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은 사회적경제안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가치나눔청년기자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눈으로 바라본 생생한 사회적 경제 현장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12년 겨울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고귀현 크래프트링크 대표는 세상을 더 알고 싶어 배낭여행을 떠났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럽과 미국으로 떠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선택한 여행지는 남아메리카 일대였다. 너무 잘 알려진 유럽보다는 미지의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는 여행지였던 과테말라에서 호기심과 설렘보다는 가슴시린 장면들과 수없이 마주쳤다. 구걸하는 아이들과 여성들.. 그 모습들은 여행내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 단순 여행이 아니라 그들에게 무언가를 도와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고귀현 크래프트링크 대표는 “남미 원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발전해 지금의 크래프트링크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크래프트링크는 수공예품을 제작 ·유통 ·판매하는 사회적기업이다. 

 

고귀현 크래프트링크 대표. 크래프트링크는 성수도 헤이그라운드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Q. 귀국 후 곧바로 창업을 준비하셨나요?

아니예요. 결정적인 계기는 학교에서 사회적기업 강연을 듣고 나서 부터예요. 지금껏 제가 했던 봉사활동들이 일시적인 캠페인성 프로젝트였다면 사회적기업은 제품 판매나 서비스를 통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크래프트링크는 2016년 창업이전 3년 전부터 프로젝트 형태로 과테말라의 수공예품을 그대로 가져다가 팔았습니다. 현지에서 지켜보니 제품의 질도 나쁘지 않았고 생각보다 많은 여행객들이 팔찌를 사더라고요. 그래서 화폐 단위가 더 높은 곳에서 팔게 되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그대로 들어온 팔찌들은 결코 쉽게 팔리지 않았어요. 팔찌는 이미 한국에도 많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국의 문화정서에 딱히 맞는 팔찌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크래프트링크가 제작한 형형색색의 팔찌들. 팔찌에 담긴 색깔에는 제각각 의미가 담겨있다.

 Q. 그럼 어떻게 위기를 넘기셨나요?

팔찌들은 과테말라 여성들로 구성된 멤버십에서 만들어집니다. 저희는 판매 전략으로 크게 ‘가치’와 ‘색상’에 집중했습니다. 현지에서 수공예품을 만들되,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디자인했어요. 사실 팔찌라는 것이 품질에 비중을 두기 보다는 길을 걷다 맘에 들면 산다거나 아니면 브랜드를 보고 사잖아요.

우리의 전략은 그냥 팔찌가 아니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든 팔찌를 만들자’ 였어요. 색상도 단순히 예쁘다는 차원을 넘어 이야기를 입혔습니다. 그들의 문화에서 색깔이 갖는 상징성과 철학,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항구도시 보카의 색을 담은 크래프트링크의 BOCA 팔찌

아르헨티나의 항구 마을 보카 지구(La Boca)는 가난한 이민자들이 정착해 출발한 마을입니다. 이들은 벽에 칠할 페인트도 살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 항구에서 쓰다버린 페인트를 주워다가 조금씩 벽을 칠했다는군요. 그래서 건물의 외벽들은 단색이 아니라 여러 색을 담고 있지요.

BOCA 팔찌에 들어간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은 이런 조금은 슬픈 역사와 희망의 이야기가 더해져 소비자들의 감성을 건드립니다.

사용자의 편리성도 많이 고려했습니다. 보통 샤워할 때 팔찌를 빼고 샤워해야 하지만 우리는 일반실이 아닌 왁스로 코팅된 실을 사용해 샤워할 때 생활방수의 기능을 갖추었습니다.

 

Q. 대표님의 바람대로 수공예품을 만드는 분들의 삶은 좀 윤택해졌나요?

크래프트링크는 현재 과테말라에서 팔찌를 생산하는 것을 비롯해 필리핀·한국에도 수공예 컬렉션이 있습니다.

먼저 과테말라에서는 여성근로자들의 임금이 높아지면서 넉넉하진 않을지라도 가계를 꾸려갈 수 있을 정도로는 됐어요. 재택근무를 지향하기 때문에 먼 일터로까지 나오지 않아도 돼 가사와 노동의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됐지요. 의료와 저축, 교육에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컬렉션의 대표상품인 비슬팔찌는 4월의 만개한 진달래 꽃밭을 가로 질러 가는 길을 마치 분홍빛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 나도록 제작했습니다.

