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독재체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동안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정치?경제 시스템은 이분법으로 나눠 이해하는 것이 익숙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이 모호해지고, 둘을 가르는 경계가 무너지는 현 시점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 남북미 정상의 회담에 따라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남북관계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한반도 경제의 성장을 견인할 전략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지난 16일-17일 서울혁신파크 미래청에서는 한반도 단번도약과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을 주제로 ‘2019 서울 사회적경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컨퍼런스에서는 한반도 경제의 혁신성장 전략으로 ‘단번도약(Leap-frogging)’의 개념을 소개했다. 단번도약이란 한 사회의 생산 시스템이 전통적 발전 단계를 넘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단숨에 전환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말한다. 본지에서는 이틀에 걸쳐 열린 국제 컨퍼런스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지난 16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2019 서울 사회적경제 국제 컨퍼런스’에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을 공유했다.

남북관계 변화, 단번도약 전략과 사회적경제 경험 

최근 남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한반도 경제의 혁신성장 전략으로 '단번도약'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남북한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에 관심 있는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행사를 주관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따르면, 한반도 경제의 혁신성장 전략으로 ‘단번도약(Leap-frogging)’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단번도약이란 한 사회의 생산 시스템이 전통적 발전 단계를 넘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단숨에 전환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말한다. 제조업 산업 기반을 거치지 않고, 정보통신기술 기반 지식경제 사회로 곧장 넘어가는 것이다.

김정열 서울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은 “이번 컨퍼런스는 단번도약이라는 혁신 전략이 양극화, 환경오염 등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문제를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풀 수 있을지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라며 “북한과 유사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개혁?개방의 길을 걷는 세 국가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가 배울 점은 없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진행된 해외연사 강연회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의 도입과 사회연대경제의 경험과 가능성’을 주제로 쿠바, 유고슬라비아(동유럽), 중국의 사례가 공유됐다. 사회주의 국가에 시장경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 및 사회적경제의 가능성 등을 탐색했다. 

“사회주의 더 공고히”…아래에서 시작되는 쿠바 사회연대경제

라파엘 베탕쿠르 쿠바 하바나대 도시경제학과 교수가 ‘쿠바 경제모델 전환과 사회적경제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다.

첫 번째로 라파엘 베탕쿠르 쿠바 하바나대 도시경제학과 교수가 ‘쿠바 경제모델 전환과 사회적경제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다. 쿠바는 1961년 사회주의를 선언한 이후 약 60년간 이어오고 있다. 베탕쿠르 교수는 “남미, 동유럽의 다른 국가의 경우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로 복귀하고 있지만, 쿠바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다르다”고 말했다. 쿠바는 강한 정부를 중심으로 사회연대경제를 결합한 ‘시장이 결합된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에 적대적인 미국과의 관계에서 봤을 때, 쿠바는 60년간 경제?무역?금융상 제재가 가해진 상태다. 이는 제3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한국이 쿠바와 거래할 때 ‘달러’를 사용할 수 없으며, 외국인 투자자들도 쿠바에 자금을 투자할 수 없는 식이다. 이러한 경제적 제약 속에서 쿠바는 ‘사회연대경제’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베탕쿠르 교수는 “사회연대경제가 자본주의 시스템 내의 개념이지만, 이익과 자본보다 노동과 사람을 우선시하는 원칙 면에서 사회주의와 맞닿는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쿠바의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사회적 연대를 지속해왔으며, 국가의 번영과 안정을 목표로 발전해왔다는 의견이다. 

정부의 힘이 강한 만큼 쿠바에는 ‘공공경제’의 영역이 큰데, 국영기업 주도로 교육이나 보건, 교통, 통신 등 사회서비스에 많은 예산을 투입해 시민들에게 공급한다. ‘톱다운(Top Down)’ 방식이기 때문에 재난?위기 상황에서도 효율적 대응이 가능하다. 2000년대부터는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생겨나면서 ‘민간경제’도 발전했다. 올해에는 농업 외 분야 설립이나 협동조합의 재산, 고용 등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헌법이 개정되며 영향력을 넓히는 중이다.

베탕쿠르 교수는 “다른 나라의 사회연대경제는 민간기업 위주라면, 쿠바는 국영기업이 중심이며 국가 소유의 재산을 민중의 사회적 재산으로 이동하는 전략이 중요하다”며 “이는 사회주의를 파괴하고자 함이 아닌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쿠바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집단뿐만 아니라 인민 개인의 욕구도 중시하며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보텀업(Bottom Up)’ 방식의 사회주의다”라고 덧붙였다.

‘자주관리’로 급성장한 유고슬라비아…자체 발전한 사회적경제

소냐 노브코빅 캐나다 세인트메리대 경제학과 교수가 ‘유고슬라비아의 경험: 시장사회주의, 포스트 사회주의 전환과 EU’를 주제로 강연했다.

