,인형,팔찌, 열쇠고리등 18종이 생산된다.

누적기부금 1500만 원 암투병 소방관들에게 전달

건국대학교 인액터스 회장 출신인 이 대표는 2017년 언론에서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이 시급하다는 기사를 접하고 직접 소방관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 과정에서 8년간 수많은 현장을 누비며 350명의 생명을 구한 김범석 소방관이 혈관 육종암이라는 희귀질환에 걸려 세상을 떠났지만 공상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119레오는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의 도움을 받아 공상을 인정받지 못한 암 투병 소방관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승우 대표는 건국대학교 인액터스 회장 출신으로 재학시절 119레오를 창업했다.

 

"공상이 인정되면 치료비와 유족 보상금등을 받을 수 있어 어느 정도 생활이 됩니다. 하지만 공상을 인정받지 못하면 치료비는 물론이고 복직이 안 돼 직업을 잃게 되고 가정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  이승우 119REO 대표

기부금의 1차 목적은 공상 인정을 받기 위한 소송비 지원이었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방관 4명에게 총 1500여만 원의 기부금을 전달했지만 2명은 미쳐 손을 써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1명은 승소했지만 또 다른 한 명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병마와 싸우는 소방관 대부분이 소송할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이미 치료비로 빚을 진 경우가 많고 가족들의 생활비를 댈 형편도 안 되는데 소송을 하겠다고 나서는 건 어렵기 때문이죠."

불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한 폐방화복. 소방관들은 유독한 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산다

WHO 산하 국제 암 연구학회 (IARC)는 2007년부터 소방관이 수많은 유해물질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이라 판단해 발암 업무 직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업무상 상해로 입증하긴 쉽지 않다. 

한상목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 사무총장은 “국내에선 공상을 인정받기 위해 소방관 개인이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면서 “선진국처럼 공무 수행 중 질병이 발생했을 때는 공상으로 인정하고 이를 부정하려면 국가가 연관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해 표창원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119레오란 브랜드에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옷으로 만들어졌다는 남다른 의미가 깃들여져 있다. 여기에 패션 제품으로의 디자인과 기능성이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올해 일본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 인도와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으로 뻗어나갈 채비를 하고 있지만 한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회사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성수동 소셜캠퍼스 온 9층에 둥지를 튼 레오119 사무실.

 

"기부금을 전달받은 소방관들이 속수무책으로 돌아가셨을 때 우리가 괜한 일을 한 건 아닌가라는 자책감이 들었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께 희망고문을 한건 아닌가 하고요. 이런 방법으로 암 투병 소방관들을 돕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 건 故 김범석 소방관의 아버지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2013년 작업 인부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 현장에 출동한 고 김범석 소방관.(중앙)/사진제공=119REO

 

"내 소원은 아들의 유언에 따라 공상을 인정받아 소방관이었다는 지위를 되찾는 일입니다. 119레오 덕분에 암 투병 소방관들의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됐고 이런 활동들이 계속되다 보면 언젠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 김정남 씨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

이 대표는 이후 “잘못된 길을 걷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면서 “ 기부금 전달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소방관들을 향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서로를 지켜주자는 의미에서 전시회나 토크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라고 전했다.

119레오는 연 2회 국내·외 소방의 날을 맞아 전시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지난 2월에는 국회에 계류 중인 소방 관련 법안 통과에 힘을 실어주자는 의미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소방관들과의 토크쇼도 진행했다.

이 밖에도 남자들의 자동차라는 페이스북 커뮤니티와 협업해 소방서 앞에 불법주차하지 말기 캠페인을 벌였고 119레오 소비자들에게는 택배 물건 소화전 안에 두지 않기 같은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몰아내는 운동도 펼치고 있다.

119레오가 만든 대표상품을 임직원들이 모델이 돼 선보이고 있다.

"전세계 소방관들에게 방화복을 지급하고 싶어요"

119레오는 폐방화복을 새활용해 제품을 만들지만 국내에 방화복이 보급된 지는 20년이 채 안 된다. 그 이전에는 단지 방수 기능만을 갖춘 옷을 입고 화재현장에 투입됐다.

"전 세계적으로 방화복을 입고 화재현장에 출동하는 국가는 20개국이 안된다고 합니다. 방화복이 보급되지 않은 국가의 소방관들은 개인이 구매하거나 폐방화복을 입기도 하고 아니면 방수복을 걸친 채 불을 끕니다. 제 꿈은 119레오가 명품 가방으로 자리매김해 전 세계 소방관들에게 방화복을 지급하는 겁니다. 생명을 구한 옷으로 만든 명품이란 이름에 해외개발도상국에 방화복을 지원하는 이른바 행동까지 명품인 브랜드인 거죠."

119레오는 이달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라는 미션에 따라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지리산에서 산악구조 대원으로 활동하는 정은주소방관의 사막 마라톤을 후원하는 일이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정은주 소방관. 그는 이달 두번째로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에 도전한다. /사진제공=119REO

 

"산악구조 대원은 내려올 때 혼자 몸이 아니라 부상자를 엎고 내려와야 합니다. 정 소방관은 그럴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나면서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참가비 400만 원을 마련해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오지 마라톤에 2회째 도전하고 있습니다. 250킬로미터 몽골  고비사막을 일주일 동안 완주하는 것으로 물만 먹고 식량을 짊어진 채로 뜁니다. 이번에도 역시 참가비는 자비로 마련하셨고 저희는 이 분의 달리기를 지지하는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고 그 수익금 전액을 병마와 싸우는 동료 소방관들에게 전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새롭게 선보인 캐릭터 인형.

119레오가 생명을 살린 옷으로 그려가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세상'은 점점 더 넓어져간다.

사진. 이우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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