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톰(Thomas Boothe)은 프랑스 파리에서 협동조합수퍼마켓의 설립을 주도했다. 이곳에서는 7000여명에 이르는 모든 조합원이 한 달에 3시간씩 노동을 제공하며 운영된다. 이렇게 운영되니 유기농제품과 고급 식료품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조합원의 25%인 저소득층들도 건강한 먹거리를 이용한다. 

소비자협동조합 ‘라 루브(La Louve, )’는 2017년 시작 당시부터 사회적경제 영역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협동조합이 설립된 지 2년 만에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조합원은 꾸준히 늘어났고, 매출도 증가했다. 매 주 다른 지역에서 이곳의 사례를 배우고자 사람들이 찾아온다.

모두가 어렵다는 저성장 시대, 협동조합의 새 역사를 쓴 라 루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라 루브 매장 전경

# 땀의 공정함을 실현하는 ‘파크 슬로프 푸드 쿱’

라 루브의 시작은 프랑스 와인업계에서 일하던 톰이 2009년에 친구를 따라 미국의 부룩클린에 있는 ‘파크 슬로프 푸드 쿱(Park Slope Food Coop, 이하 PSFC)’을 방문하면서부터다. 1973년에 설립된 이 친환경로컬푸드수퍼마켓에 들어선 순간 톰은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다른 수퍼마켓이나 대형마크에서 보던 익숙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장을 보던 소비자들의 모습이 남달랐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고, 계산대 앞에서 긴 줄에 서 있음에도 짜증내는 사람이 없었다. 곳곳에서 서로 부딪히며 ‘Sorry’, ‘Thank you’ 소리가 들려왔다. 그 곳의 모든 이들은 그냥 쇼핑을 하는 소비자들이 아니었다. 그 수퍼마켓의 주인이었다. 

이후 톰은 다시 파리로 돌아와 친구 브라이언과 결심했다. 자신이 거주하는 파리 18구에서 이런 수퍼마켓을 만들겠다고. 준비를 하며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PSFC을 따라하는 곳이 많았으나 거의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PSFC의 운영진들과 매주 한 번 스카이프로 회의를 하며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준비를 하고, 미국을 찾아가 동영상을 제작하고, 함께 토론을 하며 왜 다른 시도들이 실패했는지 분석했다. PSFC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찾아 10가지로 정리했다. 2014년부터 본격적인 준비 팀을 구성했고, 약 1년간 시범사업 후 2017년에 빠리 18구에 가게 문을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의 이러한 실천은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다른 지역 뿐 아니라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도 이런 수퍼마켓협동조합을 열겠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가 시도한 수퍼마켓협동조합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6월 6일 수퍼마켓협동조합 매장을 찾아가 톰을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긴 사연을 필설도 다 형용할 수 없겠지만 그와 나눈 주요한 대화를 간단히 소개한다. 

2014년 라 루브 설립 준비 모임. 

- 이런 협동조합이 성공하는데 꼭 필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 톰: 다른 곳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니 가게가 부띠끄(상점) 같은 작은 규모일 때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면 판매량이 적어 좋은 가격에 수매하기 어렵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건이 다양하지 않고, 동일한 제품도 여러 가격대로 구비하지 않으면 조합원들은 다른 곳에서 장을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이곳에서 장 보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 채 떠나게 된다. 

두 번째는 너무 유기농에 집착하면 고객 확보가 어렵다. 유기농으로 나오지 않는 제품은 다른 곳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결국 조합원들은 다른 곳에서 또 장을 봐야한다. 우리는 야채와 고기 등 농산물 대부분을 포함해 80%는 유기농 제품이며, 나머지는 질 좋은 장인들의 제품, 일반 수퍼카켓에서 판매하지만 질이 나쁘지 않은 제품, 그리고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이국적인 제품으로 구성한다. 

세 번째 중요한 점은 ‘민주적인 운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다. 조합원들이 매번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한다면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일상의 운영은 실무자가 자율성을 가지고 결정하도록 보장한다. 예컨대 공급위원회는 모든 이에게 개방하여 조합원이면 누구나 신규제품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일상의 운영을 사사건건 보고하고 지시를 따라야 한다면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PSFC의 경우 정년퇴임을 65세로 하는 등 주요 정책은 총회서 결정하나 공급자 결정 등 일상의 운영은 실무자의 권한으로 둔다. 단, 투명하게만 운영하면 된다.  

한 가지 더, 소비자협동조합의 전통을 보면 대부분 대규모 협동조합 안에 항상 이너클럽이 있어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우리끼리 주도하는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우리의 협동조합, 마을의 협동조합, 비자본주의 수퍼마켓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PSFC가 도와주었기에  PSFC 이후 라 루브가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가 될 수 있었다. PSFC의 실무자그룹은 유능한 일꾼들이다. 그들이 유능하다는 건 실용적이라는 뜻이다. 로치데일의 공정개척자부터 협동조합의 전통은 위대한 천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고쳐나갔다는 점이다. 그들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받았으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나! 

