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전문미디어인 이로운넷은 창사 11주년을 맞아 '사회적경제, 미래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특별인터뷰를 연속 진행합니다. 지금의 사회적경제에 던지는 화두들을 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을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활동보다 안성의료복지사협이 그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해온 활동들을 중간평가 받았다는 생각에 의미를 가집니다."

지난 7월 5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에서 최고 상훈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이인동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은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이 원장이 몸담고 있는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안성의료사협)은 1994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 분야 협동조합이다. 설립 당시 250여 명의 조합원이 1억2000만 원의 출자금으로 시작해 현재는 조합원 6,334세대, 직원 123명(2019년 6월 기준), 연 매출액 약 55억원(2018년 말 기준)의 규모로 성장했다. 2013년에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이 원장은 의료생협이 설립되기 7년 전인 1987년부터 주말 의료봉사로 시작해 32년째 이곳에서 지역민들과 함께 의료 사각지대였던 안성에서 주민 중심의 의료·돌봄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5일 사회적경제 박람회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상훈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이인동 원장./사진제공=청와대 

이렇게 오랜 기간 고향인 서울을 등지고 안성 주민으로 머물며 지속적인 활동을 펼친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원장은 ‘지역’ 그리고 ‘신뢰’라고 답했다. 

“‘지역이 중요하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지역이 살아야 자치도 살고 나라도 사는데, 지역에 기반한다는 건 결국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신뢰는 모두에게 열어두는 것, 바로 몇몇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조합원, 지역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원칙을 끝가지 견지하고 가는 것입니다.”    

지난 16일, 안성의료사협을 찾은 날, 이 원장은 여전히 환자 진료에 정신이 없었다. 그는 인터뷰가 영 어색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인동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

- 수상을 축하드린다. 소감이 궁금하다. 

▶ 솔직히 좀 부담스럽다. 추천받은 지도 모르고 갑자기 수상 소식을 전해 들은 데다, 혼자 일군 과정이 아닌데, 개인으로 받는다는 게 그랬다. 나중에 공적서를 보니 개인적인 활동보다 안성의료사협이 그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해온 활동들을 인정받았던 것 같아 내가 대표로 받았다고 생각키로 했다. 

- 국내 첫 의료 협동조합으로서 모델이 된 안성의료사협의 공적과 31년 간 한 길을 걸어온 개인의 공적 두 가지 다 수상 이유인 듯하다. 내부적으로는 이번 수상의 의미를 어떻게 보나. ?

▶ 1994년 설립 당시만 해도 지역민들의 입장에서 진료 모델을 고민하는 ‘우리들의 의원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적인 운영 방식 등이 협동조합과 맞다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우리에게도 의료생협이라는 모델은 생소했다. 

다행히 지역에서 믿고 참여해준 분들이 당시 200여명(초기 참여 의료인은 50여명)이었다. 그때 출자금이 1억2000만 원 모였는데, 작은 지역에서 그렇게 모이기가 쉽지 않다. 기존에 없던 모델을 안정화 시키기까지 품을 내고 지혜를 모으고 돈을 내며 여러분들이 함께해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병원이 얼마나 더 커졌는가 보다 그 과정을 함께 지역민들과 지난 25년간 만들어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준 것 같다. 우리 스스로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금까지는 잘 오고 있다는 중간평가를 받았다는 생각에 의미가 크다. 

-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처음 안성의료사협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 대학 다닐 때부터 농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쌀 직거래를 하던 곳이 안성면 고삼면이다. 그 지역의 청년농부들과 연결되면서 서울대 농과대 학생, 내가 활동한 연세대 의과대 기독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함께 농촌지역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했다. 그때만 해도 농촌에 농민회도 없는 시기였다. 대학생 농활도 진행됐지만, 의료 분야는 특히 취약했다.

안성진료회 모임을 따로 꾸리고,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2주에 한 번씩 안성에 내려와 진료봉사를 시작했다. 7년을 그렇게 활동하다 보니 지역에 안정적인 의료기관이 필요하다는 고민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의료인들과 지역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그게 1994년이다. 

