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하림.’ 대중에게는 곡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프로젝트 밴드 ‘신치림,’ JTBC 방송 ‘비긴 어게인2’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긴 어게인2’를 본 사람이라면 그가 ‘악기마스터’라는 별명답게 다양한 지역의 전통 악기를 다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중 다수가 아프리카 출신이다. 월드뮤직*의 대가인 하림에게 아프리카는 의미가 깊은 지역이다. 아프리카에 다녀와서 만든 노래로 공연을 열고, 10년 넘게 ‘기타포아프리카(Guitar for Africa)’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아프리카 지역 어린 뮤지션들에게 악기를 전달해오고 있다. 바다 건너 사는 이들에게 악기를 선물함으로써 그가 추구하려는 가치는 무엇일까. 후덥지근했던 어느 오후, 하림을 만나 궁금증을 풀었다.
*월드뮤직: 한때 제3세계 음악이라고 불렸다. 하림은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사회공헌이요? 제게는 음악 작업인걸요.”

그가 기타포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이미 여러 언론이 소개했다. 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다가 나미비아 힘바족 소녀 와푼다 페이를 만나고 나서다. 하림이 와푼다에게 우쿨렐레 연주법을 조금 알려줬더니 금세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소녀에게 재능이 있다고 판단해 한국에 돌아와 기타를 선물했고, 그 뒤로 제2, 3의 와푼다 페이를 위해 프로젝트로 만들어 이어갔다. 주로 악기를 살 형편이 안 되지만 음악 재능이 있는 젊은이를 찾아 보내준다.

프로젝트를 지속가능하게 하려고 시작한 음악 공연이 지금의 ‘아프리카 오버랜드’다. 콘셉트는 ‘음악으로 떠나는 아프리카 여행.’ 하림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얻은 감상을 곡으로 표현한다. 관객들은 그의 미발표곡을 들으며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공연 수익금으로 ‘카운티스’에서 악기를 구매한 후 사람을 통해 아프리카로 보낸다. 비행기로 보내봤는데 운송비만 150만 원이 나왔다. 하림은 “1년에 3, 4명씩은 직접 전달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아프리카로 보낸 악기는 20~30여 대다.

뮤지션 하림. 그는 앨범 제작보다 직접 공연을 기획해서 진행하는 게 더 즐겁다고 말한다.

“프로젝트가 여기저기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본격적인 사업으로 진행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일대일로 보내주는 게 더 좋아요.”

아프리카의 빈민층에게는 당장 의식주가 급해 보이는데 왜 기타를 보낼까. 하림은 “편견을 없애고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봤을 때, 그들에게는 악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한다.

“아프리카인들은 음악을 정말 사랑하지만 접할 기회가 부족하니까요. 제 직업이 DJ였다면 스피커 세트를 보냈을 거예요. 공연을 통한 수익이 악기로 바뀌어서 아프리카로 전달되면, 연주자가 자신의 언어로 여러 노래를 짓겠죠. 저희가 전달한 기타로 진짜 가수가 된 말라위 친구도 있어요. 이후 악기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스스로는 이 일이 사회공헌보다는 음악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가수보다는 프로젝트 기획자...유목하며 로컬로 가치를 퍼트리다

하림의 국경없는 음악회 현장. 하림은 위축됐던 이주민들이 신나게 노래할 수 있도록 판을 벌린다. /사진=라파엘클리닉 홈페이지

하림은 월드뮤직에 대한 사랑으로 역사 속에서 진행된 인간의 이동을 깊이 공부했으며, 자연스레 요즘 시대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재작년부터 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 사회복지법인 ‘라파엘클리닉’에서 ‘하림의 국경 없는 음악회’를 연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서 고향의 노래를 소개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라파엘클리닉 측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하림은 자신이 직접 공연하는 것보다 그들이 노래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수동적으로 들을 때보다 함께할 때 더 좋아요. 그리고 이분들이 처음에는 위축돼있는 경우가 많은데, 분위기만 잘 형성해주면 노래를 전혀 못 할 것 같은 사람도 신나게 즐기더라고요. 저는 모국어로 말하고 노래하도록 부탁해요. 월드뮤직을 사랑하기도 하고, 이분들이 익숙한 언어로 마음껏 노래하게끔 판을 만들어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제일 노력이 안 드는데 제일 재밌어요.(웃음)”

첫 도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도하부대 터. 예술가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사진=아뜰리에 오 홈페이지

최근 시동을 걸고 있는 프로젝트는 ‘도하 프로젝트’다. 2010년 문화예술기획사 ‘아뜰리에 오’를 설립한 후 금천구에서 2012년 처음 시작한 도시유목민 예술가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프로젝트다. 젠트리피케이션, 도시 개발 등을 이유로 예술가들의 터전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고 기획했다. 그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홍대 앞에서 금천구로 넘어왔다. 그곳에서 예전 군부대(도하부대)로 쓰였던 빈터를 발견하고 예술가들의 생태계로 만들었다. 그는 “제도권에 흡수되지 않은 예술가들을 모아 전시, 연극, 공연 등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할머니의 바다’라는 소제목을 갖고 곧 서울을 벗어날 예정이다. 오는 20일 해남에서 첫 공연을 시작으로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새로운 도하 프로젝트 '할머니의 바다'를 진행할 해남 집.

“광주와 해남을 관통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광주는 중간 귀착지로 기획사 아뜰리에 오를 위한 공간을 새로 만들 예정이고요, 해남에 비어 있는 할머니 댁에서 도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할아버지가 옛날에 지었다는데 터를 밀고 마늘밭을 만든다는 얘기가 오고 가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저는 그곳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지만, 공간을 바탕으로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인터뷰를 진행했던 하림의 작업실은 박물관 같았다. 낯선 악기들과 미술 작품, 기념품 등이 눈에 띄었다. ‘음악계의 방랑자’라는 별명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곳에만 머무르는 성향이 아니다. 그에게 새 앨범을 낼 계획이 없냐고 묻자 “기록에 욕심이 없는 편이라 앨범을 내는 것보다 공연을 만들고 진행하는 일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음악 기획자로서 내가 만든 음악이 세상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작업실 책장에 꽂힌 월드뮤직 관련 서적. 월드뮤직 이외에도 하림은 1930년대 국내 음악을 공부했다.

[영상 인터뷰] 뮤지션 하림이 진행하는 사회 가치 확산 음악작업

사진. 최범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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