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시 은평구 혁신파크 미래청 모두모임방1에서 '2019 제2회 콜로키움-에릭 비데 초청 강연’이 열렸다.

협동조합의 종류 중 하나인 사회적협동조합. 우리나라 협동조합기본법은 이를 ‘지역주민들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협동조합’이라고 정의한다. 정부 인가를 받아야 하며, 40% 이상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등 비영리법인 형태만 인정된다.

프랑스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협동조합들이 ‘공익협동조합(SCIC, Cooperative Societies of Collective Interest)’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지난 7월 11일 서울시 은평구 혁신파크 미래청에서 열린 ‘프랑스 공익협동조합의 설립 배경과 특징’ 콜로키움에서 프랑스 르망대학교 경영학과 에릭 비데(Eric Bidet) 부교수는 “2015년 이후 SCIC의 수가 40%, SCIC 근로자가 60% 늘어나는 등 증가 추세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공익협동조합, 노동자 협동조합에서 출발

SCIC는 노동자 협동조합에서 시작해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큰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사진=les scic 홈페이지

SCIC의 뿌리는 노동자 협동조합이다. 프랑스는 1915년 노동자 협동조합을 위한 법을 만들었고, 1938년에는 소비자 협동조합과 노동자 협동조합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은행을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자 협동조합 자본의 51%와 의결권 65%를 노동자가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때 노동자가 꼭 조합원일 필요는 없다. 평균적으로 노동자의 반 정도가 조합원이다. 이윤의 최소 16%는 배분 불가하며, 노동자는 최소 25%를, 조합원은 최대 33%를 가져간다.

SCIC는 이탈리아의 사회적협동조합을 참고해 노동자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된다. 2001년 협동조합일반법 내에 SCIC가 추가됐다. 사회적 목적을 구현하고 다중이해관계자 거버넌스를 채택한다는 게 기존 협동조합과의 차이점이다. 비데 교수는 “다중이해관계자 거버넌스는 협동조합의 혁신적인 체계”라며 “SCIC는 노동자, 서비스 이용자, 자원봉사자·정부 등 제3의 이해 당사자 등으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또한, 프랑스 법에 따르면, SCIC 자본 57.5% 이상을 조합 내에 재투자해야 하는데, SCIC는 아예 이윤 배분을 하지 않고 비영리 조직이 될 수도 있다.

의결권을 배분할 때는 ‘컬리지(College) 제도’를 활용한다. 컬리지는 SCIC 안에 둘 수 있는 이해당사자 그룹이다. 법은 1인 1표를 원칙으로 하지만, 컬리지를 형성하면 의결권 전체의 10~15%를 차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SCIC 안에 조합원은 많은데 노동자가 적다면, 노동자들끼리 컬리지를 만들어 의결권을 확보하면 된다. 컬리지 구성 방식은 자유롭다.

협동조합의 혁신모델...80%가 흑자

프랑스 최대 규모의 SCIC인 에너쿱. /사진=에너쿱 홈페이지 캡처

SCIC는 주로 교육, 출판, 케이터링, 에너지 등의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 현재 프랑스 최대 규모의 SCIC는 2005년 창립한 ‘에너쿱(Enercoop)’이다. 에너지 협동조합인 에너쿱은 청정에너지를 공급한다. 2015년 기준 24명의 노동자와 1만 5000명의 조합원이 활동 중이다. 에너쿱을 포함해 850개가 넘는 SCIC가 프랑스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이 중 약 80%가 흑자를 기록한다.

비데 교수는 “오늘날 프랑스의 오래된 협동조합 중에는 새로운 규정을 채택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잃고 전통 기업 모델을 따라가는 곳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SCIC는 옛날 협동조합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창출하고 도입하면서 사회 혁신을 주도한다. 비데 교수는 “이탈리아 등 타 유럽국과 비교했을 때 프랑스에서 SCIC의 중요도가 낮은 편”이라며 활성화를 강조했다.

[배경지식 UP!] 프랑스 협동조합 생태계를 알아보자

프랑스는 1947년 협동조합일반법을 마련하고 1992년 개정했다. 2014년에는 사회연대경제에 관한 일반법이 만들어졌다. 협동조합일반법 외에도 종류를 규정하는 특별법이 있다. 조합원 특성에 따른 4가지 종류에는 ①기업 협동조합(coops of businesses) ②소비자 협동조합(coops of users) ③협동조합 은행(cooperative banks) ④노동자 협동조합(workers’ coops) 등이 있다. 협동조합을 기능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할 수도 있는데, ①조직에 대한 노동자의 지배권을 관리하는 기능 ②특정 비즈니스에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 ③개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 ④SCIC처럼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기능 등이다.