 

Korea Collection의 대표 상품 중 하나인 비슬(BISEUL)팔찌

미혼모들이 한 올 한 올 정성을 담아 엮어 만든 수공예 팔찌로, 판매 수익은 미혼모 가정의 경제적 안정과 삶의 변화에 쓰입니다.

필리핀 컬렉션의 대표상품은 귀여운 코르쉐 인형입니다. 2015년 벨기에 유치원 교사였던 Annleen Van Dyck은 필리핀여행 도중 여성들의 성매매와 가난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들을 돕는 단체 Mayown과 크래프트링크가 만나 필리핀 빈곤 계층에게 코르쉐 인형 만드는 법을 전수시켜 함께 귀여운 인형을 만들고 있어요.

 

크래프트링크와 MAYWON이 협업해 만든 코르쉐 인형. 인형제작은 필리핀 여성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필리핀 빈곤 여성들은 쉽게 일자리를 찾기 어렵지만 크래프트링크와 함께하는 Mayown의 여성들은 주4일 근무로 최저임금의 4배가 되는 임금을 받습니다.

 

Q. 팔찌 제작에서 시작해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데 가장 보람찼던 순간      은 언제였나요.

남미 현지 여성들이 우리에게 일감을 더 달라고 했을 때 뿌듯했어요. ‘그들의 삶에 우리가 큰 기여를 하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요.

 

수공예 팔찌를 만들고 있는 과테말라 원주민들. 

때로는 새로운 제품들이 언제 출시되는지 먼저 물어오기도 합니다. 현지에서 원주민들이 스스로 연구과정을 거쳐 자신들만의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어요. 컬러코드, 센티미터, 이런 데이터들을 분석해서 말이죠. 그 브랜드가 썩 성공을 거둔 건 아니었지만 원주민들이 강한 학습 의지를 불태우고 긍정적인 욕심을 갖게 된 것 같아 흐믓했습니다. 진정한 자활은 우리 없이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Q.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사실 초기 4~5년은 매순간이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생각하는 것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고, 방향도 명확하지 않아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느낌이었으니까요. 특히 함께 시작했던 멤버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하나 둘 떠나고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올 때면 더 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어요. ‘과연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것인가’ 하고요.

하지만 5년차를 고비로 점차 매출이 발생하면서 함께 하는 동료들이 늘어났고 자신감도 붙어갔습니다. 현재는 모두 5명이 일하고 있어요.

 

Q. 힘들었지만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크래프트 링크를 대표하는 팔찌와 수공예품들.

오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눈에 띄진 않았지만 지속적인 성장이 큰 버팀목이 돼었던 것 같아요. 만약 단 한 해라도 역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있었다면 멈췄을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사회적 기업가라는 직업이 미래에는 각광받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자본 중심의 사회는 성장에 한계가 있고 가치와 의미가 더해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거죠.

크래프트링크가 환경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예를 들어 ‘마리스 파인애플’ 은 파인애플 가죽을 이용해 카드지갑과 가방 등을 만듭니다. 어떤 동물성 부산물도 쓰지 않은 100% 비건으로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만든 제품이에요.

슬라부프로젝트는 텀블러 쉐어링서비스입니다. 행사에서 낭비되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우리가 제공하는 텀블러와 컵을 쓰고 수거해서 세척하는 서비스입니다. 친환경적인 면에서 큰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죠.

 

Q. 대표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적기업가란 어떤 모습일까요

 

크래프트링크가 유통하는 팔찌를 생산하는 과테말라 여성들과 어린 자녀들. 

사람에 따라서 사회적기업의 정의는 각자 다르지만 저는 일반적인 기업도 사회적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일반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데 의의가 있다면 사회적기업은 불편보다 더 힘든 상황들을 해결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벌어지는 일들이요. 말하자면 운이라고나 할까요. 불운을 해결하는 것과 불편을 해결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가난해 제대로 뜻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라던지, 장애를 안고 태어나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는 불행들 말이에요. 저는 이런 상황들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싶고 그것이 바로 제가 사회적기업을 하는 이유입니다. 

사진제공. 크래프트링크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