라 루브의 설립자인 톰(오른쪽).

- 모든 조합원들이 의무적으로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는 걸 설득해서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조합원들을 어떻게 모집하고 설득했나?

▶톰 : 일단 반대하는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PSFC를 갔을 때 매력적인 것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억지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더 사라고 하지도 않았다. 하나를 사더라도 ‘It’s OK(괜찮아)’였다.  

우리는 비디오를 만들어 PSFC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한 것이다. DL 사업은 아이디어 자체가 설득력이 있기에 사람들을 일부러 설득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조합원을 위한 안내모임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안내모임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자리의 역할뿐 아니라 이 방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동의하고 좋아하는 사람만 들어온다. 예컨대 “여기는 다 유기농이 아니잖아!” 라고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다른 데 가세요”라고 한다.  

- 내가 한국에서 PSFC의 사례를 강의했을 때 많은 이들이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기존에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이제부터라도 그런 조합원들은 받지 말고 동의하는 조합원들을 가입시켜 차차 변화 시켜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는가?
 
▶톰 : 여기는 매주 다른 곳에서 이 모델을 만들고 싶어 문의가 들어온다. PSFC도 인기가 많으니 이곳저곳에서 문의가 왔다. 하지만 PSFC 1호점, 2호점 이렇게 가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수퍼마켓’이라는 의미가 상실된다. 내가 만든 장편 동영상이 이웃나라에 소개되었지만 영국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영국의 시스템은 너무 대규모화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소비자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주인도 운영자도 아닌, 그냥 공급지가 되었다. 몇 백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조직에서 조합원들이 “이건 우리의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럴 때 ‘우리의 수퍼’, ‘마을의 수퍼’가 되기 어렵다. 

 

# "가난한 사람도 조합원이 될 수 있어서 너무 자랑스럽다" 
 
- 조합원들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톰 : 출자금은 100유로(한화 약 13만원)인데 공공부조 수급자. 장학생, 시민서비스 종사청년 등 10% 정도는 10유로(한화 약 1만 3000원)를 내면 된다. 또 16%는 100유로를 할부해서 납부한다. 약 25%가 저소득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조합원이 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출자금을 납부할 여력도 되지 않는 수급자들이 여기서 장을 보는 게 가능한가?

▶톰 : 이들을 위해 일반 제품을 판매하는데 여기는 다른 곳보다 더 싸다. 예컨대 바릴파스타 500그람은 여기서 47상팀인데. 다른 수퍼에서는 75상팀. 동네 작은 가게에서는 1유로 정도한다. 

하지만 PSFC나 여기나 조합원들에게 가격이 절대적인 요인이 아닌, ‘잘 먹으려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혹은 먹는 즐거움을 위해 잘 먹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유기농 제품도 워낙 싸기 때문에 이들이 다른 곳에서 일반 제품 살 돈으로 여기서 유기농 제품을 살 수 있다. 이런 점이 무척 자랑스럽다. 이들은 다른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없으나 우리 조합원은 될 수 있는 것이다. 

라 루브에서는 저소득층도 장을 볼 수 있도록 가격 정책을 펼치고 있다.

- 어느 정도 저렴한가?  

▶ 톰 : 전체 제품 중 약 100여 종은 이런 저런 이유로 조금 비싸지만 전반적으로는 싸다. 특히 치즈, 고기, 와인 등과 같이 고급 식료품은 싸다. 예컨대 고급 차는 킬로당 19유로인데 다른 유명한 차 전문 가게에서는 36유로다. 우리가 70% 더 저렴한 셈이다. 이유는 우리가 직접 다 포장하기 때문이다. 유기농 제품은 다른 유기농 매장보다 평균 20% 싸고, 일반 슈퍼의 유기농 제품보다는 훨씬 싸다. 또 아프리카 제품 등 이국적 취향의 제품도 비교적 싸다.

일반 제품은 가격대가 다양하다. 예컨대 만약 우리가 콜라를 팔면 더 비쌀 것이다. 일반 수퍼마켓에서는 거의 마진을 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장을 보면 20~30% 절약할 수 있다.

- 낮은 가격의 비결에 조합원들의 협동노동도 영향을 미치는 건가?

▶ 톰 : 두 가지다. 조합원들의 노동과 판매량 덕분이다. 조합원 노동으로 인한 노동력 비용은 6% 밖에 되지 않는다. 여긴 총 6000여개의 제품이 있다. PSFC에는 1만 여종이 있다.  판매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우리의 연간 총매출은 6백만 유로인데, 한 매장으로 이 정도면 높은 매출이라 할 수 있다. PSFC는 연매출이 5천만 달러다. 엄청난 규모다. 