1968년에는 모든 협동조합을 포괄하는 상부 조직 ‘CoopFR(협동조합연합회)’가 탄생했다. 현재 프랑스에는 2만 3000개의 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며 2700만 명이 조합원이다. 프랑스 통계청은 근로자를 30만 명으로, CoopFR은 130만 명으로 추산한다. 수치 차이가 큰 이유는 통계 자료를 구성하는 방식이 달라서다. 많은 프랑스 협동조합이 자회사를 갖고 있는데, 통계청은 자회사 직원을 협동조합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프랑스 협동조합 생태계에서는 전통기업처럼 부가 특정 조직에 집중돼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상위 100개 조합이 전체 협동조합 70%의 매출을 차지한다. 그 100개 조합 중 75개의 본사가 프랑스 수도인 파리 밖에 있다는 게 전통기업과의 차이점이다. 또한, 프랑스에서 협동조합은 복원력이 강해서 상위 100개 조합 중 25개가 50년 이상, 10개 이상이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제도는 부수적...핵심은 주민 의지

오른쪽부터 ICA 엄형식 국제통계담당자, 한국의료사협 경창수 회장, 한신대 장종익 교수, 에릭 비데 교수

SCIC에 대한 발표가 끝나고 비데 교수와 함께 한신대학교 장종익 교수,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경창수 회장, ICA(국제협동조합연맹) 엄형식 국제통계담당자가 토론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시간을 진행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프랑스 협동조합 생태계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장종익 교수는 “프랑스는 법적으로 협동조합이 상호성, 민주성, 연대성에 관한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지를 5년마다 확인하는 감독 체계가 있다”며 “우리 사회의 미래 시사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특히 “SCIC는 조합원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보다는 지역 사회의 발전에 더 초점을 둔다”며 “전통 협동조합과는 달라 연구자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라고 말했다.

엄형식 담당자는 “프랑스는 개인의 신념과 가치 실현을 위해 사회연대경제로 뭉친다”며 “법·제도화에 더 관심이 큰 국내와 달리 조직의 법적 지위는 그들에게 부수적” 이라고 설명했다.

경창수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경제’라는 제도가 뒷받침이 되는 경우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며 “한국에서도 자발적이고 자조적인 협동조합 운동을 법이나 제도 없이도 잘할 수 있다는 게 그동안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보여줬다”고 말했다.


아래는 에릭 비데 교수와 참석자 간 질문·답변이다.

에릭 비데 교수는 한국외대 등 국내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고, 한국 사회적경제 분야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르망대에서 사회적경제 석사 과정을 가르친다.

Q. 공익협동조합의 현실적인 문제들, 재정적인 부분, 경제적 자립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사례가 있다면.

A. SCIC는 보통 지방정부가 50% 자금을 조달한다. 그러나 목소리가 그만큼 커지지는 않는다. 이외에도 SCIC는 공공자원과 시장자원, 자원봉사자 등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에너쿱은 소비자로부터 요금을 받는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비해 요금을 좀 더 받지만, 소비자들은 에너쿱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 돈을 낸다.

Q. 협동조합 운영을 할 때 노동자가 아닌 조합원들의 지지도 필요하다. 노동자가 아닌 조합원은 어떻게 참여 중인가.

A. 다중이해관계자 구조에서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는데, 노동자·서비스 이용자 외에도 자원봉사자와 정부 등이 있다. 단일한 종류의 조합원만으로 이뤄져있을 때보다는 어렵지만, 노동자가 아닌 조합원도 충분히 정보를 전달 받고 있어 갈등이 많지 않다.

Q. 교육이나 육아를 사업 모델로 하는 공익협동조합이 있는지 궁금하다.

A. 교육·육아 관련 SCIC도 존재한다. 학업 성적이 낮거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공익협동조합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연합회’가 많다. 이들은 제도상 경제활동을 추구하는데 제약이 있어서, 더 쉬운 경제활동을 위해 SCIC로 전환한다.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합회들이 SCIC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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