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 포스터 이미지./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장면 1. 조우

“우리는 뭐 이렇게 놀아야 되나? 이야, 안 속네? 베테랑이시네! 베테랑. 멋있다! 터프해. 우리 할아버지가 사람은 간덩이 보고 사귀라고 그랬거든요.”

“어이, 재밌게 사네. 근데 죄짓고 살지 마. 이 새끼 딱 몽타주부터 느낌이 우리 관할인데”

“걔도 네 몽타주 안 좋아할 거다.”

“대체 그쪽은 나한테 왜 이러는데? 나한테 이러고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

“야, 범인은닉 및 사건 날조, 위증과 증거인멸 사주는 처벌 얼마 안 해. 그냥 제대로 사과하고, 피해자 가족들 책임져 주고 끝내라.”

“협박이신가? 그래서 나를 좀 엮어보시려고? 생각하고 저질러. 저지르고 생각하지 말고. 한 번만 더 이따위 수작 부리면 진짜 죽어.”

“우린 아침에 사람 시체 보고 내장탕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야. 맘만 먹으면 탈탈 털어서 없는 죄도 만들어서 감옥 보내고 그래. 옛날에 그랬다고 옛날에…. 여기서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대표와 언제 통화했는지 무슨 문자 보냈는지 다 나와. 이메일도 싹 뒤져서 내용까지 출력해 가져다줄까? 나한테 잘못 걸려서 3대가 감옥에서 오붓하게 사는 집도 있어... 대표 어딨는지만 말해.”

“맷돌 손잡이 알아요?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고 그래요. 어이. 맷돌에 뭘 갈려고 집어넣고 맷돌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빠졌네?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 그래요. 황당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손잡이 땜에 해야 할 일을 못 하니까. 지금 내가 그래. 어이가 없네.”

“하아, 이 새끼가 정말….”

“야야! 나 통화하고 올 때까지 가만있어. 너 이번에도 애 병신 만들면 내가 카바 못 해준다고. 저번에 하우스 털었을 때도 괜히 애 잡아가지고, 걔 지금 빵에서 밥 먹을 때 침 흘려서 턱받이하고 먹는대.” 

영화 '베테랑' 포스터 이미지./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장면 2. 관리

“지금 우리 이미지 관리 잘못하면 힘들어요. 말 안 새게 그냥 내부에서 해결합시다. 센스 있게 합시다, 좀 센스 있게.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그랬어요. “

“이 일에 더는 개입하지 말아요. 여기서 더 개인적으로 움직이면 우리까지 곤란해져. 조직 전체를 불편하게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내사 아직 정식으로 시작된 게 아니니까 입장정리만 잘 해주면, 우리도 더 파고들지 않을게.”

“야! 쪽 팔린 줄 알아. 식구라고 하면서 식구들 등에 칼 꽂지 말고.”

“진짜 옷 한번 벗게 해줘? 당신 가족들, 팀원들, 한번 탈탈 털어볼까? 당신하고 주변 사람들 엮어서 똘똘 마는 거, 일도 아닌 거 알잖아.”

장면 3. 우회

“남편분 잘 설득해주세요. 감정은 정의가 아니잖아요. 저희도 남편분께서 저희를 표적으로 삼으시면, 피해자 가정에 조직 차원의 지원이 힘들어요.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굳이 왜 여기서 주시는 거예요? 이거 영수증 드려야 되나? 우리 복지관에서 장애우 체육행사 때 협찬 좀 해달라고 그렇게 괴롭혀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이건 뭐 1년 행사비로 써도 되겠네. 맨날 돈으로 사람 흔드는 거 너무 빤하지 않아요? 좀 창의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 없나?” 

장면 4. 음모

“넌 네 아버지처럼 인사만 하다가 인생 종칠래? 넌 뭐한 거야? 이럴 때 문제 잘 해결하라고 조직에서 명함 파준 거 아냐? 거기 쓰여 있는 거 어디까지 사실이야?”

“현장에 있었던 회원들은 문제없는 친구들입니다. 다른 회원들도 통화기록하고 이메일까지 다 확인했는데 외부 기자와 접촉한 흔적은 없습니다.”

“그럼 기자가 새벽기도 하다가 령빨로 기사 썼냐?!! 이따위 정신으로 무슨 놈의 변화고 나발이야?! 홍보팀 총동원해서 더는 여론에 새지 않게 막아. 대외 업무도 이거랑 엮어서 물타기 하고.”
 
장면 5. 반전

“우리 피해자한테 칼침 놓은 새끼가 누구야? 네가 칼침 놨어? 너흰 뭐 하고 있었어?! 쪽팔리게 이런 것들한테 당해도 돼?!”

“뒤에 빽줄이 있습니다.”

“얘, 빽은 하나님이야? 어디서 법과 정의를 건드려? 내가 책임질 테니까, 피해자 수술대 내려오기 전까지 사주한 새끼 내 앞에 데려와!”

“들었지? 피해자 2차 가해로 판 뒤집혔다. 같은 팀원들끼리는 방귀 냄새도 같아야 하는 거야. 쫄지 마, 씨바. 안 죽어. 판사는 판결로 죽이고, 우리는 조서로 죽이는 거라며? 내가 조서로 죽여주면 될 거 아냐. 딱 걸렸다 븅신들아.” 

류승완 감독의 2015년도 영화 ‘베테랑’의 명장면 명대사를 보릿자루에 넣고 흔들어 보았다. 황정민, 오달수, 유아인, 유해진의 대사가 마구 뒤섞인 5개의 장면이다. 대략 이런 영화들은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플롯에 맛깔나는 대사와 통쾌한 액션으로 보는 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휘발성이 마약 같기 때문이다.

최근 한동안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현실은 영화와는 달리 선악의 구도와 경계가 불명확하다. 믿었던 사람이 침묵할 때, 자신의 판단을 타인에게 미룰 때, 명징한 증거 앞에서 애써 눈을 감을 때만큼 한 치 앞이 아득해지는 경우도 없다. 주체적 자아이기를 포기하고 집단의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우리는 그를 한 명의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할 수 있을까. 채플린이 만든 영화 ‘모던 타임스’의 시계 톱니바퀴처럼 생각 없이 돌아가는 기계 부품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허전함이 어느 때보다 빨리 찾아온 여름의 열기 앞에서 녹아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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