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사회적경제 2.0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던져야 하는 화두다. 본지에서는 창사 11주년을 맞아 근대 협동조합의 발생지인 영국의 사회혁신 현장들을 방문해 오랜 기간 변화를 만들어가는 그들의 동력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살펴봤다. 브렉시트로 혼란기를 겪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사회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들의 앞선 경험과 고민 속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고민해본다.

 

맨체스터시 스트레포드 지역에 위치한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Stretford Public Hall)’ 건물에서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요가 수업이 한창이다. 저렴한 비용을 내면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지역 주민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즐긴다. 홀의 또 다른 공간에는 예술가들의 공방으로 사용되는 ‘아트스튜디오’도 있다. 예술가들은 작업한 결과물들을 건물 내에서 전시도 하고, 주민행사도 참여하며 교류한다. 1층에 있는 로비 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민 누구나 와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이 건물은 최근 지역공동체가 직접 소유·운영하는 시민자산화의 사례 중 한 곳인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이다. 이곳의 운영단체인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의 친구들(Friends of Stretford Public Hall)’은 5년 전 구청으로부터 이 공공건물을 단돈 9파운드에 인수했다.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1878년에 지어진 빅토리아풍의 오래된 건물이다./사진=라현윤 기자 

# “추억의 공간 지키자”...주민 캠페인으로 단돈 9파운드에 공공건물 인수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1878년에 지어진 빅토리아풍의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섬유공장을 운영하던 존 렌즈(John Rylands) 씨가 지역공동체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산을 털어 만든 주민 공간이다. 이 공간은 도서관, 댄스홀 등 동네 공동체 공간으로 이용되다, 1960년대는 주민극단의 극장으로도 사용됐다.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이들에게는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공간이다. 

1990년대 들어 구청으로 사용되었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유지 및 보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빈 공간으로 방치되다 구청에서는 2014년 결국 매각을 결정했다. 매각 소식이 지역에 알려지면서 오랫동안 동네에서 살아온 아누슈카 다이튼(Annoushka Deighton) 씨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을 지키자”는 글을 올렸다. 다이튼 씨와 2명의 동네친구들이 주축이 되었다. 당시 다이튼 씨의 글에 공감해 대책회의에 모인 주민은 50여명에 이르렀다. 

케이트 맥기버,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의 친구들’ 직원./사진=라현윤 기자

“스트레포드 지역은 맨체스터에서도 낙후된 도시라 주민들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있던 추억의 공간마저 매각한다니 주민들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난 거죠.”  

-케이트 맥기버,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의 친구들’ 직원- 

‘주민 공간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우선 지역자산으로 건물을 등록했다. 영국의 경우 지역주권법(Localism Act)에 따라, 지역자산으로 지정되면 건물주가 6개월은 매매활동을 유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자산 지정에 성공한 주민들은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의 프렌즈(이하 프렌즈)’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스트렛포드 퍼블릭 홀을 지키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지역공동체가 공간을 소유하는 방안을 구청에 제안했다. 제안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가가호호 방문하며 지역민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자 노력했다. 주민들이 구청에 제안한 건물의 용도는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다목적 커뮤니티센터’였다. 이후 구청은 입찰매각 공고를 냈고, 경선을 통해 프렌즈가 이곳의 운영권을 얻게 되었다. 매입 시 프렌즈가 구청에 낸 비용은 단돈 9파운드였다. 2015년 구청이 프렌즈에 건물의 소유권을 완전히 넘기면서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다시 주민공간으로 거듭났다.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홀 로비 

# 문화프로그램부터 코워킹 공간까지...주민 힘으로 운영    

현재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된다.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을 운영하는 프렌즈는 처음 주식회사로 시작해 지금은 협동조합으로 운영 중이다. 지역공동체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기에는 협동조합 형태가 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 프렌즈의 역할은 지역의 역사적인 랜드마크인 이곳을 복원하고 보존해 주민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곳에서 창출된 이익은 공간 운영과 복구에 다시 재투자 된다. 

리모델링 된 공간에서 요가수업을 하는 회원들.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수익사업이 필수인지라, 현재 프렌즈에서는 일부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3가지 컨셉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우선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다. 1~3파운드까지 내면 회원으로 가입시켜 다양한 프로그램 및 이벤트를 제공한다. 성인 대상의 요가 등 건강 및 웰빙 수업을 비롯해, 어린이 대상의 미술 수업, 합창단 활동 등 다양하다. 지역사회활동에 다양하게 참여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신체·정신적 건강을 가져온다는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예술가들을 위한 입주 공간인 '아티스트 스튜디오'.