안성의료사협 건물 입구에는 환자 권리 장전이 있다. 

- 주말 진료봉사까지 더하면 32년째 안성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셈이다. 오랜 기간 지역에서 활동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서울이 고향인데, 오히려 여기서 생활한 시간이 더 길다. 이제는 서울에 잘 안 간다(웃음). 처음 여기 내려왔을 때만 해도 75%가 지역토박이였다. 그만큼 외지인이 없었다. 다행히 지역 청년들과 함께 시작해서 적응이 쉬웠다.
 
주말 진료활동을 한 7년을 합하면 32년째인데, 그 원동력은 ‘지역’이다. 의과대학을 다니며 더 큰 사회운동을 할 용기는 없었고 농촌지역의 의료기관이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작은 결심에서 시작했다. 대단한 신념이 있었다기 보다는 ‘지역이 살아야 공동체도 산다’는 막연한 생각이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이다. 그 이후로는 지역민들과 교류하면 관계가 깊어지고 신뢰가 쌓이고 서로 지지·의지하게 되면서 생활터전이 된 것이다. 

- 안성의료사협이 다른 의료기관과 차별성은 무엇인가.  

▶ 안성의료사협은 의료 사각지대인 농촌 지역에서 지역 주민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걸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총 3개 지점에서 6개 의료기관(의원 3개소, 한의원 2개소, 치과 1개소, 의사 14명)을 운영하고 있다. 조합원은 6,334세대고, 직원은 123명이다. 전체 안성 인구가 약 18만명인데, 조합원 세대당 가족 수를 3명 정도로만 잡아도 1만900여명이다. 지역민의 약 10%가 안성의료사협을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크게는 △진료활동 △보건예방활동 △조직활동 3가지로 사업이다. 안성의료사협만의 특징적인 사업은 조합원들 스스로가 건강을 돌보는 동호회 활동이다. 현재 동호회가 50여개에 이르며, 이 50여개 동호회는 각 리더들이 운영하는 형태다. 이런 동호회가 나중에는 지역사회의 의료복지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건강 예방-치료-재활 과정을 안성의료사협과 연결시켜 매뉴얼로 만드는 작업도 한다. 즉, 지역민들이 의료돌봄이 필요할 때 어디로 갈지 미리 상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향후로는 재활, 요양시설 등 전 생애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안성의료사협은 조합원들 스스로가 건강을 돌보는 동호회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사진제공=안성의료사협

- 안성의료사협이 주목받는 이유가 앞서 얘기한 ‘지역 기반’이라 생각된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지역과 함께하는’, ‘일상의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사회적경제조직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신뢰’다. 지역에 기반이 생기면 '그곳은 믿을만하다'는 평판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신뢰는 단순히 매출이 높다고 또는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열어두었을 때 생긴다. 한 조직이 운영되려면, 특히 이해관계자가 많은 사회적경제조직의 경우 더 갈등이 많다. 우리는 이걸 숨기지 않고 ‘다 열어놓고 얘기하자’는 풍토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몇몇 사람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조합원, 지역민들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원칙을 끝가지 견지하고 가는 게 지역 기반이다. 안성의료사협이 그거 하나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안성의료사협은 25년간 구성원들과 가능한 열린 구조로 논의를 이어간다. 

-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25년을 함께 했으니 얼마나 많겠나. 지금 생각나는 건 어느 해인가 적자를 심하게 본 적이 있다. 그때 숨기지 않고 상황을 공개하고, 실무자, 의사, 지역 조합원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실무자들이 스스로 임금을 적게 받고, 의사들은 퇴직금 적립하던 걸 일부 환원했으며, 조합원들도 출자금 배가운동 등을 벌였다. 서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십시일반 하는 분위기로 어려웠던 과정을 극복했던 기억이 난다. 신뢰가 없었다면 결코 하기 힘든 결정이었을 거다.  

