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벽화 훼손, 서촌 궁중족발 사태, 이태원 테이크아웃드로잉 분쟁. ‘도시재생’이라는 명분 있는 단어가 현실에서는 이 같은 여러 형태의 도시 문제로 비화하기도 한다. 흔히 알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역시 도시재생이 추진하면서 불거지는 갈등 현상 중 하나다. 도시는 재생될지라도 원주민들의 일상은 중단되고 피해 입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도시재생의 주객전도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는 것도 필연이다. 전국 최초 주민 중심 도시재생회사(Community Regeneration Corporation),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이하 창신숭인협동조합)’은 그 대표 사례로 꼽힌다. 창신숭인협동조합은 지역의 자산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주민을 주체로 지속적인 발전과 자립을 추진한다. 창신숭인협동조합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손경주씨를 만나 창신숭인 지역의 도시재생 추진 역사와 미래 이야기를 들었다. 손 상임이사는 창신동에서 나고 자라 뉴타운 해제를 위한 비대위 활동에 참여했고, 창신2동 도시재생 코디네이터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자고나란 도시 재생의 과거와 현재 역사를 온 몸으로 겪은 장본인이다.

1호 도시재생기업 창신숭인협동조합의 손경주 상임이사.

-도시재생기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서울시가 2007년부터 계획했던 창신숭인 뉴타운 사업을 2013년에 해제했다. 그리고 창신숭인은 2014년에 국토교통부 산하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선정됐다. 도시재생은 한방 치료와 같은 것이라, 족히 10년은 가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도시재생선도지역 사업 기한은 4년이고, 4년 뒤에는 누구도 담보해줄 수 없다. 행정도 정권이 바뀌면 담보가 안 되기 때문에 주민들이 주체가 돼 책임질 수밖에 없다. 주민들을 조직화해야 하는데, 주민협의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업형태로 만들어서 주민들의 역량도 강화하고 주민공동이용시설과 같은 앵커 시설을 조성해서 도시재생선도지역 사업 이후에도 도시재생을 지속하고자 했다.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됐을 때부터 도시재생기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1호 도시재생기업으로 겪었던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개척자로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안 해 본 일이고, 전례가 없기 때문에 공공성의 일을 경제적 가치로 입증하고 인정받기까지 어려움이 많다. 예로, 주민들에게 공공시설 운영을 맡겨 달라 하면 ‘주민이 뭘 할 수 있냐, 가능성이 있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손 상임이사는 창신숭인이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됐을 때부터 도시재생기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수수헌 화단가꾸기 행사.

-주민참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창신숭인 지역은 생계가 바쁜 지역이라, 규모 면에서 주민참여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어느 조직이든 규모의 한계 때문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40-50명 넘기 힘들고, 참여 인원수를 늘리려면 규모를 더 쪼개야 한다. 창신숭인협동조합은 전체 주민의 1% 가량이 참여하는데, 참여가 낮은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주민참여는 시간 여유,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20-30대는 취업하랴 바쁘거나 동네에 관심이 없고, 40-50대는 먹고사느라 바쁘지만 자식들 때문에 종종 참여하는 양상을 보인다. 60대 이상이 돼야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주민참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참여는 유도한다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과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에서 참여라는 게 사실 쉽지 않고, 참여한 주민들에게 효능감을 주는 것도 어려운 작업이다. 뒷받침하는 제도도 완벽하지 않고, 주민제안의 반영 여부나 처리 여부를 알려줄 창구가 없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가 현장 활동가로서 갖고 있는 고민이다.

백남준 기념관 내 카페.
시민들이 도시재생 해설사와 함께 백남준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역량강화가 종종 엘리트주의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주민들의 역량강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주민들의 역량강화는 협상력에서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이 마을재생을 위해 공공에게 요구하고, ‘밀당’하고, 어떤 부분에서 싸울지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협력할지 결정하는 협상력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주민들에게 더 많은 역할과 권한이 넘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이나 기반시설 정비사업을 할 때, 건설업체에만 용역을 주기보다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가령 골목길 정비 사업을 할 때, 어느 길을 할지 주민들과 같이 협의하고, 그 길이 편리한 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함께 논의하고, 길 이름도 직접 붙여서 주민들이 애착을 갖게 해야 한다. 현장감독이나 시설 운영도 주민들이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