또한 프리랜서 및 스타트업을 위한 코워킹 공간도 운영한다. 특히 예술가들을 위한 공방인 ‘아티스트 스튜디오’는 이곳의 자랑거리다. 예술가들이 개별 작업도 하지만 공동작업을 통해 건물 내 전시회나 주민행사 시 참여해 손을 보탠다. 이러한 공용 공간들은 매월 140파운드를 내면 사용할 수 있다. 일부 공간들은 워크샵 및 회의 장소로도 대관한다.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에서 가장 넓은 공간은 ‘퍼블릭 홀’이다. 100여년 전 내부 장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을 정도로 오래된 공간이다. 본래 400명까지 수용가능 했으나 현재는 안전 문제로 200명까지로 인원 제한을 두고 있다. 프렌즈에서는 이곳의 리모델링을 위해 2017년 커뮤니티쉐어 프로그램으로 주민 대상의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을 펼쳤다. 그 결과 800여명이 참여해 15만 6000파운드가 모금됐다. 여기에 커뮤니티비즈니스 지원체인 파워투체인지(Power to Change)가 매칭펀드를 하면서 25만 6000파운드가 최종 모였다. 이 비용은 퍼블릭 홀을 지역의 가장 큰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데 사용될 계획이다. 케이트 매니저는 “창문 단열, 외장 벽돌 등 퍼블릭 홀은 여전히 개조 중으로,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컨퍼런스, 콘서트, 결혼식, 영화촬영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식음료 판매도 해 새로운 수익 모델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커뮤니티쉐어 프로그램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위해 모금하고 공동 소유하며 협동조합 방식으로 투자금에 상관없이 1인 1표 행사를 할 수 있는 등 투자자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나누는 방식. 크라우드 펀딩과 같이 온라인 등을 이용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퍼블릭 홀'. 왼쪽은 비어있는 모습, 오른쪽은 합창단 공연이 열린 홀의 모습.

# 시민자산화는 아직 진행 중...시민 힘 믿고 시민자산화 시즌2 시작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을 지역공동체가 공동 소유하고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 프렌즈측의 설명이다.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전무했던 지역에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하니,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을 중심으로 근처에 식당, 카페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역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시민자산화로 가는 과정이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공이 거의 무상으로 지역공동체에 공간을 내놓았지만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영국 내에서도 시민자산화로 인수 한 건물 중 가장 오래되어 노후된 건물이다. 케이트 매니저는 “가능한 건물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려다 보니 환기, 난방 등 여러 문제가 생겼을 때 오래된 건물에 특화된 수리전문가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다”며 “수리 비용이나 시간도 많이 든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최근에도 지붕 슬레이트를 도둑 맞아 퍼블릭 홀에 물이 새는 걸 급히 고치느라 5만 파운드나 들었다고 한다.  

오랜된 건물이다 보니 수리할 곳이 만만찮다. 이사회 및 주민들이 홀 수리 등 자원봉사자로 나선다. 

넓고 오래된 공간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전문 인력은 필수다. 

“초창기에는 공간 운영에 서툴다 보니 민원 전화가 많이 왔어요. 예를 들어 예술가들이 밤에 늦게까지 일하니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잠을 못 잔다며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당시 상주하는 직원이 없다 보니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다.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이사회 등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초기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전담 직원을 두고 중요한 결정 시에는 집을 직접 방문하거나 편지, 메일 등으로 주민들과의 소통을 진행했다. 지난해부터는 외부 지원금을 통해 4명의 직원(풀타임 2명, 파트타임 2명)이 일하고 있다. 

12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도 자원봉사를 자처하며 모든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 초기에는 동네 주민들이 이사회의 주였다면, 최근에는 법률, 회계, 사회투자 전문가 등 안정적으로 건물 운영이 가능하도록 인력 풀을 보완했다. 또한 지속가능한 구조로 운영될 수 있는 전략기획에 이사회 역할을 집중해가고 있다. 

시민자산화로 지역공동체가 공공건물을 공동 소유하게 되었지만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메워지지 않는 일들은 주민들로 꾸려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들은 오래된 건물의 페인트칠, 행사 보조 등 다양한 형태로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 운영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렌즈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응급조치, 화재경보 조치, 위상생태 등 전문교육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관계망을 강화해 가고 있다.

케이트 매니저는 “직원과 이사회의 힘만으로 이곳을 운영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지역공동체가 운영한다는 취지에 맞게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역량을 키우고 더 확대하는 것이 앞으로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며 지속적인 의견 청취, 자원봉사자 관리 전담 직원 보완 등 다양한 방안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이 시민자산화에 성공했다고 얘기하기는 아직 섣부르다. 시민자산화가 시작된 지 이제 5년째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시민자산화 시도가 갓 시작된 우리나라에서 이곳을 더 눈 여겨 봐야 할 이유기도 하다. 

“시민자산화를 시도하고 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이제 시작이에요. 지금은 협동조합 총회를 해도 800여명 중에 50명도 채 안 올 때가 있어요. 공간 사용은 잘 해도 의사결정 참여에는 아직 소극적이죠. 이민자 그룹 등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소규모 커뮤니티들, 그리고 이곳에 살지는 않지만 외부에서 우리를 지지하는 분들까지 아직 함께해야할 주민들이 많아요.

아직 적자는 아니지만, 적지 않게 보조금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경제적 자립은 여전히 우리의 과제죠. 지역공동체가 수익성 있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곳을 운영해서 다목적 공동체 공간으로 재복원되고 지역민들의 삶을 개선되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시민자산화고 우리의 목표입니다.” 

 

사진제공.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 

해외 탐방은 사단법인 씨즈가 주관하고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한화생명이 후원하는 '2019 SEEKER:S(씨커스) 청년, 세계에서 길을찾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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