조직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가능한 열어놓고 논의를 했다. 간혹 의료진이나 임원들 중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한 경우가 있다. 그때도 논의를 조합원들에게도 상황을 알리고 의견을 받으며 치열하게 논의 후 결정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걸 어떤 과정으로 해결해 가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면 결론이 났을 때 대다수가 공감하게 되고 조직에도 신뢰를 가질 수 있다.      

- 다 열어놓고 얘기하자는 풍토를 만들어왔다고 했는데, 사회적경제조직이라면 꼭 지켜야 할 원칙이지만 조직이 커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과제기도 하다. 안성의료사협도 직원이 100명을 넘어서고 조합원이 6,334세대로 커지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담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 우리도 규모가 커지면서 의견수렴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설립 초기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모이다 보니 의사결정이 오히려 쉬웠다. 지금은 규모도 커지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이니 논의 과정이 길 수밖에 없다.   

최근 건물 이전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사용하는 공간에 들어온 지 20년이 넘은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에 위치하다 보니 노인환자 등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어 이전 논의를 하는데, 이전 공간 매입과 관련해 의견이 엇갈렸다. 조합원들에게 열어놓고 의논한 결과 현재 논의 중인 곳으로 이전을 중단하고, 앞으로 몇 개월간 더 좋은 땅을 조합원들에게 추천받아서 최종 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어렵고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번에 또 한 번 깨달았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의료 분야에서 그런 지난한 과정이 비효율적이라 얘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논의 과정이 결국 지역에 더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고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안성의료사협은 2013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 후 지역사회와 더 긴밀히 함께한다./사진제공=안성의료사협 

- 안성의료사협의 앞으로 계획은. 

▶ 건강에서는 1차 의료가 제일 중요한데, 그게 가정의학과의 역할이다.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건강 문제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상의하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의료사협의 의사 또는 건강활동가가 되고, 이곳에 가면 건강해질 수 있고 좋다는 생각을 지역민들이 해주면 좋겠다. 그러려면 기본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더 잘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번에 상을 타면서 하나 부끄러웠던 게 우리 또한 좋은 의사를 구하는게 힘들다는 점이었다. 지금 의사 1명이 공석인데 1년째 안뽑히고 있다. 의사가 잘 안구해진다는 건 아직 안성의료사협이 좋은 직장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곳에 누가 오든 행복한 곳이었으면 한다.

- 고령화, 빈곤가구 증가로 커뮤니티케어(지역통합돌봄) 필요성 커진다. 정부에서도 정책화 시키며 최근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앞서 커뮤니티케어를 실현해오고 있는 조직으로서 한 마디 한다면.   

▶ 우리는 시범사업에 냈다가 떨어졌다.(웃음) 지원할 때 제안한 모델에서 핵심은 ‘주민들이 얼마나 움직이냐’였다. 그게 안 되면 돈을 써도 어렵다. 안성의료사협이 25년을 추구해왔지만 늘 부족하고 어려운 과제였다. 

주민들이 스스로 움직이려면 결국 자율·자치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25년 간 그 훈련을 했다. 많은 조합원분들이 여기 와서 민주주의를 배웠다고 얘기한다. 안성의료사협 조합원들 중 지역의 농협 등 다양한 조직에서 공동체 활동을 한다. 

사회서비스 제공을 위한 복지 문제는 주민이 직접 나서고, 정부는 그걸 지원하면 된다. 정부가 틀을 만들고 거기에 주민들이 뭘 하라고 하면 어려워진다.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게 중요하다. 

안성의료사협은 25년간 구성원들과 가능한 열린 구조로 논의를 이어간다. 

- 사회적경제 영역에 한마디 부탁한다. 

▶ 서울에도 잘 못 가고, 사회적경제 영역 안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사실 사회적경제 생태계나 정책에 대해 얘기하라면 잘 모른다. 다만 사회 전체가 변해야지 사회적경제 영역만 변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는 사회가 조금씩 변하도록 충격을 주는 역할이다. 실패해도 그게 밑거름이 되어 조금씩 우리 사회가 공동체 지향적인 사회가 될 거라 본다.  

 

사진=이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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