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U-20 월드컵축구에서 준우승이란 금자탑을 세운 자랑스런 태극전사들. (출처=대한축구협회홈페이지)?

 

“졌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첫 경기 때부터 마지막까지 우린 최선을 다했고 저 뿐 아니라 형들, 코칭 스탭들도 진짜 간절했던 것 같아요. 울긴 왜 울어요? 최선을 다했는데.. 후회 없는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메시에 이어 14년 만에 U-20 월드컵(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서 골든볼(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이강인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의젓한 소감이다. 그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이른바 막내형이라 불리는 리더십이다. 

그는 “그렇게 좋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제가 잘한 게 아니라 형들이 열심히 뛰어줘서 받을 수 있었다”면서 “골든상은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팀원들 모두가 받은 상이다”라고 팀원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강인의 막내형 리더십은 매 경기때마다 빛났다. 결승전에서 아쉽게도 역전패로 패하자 동료 형들을 찾아가 일일이 어깨를 토닥였다. 세기의 명승부라 불릴만한 세네갈과의 승부차기에선 골키퍼 이광연의 얼굴을 붙잡고 “ 하면 되잖아 못해? ”라며 힘을 실어줬다. 팬들에게는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이강인이 이런 막내형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덕장으로 불리는 정정용 감독의 소통과 배려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 감독은 28세의 어린나이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200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선수시절 그리 뛰어난 선수도 아니었고 국가 대표급 감독을 한 경험도 없다. 하지만 그에겐 남다른 소통 능력과 선수를 아끼는 마음 그리고 끊임없이 전략전술을 연구하는 자세가 돋보였다. 

그는 이번 U-20 월드컵 경기에서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후 가진 공개 인터뷰에서 자신의 팀을 ‘꾸역꾸역팀’이라고 불렀다. 

“단 한 차례도 쉽게 이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올라가는 팀입니다.”

그가 그렇게 꾸역꾸역 올라가려는 이유는 한가지다. 제자들을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한 경기라도 더 뛰게 해보고 싶은 스승으로서의 비장한 각오 때문이다. 큰 무대에서 훌륭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과 진검승부를 겨뤄본다는 것 자체가 선수들에겐 평생 함께 할 추억이자 성장할 수 있는 값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대로 선수들은 월드컵 경기 결승전에 오름으로써 7경기 모두를 소화해냈고 폭풍 성장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얻었다. 이런 스승의 마음을 민감한 선수들이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다. 

“운동장에서 감독선생님을 위해 뛰어보자고 할 때가 있어요.”
“평생 잊지 못할 감독님입니다.”
“절 믿어줬기 때문에 더 좋은 모습으로 쌤을 웃게 해드리고 싶어 더 간절히 했던 것 같아요.”

그의 소통능력과 배려심은 발탁은 됐지만 운동장을 뛰지 못하는 벤치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수비수 이규혁은 결승전까지 단 1초도 뛰지 못했다. 하지만 이규혁은 먼저 나서서 “경기에 못 뛴다고 뒤에서 싫은 소리 하지 말고 다함께 응원했으면 좋겠다” 며 팀 분위기를 추슬렀다. 

정 감독은 벤치 선수들에게 “너희가 잘 준비해야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면서 특공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벤치에서 누구보다 큰 소리로 동료를 응원한 이규혁은 결승전에 후반 교체 투입돼 10분 가량 뛰었다. 이규혁은 “감독님이 경기 끝나고 네가 못 뛰어 가장 힘들었을텐데 잘 참아서 박수를 보낸다고 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고 전했다. 

정 감독의 남다른 소통능력은 전략전술을 분석하는 TSG(Technical Study Group)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그가 겪었던 체험의 결과물이다. 

“저희 팀에도 전략과 전술 TSG가 있습니다. 현재 3분이 와서 많이 도와주고 있고 그분들이 있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저 또한 남아공 월드컵 때 TSG에 있었는데 분석이 끝난 후 팀과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 번에는 적극적인 소통을 부탁했고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라 감사드립니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에도 패배의 요인을 선수들이 아닌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 전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 보니까 마무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선수들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늘 말했듯이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된 겁니다. 끝나고 나서 우리가 할 일은 부족했던 부분을 발전시키는 겁니다. 단언컨대 자기 구단, 학교로 돌아가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 축구역사상 한 획을 그은 폴란드 U-20월드컵 경기는 한 조직을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리더의 덕목이 무엇인지 일깨워줬다. 실력이 뛰어난 나이 어린 선수를 리더로 받아들여주는 동료형들의 열린 마음, 비록 졌어도 동료들끼리 서로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팀 정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엄청난 폭발력으로 승화시킨 소통의 리더십이 만들어낸 하모니였다. 아마도 이런 아름다운 하모니가 만들어내는 예측불허의 결과물 때문에 전세계인들이 축구에 매료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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