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휴 잭맨(왼쪽)과 엠마 왓슨은 공정무역 커피와 의류를 알리기 위해 직접 카페를 차리거나 패션브랜드의 모델로 나섰다./사진제공=래핑맨, 피플트리

휴 잭맨, 콜린 퍼스, 줄리아 로버츠, 엠마 왓슨….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유명 스타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정무역’을 지지하며 해당 제품을 사용하고 홍보 활동까지 나선 ‘개념 배우’라는 점인데요. 휴 잭맨은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 브랜드 ‘래핑맨 커피’를 론칭했고, 엠마 왓슨은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피플트리’의 홍보모델 겸 모델, 디자이너로 활약했습니다. 

인권, 노동, 젠더, 환경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스타들이 ‘공정무역’ 지지를 선언하며 팬들의 동참을 호소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먹고 입고 쓰는 물건 중 대다수는 제3세계 농부,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커피, 초콜릿, 설탕 같은 먹거리부터 옷, 가방, 액세서리까지 다양하죠. 

그러나 불공정한 무역 조건 탓에 가난한 농부와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고도 제대로 된 수입을 얻지 못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요. ‘공정무역(Fair Trade)’는 단어 그대로 저개발국가 농민, 노동자,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불해 빈곤을 해결하고, 환경적 측면에서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는 무역을 의미합니다.

# 저개발국 생산자 돕는 ‘운동’→ 품질?경쟁력 승부하는 ‘사업’으로

공정무역은 제3세계 농부들이 생산한 제품을 정당한 가격에 사는 운동에서 시작됐다./사진제공=아름다운커피

공정무역의 역사는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1950년대 시작됐습니다. 식민지 시대 부채감이 있었던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 1960년대 공정무역 조직, 단체를 만들면서 본격화하죠. 가난한 농부들이 생산한 커피, 카카오, 설탕 등 농산물을 공정한 값을 주고 사서 의식 있는 소비자들에게 판매했습니다. 

북반구에 위치한 선진국에서 시작된 공정무역 운동은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 남반구에 속한 빈곤한 나라를 상대로 전개됐습니다. 가난한 농부와 노동자들이 친환경적으로 농산물을 키우도록 교육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요. 몇 시민단체들이 주도해 “제3세계 가난한 농부를 도와주자”며 소비자들의 선의에 호소하며 공정무역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윤리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은 몇 번은 통했지만, 지속적 판매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일회적 거래’가 아닌 ‘지속가능한 판매’로 이어가기 위해 공정무역은 제품 자체의 품질과 가격을 무기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습니다. 시민단체의 ‘운동’을 넘어 이윤을 내는 ‘사업’으로 발전한 것인데요. ‘제품을 구입하면 생산자에게 얼마가 돌아간다’는 구호와 무관하게 제품의 질과 가격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나갔습니다.

# 단체?기업에서 시민?지역으로…‘공정무역 마을’ 전 세계 2000개

국제공정무역기구는 ‘공정무역 마크’ 시스템을 통해 품질을 인증했다./사진제공=FLO

그러나 일부 큰 기업에서는 ‘가난한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자’는 본래 취지와 상관없이 공정무역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조짐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공정무역 카카오 함유량이 턱없이 낮은 초콜릿을 만들고는 ‘착한 제품’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판매하는 식이죠.

이에 국제공정무역기구(FLO)에서는 ‘공정무역 마크’ 시스템을 통해 믿고 구매할 만한 제품을 인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정무역 생산자?무역업자?기업 등은 FLO가 정한 기준을 통과하고 정기적 감사를 거쳐 ‘인증 마크’를 붙이고 유지합니다. 소비자들은 인증 마크를 통해 공정무역 제품의 안전성?신뢰성?윤리성을 담보 받습니다.

일부 단체와 기업 위주로 돌아가던 공정무역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민과 지역 중심의 풀뿌리운동으로 중심축이 변화했습니다. 2000년 영국 가스탕에서 시작된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그것인데요. 시민들이 일상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는 활동을 뜻합니다. 2018년 기준 전 세계 36개국, 2175개 도시가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에서 공식 인증을 받고 공정무역 운동을 실천 중이라네요.

