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음을 도와드리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장애(disability)에 대해 말씀드려보려 합니다. ‘장애’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대부분 화장실이나 주차장에서 볼 수 있는 휠체어에 탄 장애인 표시가 떠오를 것입니다. 신체적 손상에 뒤따른 기능제약이 우리에게 각인된 장애의 이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는 1980년에 세계보건기구의 장애에 대한 과거의 분류체계에 근거합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손상(impairment)으로 인한 기능제약(disability),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리(handicap)라는 일방향적인 관계를 전제로 장애가 전제되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에 세계보건기구는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 ICF)를 통해 장애를 건강상태를 포함한 개인의 상태와 개인의 환경요인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부정적 측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확장합니다.

ICF는 보편성을 가집니다. 다시 말해서 ICF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건강조건과 관련된 건강관련 상태를 ICF에서의 장애의 개념을 통해 설명 가능하다고 합니다. ICF의 장애 개념에 근거하여 제가 가진 장애 이야기를 조금 하려 합니다. 저는 치열이 고르지 못해 지금 와이어를 이용한 교정을 하고 있습니다. 와이어를 치아에 달고 있으면 와이어가 조이는 영향으로 잇몸 부위에 어느 정도의 통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와이어가 잇몸이나 구강 내 여기저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구강 내에 여러 개의 아프타성 궤양을 만듭니다. 이로 인해 저는 밥을 먹을 때에 영 힘이 듭니다. 아픈 부위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와이어 여기저기 음식물이 끼기도 합니다. 이로 인한 이물감도 저를 불편하게 하지요. 밥 먹을 때만이면 좋겠습니다. 주로 환자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제 일인지라 진료를 할 때에도 입이 아프다고 느끼거나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치아 교정이라는 제 건강관련 상태와 정신과 의사라는 제 직업적 환경요인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대화를 나눌 때의 불편함이 제가 가진 일시적인 장애인 것이지요.

저만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나는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도 장애가 있습니다. 극심한 우울을 경험하면 의욕이 저하되어 가사나 직업과 관련된 일을 잘 수행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환청이나 망상에 시달리면 일상생활의 어려움 정도가 더 클 수 있습니다. 20대에 군대에 있을 때 발병한 이후에 지금까지도 조현병 약을 복용하며 평생 직업 한 번 갖지 못하고 어머니가 폐지를 줍는 일도 겨우 도울 수 있는 40대 환자분도 계십니다. 정신과 병원이나 정신요양원 등의 시설에서 장기간 생활을 한 경우에 지역사회로 돌아와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요령을 잊은 분들도 있습니다. 정신질환을 앓으시는 분들은 사지가 멀쩡해 보이지만 장애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에서 예외로 규정이 되어왔고, 이들의 생활지원이나 직업적 지원, 재활에 대한 지원이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도 ‘할 수 있다’의 애매한 선언으로서만 존재해왔지, ‘해야 한다’의 실질적인 지원이나 인프라 설치로 확대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신질환은 차별과 배제, 더 나아가 혐오의 다른 이름이 되어왔지요. 마음의 병이라는 건강관련 상태와 사회적 편견이라는 환경요인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라는 고통을 정신질환자 분들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2017년 독일 쾰른에서 개최된 매드프라이드. 매드프라이드 운동은 1993년 캐나다, 영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 사진 : 위키미디어커먼즈

하지만 정신질환은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정신질환실태조사에 의하면 전국민 4명 중 한 명(25.4%)은 우울증, 양극성장애(조울증), 공황장애, 알코올사용장애, 조현병 등 평생 한 번 이상의 정신질환에 노출이 됩니다. 정신질환은 내 이야기 혹은 내 가족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이지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 배제, 혐오에 반기를 들고, 동시에 누구나 마음의 병을 앓을 수 있으니 우리 자신들의 마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자고 외치는 사회 운동이 있습니다. 바로 매드프라이드(MAD PRIDE)입니다. 이 운동은 1993년 캐나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0월 26일, 대한민국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도 개최 예정에 있습니다. 매드프라이드는 정신질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자, 이용 경험이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미친’ 혹은 ‘광기 어린’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들의 당당함을 내세우고 동시에 정신건강 이슈를 사회에 알리는 대중 운동입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자신의 건강권, 사회참여권, 주거권, 노동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데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께서 연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음의 병을 가진 이들이 가족과 이웃의 온전한 관심, 국가적 지원, 그리고 시민의 지지를 넉넉하게 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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