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백의 공정무역 이야기] 10. 당신은 어떤 팀을 만들고 싶나요?
[이강백의 공정무역 이야기] 10. 당신은 어떤 팀을 만들고 싶나요?
  • 이로운넷=이강백
  • 승인 2019.06.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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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조직을 어떤 조직을 만들고 싶은가?” 혹은 “나는 어떤 팀을 만들고 싶은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나의 뇌는 복잡한 운동을 시작한다. 뇌는 에너지를 소모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 소모를 극도로 싫어한다. 누군가 나 대신 알아서 해주기를 원한다. ‘어떤 팀을 만들고 싶은가?’ 라는 질문은 사실 이런 질문과 같다. ‘나는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가?’ 물리적인 내 존재는 별 의미가 없다. 내가 누구랑,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직이 세상에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우리는 팀에서 일을 하면서도 ‘우리 팀’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대부분이 질문하지 않는다. ‘어떤 존재’라는 좌표를 설정하지 못하면 내적 질서를 세우지 못하고, 방향성도 잡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팀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기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관계를 맺는 일부터 실패한다. 결국 방향을 잡는데 실패하고, 내적 질서를 잡는 데에도 실패한다. 

왜 사람들은 ‘우리 조직이 세상에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을까? 우리는 보통 질문을 생략하는 삶을 살아간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질문을 생략하는 삶을 살아갈까. 왜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뇌가 에너지를 덜 소모하는 방법은 질문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조직이 세상에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사진=Marvin Meyer on Unsplash 

생명체는 모두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멍게가 이동할 때는 뇌를 갖지만 정착을 하면 스스로 뇌를 잡아먹는다. 뇌는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든다. ‘이런 경우에 이렇게 대처한다’는 시나리오를 미리 입력해 놓는 것이다. 

그 시나리오는 실제로 뇌의 신경망을 만든다. 이미 형성된 신경망은 뇌에 미리 입력된 행동 패턴이다. 다양한 외부의 자극이나 상황에 뇌는 단일한 반응을 하기 위해 상위 패턴을 만든다. 외부의 자극이나 객관적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드러나는 것이 얼굴 표정이다. 다양한 외부의 자극에 단일하게 반응하기 위해 우리는 가면을 쓴다. 그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한다. 

페르소나는 뇌에 미리 입력된 상위의 얼굴 행동 패턴이다. 구체적인 상황에 일일이 맞춰서 반응하기보다 상위의 패턴을 형성하고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표정이다. 그렇게 단순화시켜야 뇌는 에너지를 덜 소모하게 된다. 자신의 상처를 봉인하기 위해 덮어쓴 가면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실제 모습을 대체하고 그 사람 자체가 된다. 가면이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되고 그의 자아상이 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가짜뉴스에 속으며 인생을 허비하더라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망령되이 사는 것이다. 지혜와 행복을 포기하는 삶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고통스럽지만 내 믿음을 부정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질문하고, 다시 질문하는 삶을 사는게 지혜로 가는 길이다. 이 세상의 모든 길은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길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질문하며 살 수 있을까? 간단하다. 우리의 대뇌피질에 질문 신경망을 심으면 된다. 뇌의 대뇌피질에 질문이 장착되고 활성화되면 우리는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질문이 마치 뇌에 선천적으로 형성된 행동 패턴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미 형성된 것 같은 ‘질문의 신경망’을 만드는 것이다. 질문이 우리 뇌에 미리 입력된 행동 패턴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질문과 판단 사이에 거리를 창조하는 것이다. 질문의 신경망을 제외하고 자신의 내부를 텅 비게 만드는 것이다. 잡스러운 자신의 주장, 이념, 선입견, 가짜 지식을 비우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철학자가 이야기했던 무(無)의 개념이고 공(空)의 개념이다. 낡은 지식이나 내가 고집하고 있는 것들은 사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실체는 지금 이 순간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채워나가는 행위, 그것 뿐이다. 

질문해 보자. “우리는 우리 팀을 어떤 팀으로 만들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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