# 한국 공정무역 판매액 400억원…마을운동으로 진화중

지난 5월 열린 ‘세계 공정무역의 날’ 한국 페스티벌에서 서울 성동구가 공정무역 자치구를 선언했다./사진제공=한국공정무역협의회

한국의 공정무역은 다른 국가에서 비해 늦은 2000년대 몇 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됐습니다. 2003년 ‘아름다운 가게’에서 아시아 지역 수공예품을 수입해 판매했고, 2004년 두레생협에서 필리핀 마스코바도 설탕을 수입해 조합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2006년 아름다운커피가 네팔에서 커피를 수입하고 ‘아름다운커피’ 브랜드를 만들면서 커피 중심의 공정무역이 알려졌고요.

2012년 아름다운커피,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아이쿱생협, 피티쿱,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등 국내 주요 공정무역 단체 12곳이 모여 ‘한국공정무역협의회(KFTO)’를 설립했습니다. KFTO가 발표한 최근 3년 회원사들의 매출액은 2016년 165억 2500만원, 2017년 188억 6600만원, 2018년 189억 7200만원으로 매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제공정무역기구(FLO?Fairtrade International)에 따르면 한국의 공정무역 판매액은 2017년 기준 약 3000만 유로(387억 원)이고요.

국내에서도 최근 ‘공정무역마을’로 도약하려는 도시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2017년 경기 부천?인천을 시작으로, 지난해 7월 서울이 인구 1000만 세계에서 가장 큰 공정무역도시로 인증 받았습니다. 10월에는 경기 화성시도 공식 인증을 받았으며, 경기도 역시 여러 단계들을 밟고 있다고 하네요. 이밖에 서울 중구?성동구, 인천 계양구, 전북 전주시, 경남 진주시 등도 동참해 마을운동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광역단체에서 기초단체로 뻗어가는 중입니다.

# 분야 넓히는 세계 공정무역…식료품에서 패션?화장품까지

화장품 브랜드 ‘더바디숍’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용기로 공정무역의 가치를 실현한다./사진제공=더바디숍

‘공정무역’ 하면 쉽게 떠올리는 상품은 커피나 초콜릿, 차 등입니다. 공정무역 방식으로 생산하는 상품은 다양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식료품이 익숙합니다. 최근 해외에서는 의류, 화장품 분야로 공정무역 분야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미국에서는 비영리기구 FT USA(Fair Trade USA)가 환경 보전에 앞장서고 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대상으로 20년 넘게 ‘공정무역 인증 스탬프’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FT USA는 지난 4월 ‘우리는 공정무역을 입어요’ 룩북을 처음 발간했는데요, 공정무역 제품을 생산하는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 ‘아우터노’ ‘오베이’ ‘제이크루’ 등을 다뤘습니다. 룩북 발간에 앞장섰던 스타일리스트이자 운동가 레이첼 왕(Rachel Wang)은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건 진실로 지속 가능한 패션업계를 구축해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자연주의 화장품 ‘더바디샵(The Body Shop)’은 5월 ‘공정무역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를 출시했습니다. 인도 방갈루루 지역에서 일하는 쓰레기 수거자(waste picker)들로부터 구매한 플라스틱을 구매해 만든 화장품 용기입니다. 대부분 달리트(불가촉천민)로 이루어진 쓰레기 수거자들의 안정적인 생계에 도움이 되고, 환경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공정무역기구(WFTO?World Fair Trade Organization)에 의해 공식 인증 받았습니다.

공정무역 도시 1호 탄생국이자 가장 많은 공정무역 도시를 보유한 영국에서는 올해 10월 18~20일 웨일스에서 ‘국제 공정무역 도시 컨퍼런스 2019(IFTTC?International Fair Trade Towns Conference 2019)’가 열립니다. IFTTC는 각국 공정무역 도시 운동에 참여하는 풀뿌리 운동가, 지역 대표, 국가 기관 등이 매년 참여합니다. 13번째 열리는 올해 행사에서는 패널 토론, 혁신 워크샵 등이 열리고, 각종 공정무역 제품 샘플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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