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 SE프로(가운데) 울산 사회적기업을 찾아 경영 노하우나 판로 개척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모습.

“퇴직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울산 지역 중소기업?사회적기업의 멘토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웃음)”

지난 2014년 9월 울산에 있는 ‘SK유화’에서 공장장으로 퇴직한 김만수(60) 씨는 은퇴 후 인생을 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으로 채우고 있다. 1988년 SK에너지(당시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한 뒤, 2009년 SK유화로 옮겨 2014년 퇴직할 때까지 약 30년간 석유?화학공장 엔지니어로 살아왔다.

은퇴 후 진로를 고민하던 김씨는 지인의 소개로 울산의 중소기업을 돕는 ‘멘토’ 역할을 시작했다. 그는 “큰 기업에서 오랜 시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사람들과 협업하는 방법도 함께 배웠다”며 “지역 중소기업들에 조언할 때 사용하는 기술적 측면에 대한 의견도 주지만, 직원들 간 협업이나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준다”고 말했다.

퇴직 후 중소?사회적기업 돕는 멘토로…‘SE프로’ 선정돼 활동

2017년부터는 사회적기업과 연결돼 판로 개척과 공공구매 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때만 해도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에 대해서는 기사를 통해서만 들었을 뿐,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당시 그는 울산 사회적기업 ‘미애’를 우연히 알게 됐는데, 노미 대표를 만나 사회적기업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미애’는 천연염색을 바탕으로 제작한 의류와 소품을 만드는 기업으로, 이주여성 등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김씨는 “노미 대표님을 만나면서 지역사회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애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명받았다”면서 “나 역시 선한 마음을 가진 사회적기업가들의 손을 잡고 함께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5월 울산사회적경제통합 워크숍 체육대회에서 문흥석 울산사회적경제센터장과 함께 기념촬영한 김만수 SE프로(왼쪽).

울산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던 도중 지난 3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SE프로 지원사업’을 소개받았다. 만 50세 이상 퇴직 시니어의 전문성과 경륜을 활용해 사회적경제 기업 및 유관기관의 사회적경제 현장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대기업·금융기관 등 민간기업, 사회적경제 조직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5년 이상인 시니어가 ‘SE프로’의 대상으로, 경험이 풍부한 김씨가 선발돼 올해 5~11월 활동하게 됐다.

김씨는 시니어의 경험을 활용해 지역 수요에 대응하는 ‘활성화 부문’에서 활약한다. 경영이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기업 현장을 찾아가 애로점을 듣고 개선사항을 논의한다. 최근 SK에너지가 지원하는 사회적경제 기업 성장 프로그램에 뽑힌 8곳을 찾아가 현장 실사를 하며 회사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번에 찾아간 8개 중 4곳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경제 기업이었는데, 김씨는 울산의 우수 사례인 ‘시민베이커리’의 사례를 소개했다. 어떻게 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판로 개척을 위해 어떤 점을 참고하면 좋을지 등을 조언했다.

남은 SE프로 활동 기간에는 사회적경제 기업의 네트워크 확대에 힘쓸 계획이다. 김씨는 “공공기관에서 사회적경제 기업 제품 의무 구매를 하게 돼 있어 공공구매에 집중하지만,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SK에너지 같은 지역 내 큰 기업들과 좋은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면, 판로 확대나 지속가능성 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역 위해 헌신하는 사회적기업가 알려져 인식 바뀌길”

김만수 SE프로는 "사회적경제 기업간 네트워크가 확대되야 한다"며 "지역을 넘어 다른 곳으로 눈을 넓혀야 생태계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전문가로서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급한 과제로 ‘인식 개선’을 꼽았다. 김씨는 “정부에서 발을 벗고 나섰지만, 사회적기업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아직 차갑다”면서 “부정적 인식을 깰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사회적기업을 만나보면 ‘미애’의 노미 대표님처럼 우리 사회를 위해 진심으로 일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아직 사회에서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고, 국가의 도움으로 생존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더 큰 것 같아요. 사회적기업의 경쟁력이 커지고, 자기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사회적기업가들이 잘 성장한다면 분명 인식이 좋아질 거예요.”

재직 시절 ‘웃음치료 전문가 과정’ 수강을 계기로, 강연도 이어가고 있다. 김씨는 스스로 ‘웃음소통전문가’라는 직업을 새로 만들어 공공기관, 민간기업, 대학교 등에서 50회 이상 연단에 섰다. 사회적경제 기업 대표와 면담할 때도 ‘웃음’과 ‘소통’의 중요성을 빼놓지 않는다.

김씨와 같은 울산 지역 대기업?중소기업 퇴직 시니어들이 의기투합해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선배들은 초보 창업가들을 지원하고 후배 사회적기업가들의 고민을 듣는다. “어려운 점도 많지만, 지혜를 모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이들을 움직인다.

은퇴 후 사회공헌 활동으로 제2의 인생에 접어든 그는 “여태껏 받은 것을 사회로 돌려주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30년간 주위 사람들 덕분에 별다른 사고 없이 직장생활을 잘 마쳤으니, 이제는 거꾸로 내가 받은 것들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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