-지역자산, 주민들이 잘 활용하고 있나?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통해 받는 혜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주민공동이용시설이나 앵커시설이 일종의 지역자산인데, 만들고 보니 꽤 수요가 있다. 숭인1동 수수헌에는 공동주방이 있는데, 거기서 아이들 생일파티나 마을 파티 등을 한다. 모임 공간은 동아리 교육 등 다양하게 활용한다. 많은 주민들이 주차장과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을 요구하지만, 비용이 막대해서 재생사업에서는 공급하기가 어렵다. 다만 백남준기념관 카페 운영이나 도시재생 해설사와 같은 주민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공공시설 운영, 마을 정비사업 참여 등 주민이 주체가 돼 지역을 관리하는 것도 의미있다. 지역에 노후화된 건물이나 오래된 골목, 계단들이 많은 데 거꾸로 보면 다 수리하고 정비해야 할 것들이다. 재생사업의 대상, 일거리이기 때문에 지역의 자산이라 생각한다. 함께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할 것인데 도시재생을 위한 동기이자 참여를 도모하는 시민자산이 될 수 있다.

창신 제2동 주민시설 ‘회오리마당.’
숭인1동주민공동시설공방 '수수헌' 열림식.

-지역자산을 운영하는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종종 주민분들께서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주민센터처럼 항상 개방할 것을 요구한다. 주민공동이용시설은 주민 주도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전기세와 같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항상 개방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주민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오해를 해소하고자 한다. 또한 도시재생 해설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많은 외부인들이 방문하는데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더 나아가 젠트리피케이션도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안전안심길에 만들어진 비상벨.
안전안심길.

-도시재생기업을 다시 정의한다면?

▶아직까지 동네에 고치고 바꿔야 할 부분이 많다. 할 일이 많이 남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지만, 과정 자체로 값졌던 경우가 많다. 2015년부터 주민협의체 대표회의를 통해 한 달에 두 번씩 주민과 행정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해왔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도시재생기업은 궁극적으로는 주민자치를 달성하는 수단이라 생각한다. 의회와 같은 의결기구가 늘어난다고 의사결정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져서 마을재생에 대해 여러 주민들이 의견을 내더라도, 실행단계에서는 결국 공무원 한 명이 이를 취합해 수행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효율적인 주민자치가 되기 어렵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골목길 정비사업을 한다면 어떤 길을 어떻게 고쳐나갈지 등의 계획과 설계와 시공 등 실행과정에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수행하고 감독해야 사업의 결과에 변화가 온다고 생각한다. 주민이 실행에 참여해야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자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창신숭인협동조합은 주민자치를 실행하는 조직이 되고자 한다.

미국의 도시재생기업(CDC)들은 기부금이나 기업 세제 혜택을 받아 운영되며, 슬럼 지역 개발 등의 주택사업과 사회복지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우리와는 맥락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사회주택 등의 영역에서 참여하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할 것이다.

안전안심길 벽에 창신동 트레이드마크인 '단지' 그림이 붙어있다.
안전안심길.

-도시재생을 다시 정의한다면?

▶도시재생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자부심을 재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리적 환경도 재생되어야 돼야하고, 경제도 재생되어야 하지만 또한 중요한 것은 사회문화적 재생이다. 창신숭인지역에 대해 안타까운 점은, 낙후된 마을로만 여기고 지역주민으로서 자부심이 없기에, 돈을 벌면 떠나고 싶은 동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반시설이나 지역경제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어 계속 살기 좋은 마을, 떠나지 않는 동네로 만들고 싶다. 서울의 많은 지역들이 함께 사는 마을로 가치를 잃고, 부동산 가치만 조명되는데 이 또한 자본주의에 의한 장소 착취라는 생각이 든다. 익명성에서 공동체성으로 나아가야 하고, 지역과 장소에 대한 애착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은 공간적 착취라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치유해가고 회복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로운넷은 협동조합 현장의 이야기를 시민들과 나누고 협동의 가치를 보다 확산하고자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의 서울시협동조합청년기자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현장, 이로운넷에서 만나보세요.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