두 번째로는 소냐 노브코빅 캐나다 세인트메리대 경제학과 교수가 ‘유고슬라비아의 경험: 시장사회주의, 포스트 사회주의 전환과 EU’를 주제로 강연했다. 유고슬라비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당 주도로 동남부 유럽 지역에 들어선 연방공화국이다. 1948년 소련과 관계를 단절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로 독립적 노선을 걷게 된다. 1950년 도입한 ‘자주관리’가 대표적인데, 재산은 국가가 소유하되 기업 관리 및 경영은 노동자들이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노브코빅 교수는 “자주관리는 시민사회의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진 계획으로, 기업 활동에서 창출된 이익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도 스스로 결정했다”며 “1980년대 말 자주관리 부문이 전체 경제의 80%를 차지할 만큼 지배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자주관리 경제 시기, 투자 주도의 빠른 성장이 이뤄졌으며,생산성 면에서도 전혀 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유고슬라비아는 1950~1970년대 동구권과 서구권 양쪽 모두와 교류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농업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하며 철도, 자동차부터 식품, 제약, 농업 등 전 분야에서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1987년 일부 나라에서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시장 의존도가 커졌고, 국내총생산(GDP)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 북부 국가는 발전했지만, 남부 국가는 뒤처지면서 지역 간 소득불균형과 불평등이 심화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6개 나라로 해체되기 직전인 1989년, 슬로베니아의 GDP는 1만 2383달러였으나 코소보는 1592달러에 불과했다. 경제적?정치적으로 안정된 슬로베니아는 2004년 EU에 가입해 독자 노선을 걸었지만,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등은 내전이 일어나고 외국 자본에 의존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노브코빅 교수는 “유고슬라비아는 자주관리라는 자체적으로 발전한 사회적경제가 있었고, 이는 사회주의의 목표를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특징과 조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크로아티아의 현 상황을 들며 “자체 발전한 사회경제와 유럽연합에서 수입된 사회적경제 개념이 혼재된 상황”이라며 “최근 윤리적 은행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비정부기구와 시민사회가 성장하는 등 사회적경제 방식의 진화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중국 농업의 기적과 위기는 한 뿌리…“사회가 더 강해져야”

저우 리 중국 인민대 농업경제학부 교수가 ‘중국의 신향촌운동과 도농 상생을 위한 사회생태농업’을 주제로 강연했다.

마지막 순서로는 저우 리 중국 인민대 농업경제학부 교수가 ‘중국의 신향촌운동과 도농 상생을 위한 사회생태농업’을 주제로 강연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국가를 표방한 중국은 도시와 농촌의 인구 비율이 5:5에 이를 만큼, 여전히 농업이 중요한 나라다. 리 교수는 중국 농업의 기적과 위기의 역사를 되짚으며 “기적과 위기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됐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인구보다 자원이 부족하다.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용가능한 토지는 모두 경작에 이용해왔다. 중국의 평균 노동 경작 면적은 미국?호주?캐나다와 비교했을 때 300~600배 높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농업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농민 수입과 생활환경이 개선됐다. 농업의 기적은 중국 내 빈곤 퇴치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중국 농업에는 위기도 함께 찾아왔다. 과잉 경작으로 토질이 악화하고,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으로 땅이 오염되면서다. 또한 도시화를 겪으며 농경지가 공장 부지로 변하고, 농촌에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식량의 양은 충분히 확보됐지만 품질은 담보되지 않았고, 시장 원리에 따라 공익보다는 사익을 앞세운 농업이 만연해졌다. 

리 교수는 “중국 농업에서 볼 수 있듯 경제의 기적과 위기의 뿌리는 같다”며 “정부 중심의 시장경제를 택한 중국에서 검토해야 할 것은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아이디어”라는 의견을 밝혔다. 칼 폴라니는 보이지 않는 손 ‘시장’과 보이는 손 ‘정부’의 역할과 더불어 제3의 손 또는 몸에 해당하는 ‘사회’의 역할이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 교수는 “정부와 시장이라는 2개의 손이 협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라는 3번째 손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 효과, 정부 기능, 사회적 힘이라는 3개의 손을 가진 건강한 경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부의 힘만 유독 강하게 발전한 북한이나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사회라는 부문을 어떻게 튼튼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리 교수는 ‘정부가 강한 북한과 사회가 강한 남한이 앞으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 현장 질문에 답했다. 지난의 북한의 초청으로 직접 평양에 방문한 바 있는 그는 “남한의 1인당 GDP는 3만달러, 북한은 약 1000달러로 30배 이상 차이가 난다”며 “어마어마한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남북의 공통 문화를 근간으로 해서 사회적 공감대부터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류를 통해 북한이 남한의 개방적이고 훌륭한 모델을 접하게 된다면, 변화의 욕망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강연회에서 쿠바, 유고슬라비아, 중국의 사례를 발표한 연사들이 강연 이후 청중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심도 깊은 의견을 나눴다.

사진. 최범준 이로운넷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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