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복지정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복지공급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Community Care)는 영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의 경험을 참고한 것이긴 하지만,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역사회 내의 다양한 서비스 자원들을 연계하여 가능한 한 시설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을 골간으로 한다.

한동우 교수가 지난달 30일 종로소셜컨퍼런스 2일차 행사인 '지역복지X사회적경제'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정책은 공공시설이나 기관을 통해 서비스를 생산하고 전달함으로써 실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공공부문이 서비스 생산과 전달을 전담하는 것은 비용 문제도 있거니와,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서비스 생산과 전달을 공공부문이 전담하게 되면, 공공부문 특유의 속성(보통 정부 실패라고 부르는)으로 인해 서비스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전에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많은 문제가 이제는 국가의 개입 없이는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인구 고령화는 단지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만성 노인질환과 부양 부담, 이에 수반되는 건강보험재정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영유아와 장애인 돌봄 역시 (특히)여성의 경제활동과 맞물려 더이상 가족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복지를 공급한다는 것은 민간 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조직과 단체들의 역량을 공공 복지공급체계 속으로 편입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정부 권력을 이용해서 민간영역을 공공영역에 예속시킨다는 뜻은 아니지만, 다분히 정부 재정을 통해 형성되는 보조금 시장(subsidy market) 속으로 민간의 행위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공공과 민간의 독특한 교환관계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서비스 공급에 공공과 민간의 거버넌스가 만들어진다.

정부 재정을 통해 형성되는 보조금 시장은 민간영역의 비영리 기관이나 사회적경제조직들에게는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서비스 생산과 판매가 정부에 의해 보호되거나 우선적으로 할당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비스 공급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기도 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민간 기관들을 지역기반 복지공급체계에 끌어들이는 유인기제가 된다. 게다가 정부가 가격을 보조하는 시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수요가 실제보다 과장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유경쟁 시장에 비해 공급자 간의 경쟁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적경제조직이 유난히 복지공급 시스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조직은 공공부문 조직들에 비해 자율성과 유연성, 그리고 창의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해결 능력도 공공 조직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복지 공급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질 좋은 돌봄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사회적경제조직이 공공부문의 지역복지 시스템에 편입되는 것이 밝은 면만을 갖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회적경제조직은 국가제도의 관료주의와 시장의 경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지역 주민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에 의해 규율되며, 복지 이슈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문제의 해결과 예방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다. 사회적경제조직은 제한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여 이를 지역 내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는다. 사회적경제조직은 생산과 소비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서비스 공급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이 적게 발생한다. 사회적경제조직의 활동가들은 스스로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생산한 것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다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적경제조직이 갖는 한계(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를 상쇄하는 조건이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기반 복지공급체계에 사회적경제조직이 참여함으로써 생기는 우려는, 자칫 한국사회의 사회적경제조직이 정부가 조성해 놓은 보조금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이들이 스스로 자임한, 그리고 사회가 이들에게 부여하는 소명을 잃은 채 정부의 종속적 대행자의 지위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복지는 국가의 전적인 책임과 권한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지의 역사는 국가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며,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호혜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급되어 오던 공유재이자 가치재이다. 사람들이 안전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하는 것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요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와 민간영역에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어 오던 많은 일들은 여전히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선의와 연대의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역복지는 국가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역복지와 사회적경제의 제도적 만남은 한국 사회의 사회적경제조직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한동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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