# 조합원 노동을 조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 조합원이 많으면 노동하기 어려울 텐데 적정한 조합원 규모는?

▶ 톰 : 조합원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자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2019년 현재 8000명인데 15000명 정도가 적정하다고 생각한다. 

- 조합원 노동을 조직하는 노동 코디는 몇 명이며 어떻게 운영되나?

▶ 톰 : 1명이다. PSFC의 시스템을 적용했기에 많은 일이 필요하지 않다. 이 시스템은 PSFC가 자체 발명한 것으로 실용주의의 극치다. 초기에는 조악했으나 점차 다듬어졌다. 

어렵지 않은 까닭은 원칙적으로는 정기적인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즉 3시간씩 연간 총 13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영화계 종사자들처럼 근무 시간과 주기가 불규칙적이라 4개월간 장을 보지만 노동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시간 예금’처럼 노동을 미리 제공할 수 있다. 이들의 노동은 정기적 노동 제공자들의 인력이 부족할 때 보충하는 노동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균형을 유지해간다. 

- 조합원들이 모두 전문적이지 않을텐데, 어려움은 없나?

▶ 톰 : 여기서의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장 어려운 건 박스 압축과 치즈 절단이다. 놀라운 건 한 번 가르쳐 주고 익숙해지면 이 조합원이 다른 많은 조합원들을 훈련시킨다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 조합원이 노동을 제공하며 불친절하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불만이 제기되는 일은 없나?

▶ 톰 : 수납 일을 하던 이가 대답을 잘 안하고 권위적인 태도를 보인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노동 코디가 개입해 객관적인 상황을 전달하고 시정하도록 했다. 그런데도 또 불만이 제기되면 다른 팀으로 옮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무자는 조합원을 처벌하는 역할을 하는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벌을 주면 자원활동이 아니라 일이 되어버린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다. 이래라 저래라 가르칠 수 없다.

PSFC의 경우 인종주의적 발언 등을 살피는 ‘징계위원회(규율준수위원회)’를 두고 있다. 감시 카메라도 설치해 두었다. 예컨대 도둑질이 발견되면 도둑질한 사람을 불러 한 번은 용서한다. 실수로 간주하는 것이다. 단, 두 번 하면 실무자가 조합원을 탈퇴하거나, 총회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하는 것 중 선택하라고 한다.

라 루브에서는 조합원이면 누구나 매월 3시간씩 노동을 한다. 

- 상품 선정 원칙은 어떻게 되나?

▶ 톰 : 조합원이면 누구나 제안할 수 있다. 제안했는데 안 팔리면 교체하면 된다. 야채와 고기 등 농산물을 제외하고 원칙은 한 제품에 유기농 하나, 비유기농 하나이다. 예컨대 유기농 잼 하나, 너무 질이 나쁘지 않고 싸며 잘 알려진 비유기농 쨈 하나, 이렇게 될 때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장 보지 않는다. 우리 가게에서 치즈나 육가공품 종류는 최상의 질을 자랑한다. 

- 다른 수퍼마켓에 비해 고기 코너에서 종류가 아주 다양한 걸 발견했다?

▶ 톰 : 우리는 한 마리 통째로 다 먹는다^^. 2주에 한 마리를 잡아 1주일에 반씩 판매한다. 

- 그럼 사람들이 특수 부위를 예약할 수 있는가? 

▶ 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매주 금요일 아침에 고기가 오기 때문에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이 가장 붐빈다.  

#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선 공공부문이 지원해줘서 더 편했다. 

우리의 마지막 대화는 역시 돈 문제. 땅값은 비싸고 임대료 비싼 파리에서 매장을 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물었다. 라 루브는 지자체의 도움으로 사회주택협회(HLM)가 저가로 9년간 임대를 보장해주었다고 설명했다. 매장 크기가 1500평방미터(약 453평)인데 월 16,000유로(약 2100만원)이고 점차 인상하여 최대 2만유로까지 내는 조건이다. 

“미국 같았으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그런데 여긴 협동조합이니 사회연대경제니 하면서 공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참 멋진 일입니다!”


“우리의 협동조합, 마을의 협동조합, 마을에 비자본주의 수퍼마켓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깊이 남는다.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없는 사람도 올 수 있는 문턱 낮은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든 게 자랑스럽다는 말도. 그 모든 것의 비결은 모든 조합원들의 십시일반 노동으로 가능했고, 다른 곳을 가지 않고 이곳에서 장을 보도록 하는 전략 덕분이다. 무엇보다 수년간 철저히 준비해서 문을 연 그 열정과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렇다. 협동조합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이미 시도한 선배 협동조합들에게서 배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대세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다운 길을 찾는 것이 망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비결인 것이다.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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