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성장이 둔화한 현 시점, 5조 달러(약 6000조 원) 규모의 거대 시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40억 명이 넘는 ‘BOP(Bottom Of the Pyramid)’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다. BOP는 직역하면 ‘피라미드의 밑바닥’으로 소득계층의 최하단 저소득층?빈곤층을 말한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 BOP를 대상으로 한 교육?보건?일자리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BOP가 원조의 수혜자인 동시에 거래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국제사회는 지속가능한 방식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다. 국내에서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이끌어온 주요 현황과 사례, 제3세계 진출과 지원을 고민하는 당사자를 위한 과제 등을 정리해봤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는 정부, 국제기구 등을 중심으로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국가와 공공기관, 국제기구의 노력만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늘어났고, 민간 분야에서 약자와 상생, 환경 보호 등 ‘사회적가치 창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지원 주체로 부상했다. 

몇 단체와 기업에서 정부의 ODA처럼 개도국의 경제발전과 사회복지 증진을 목표로 사회공헌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2010년 전후로 개도국의 경제?사회적 발전을 이끄는 방법을 사회적경제로 택해 관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회적경제 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어 지속가능하면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함께일하는재단 STP를 통해 성장한 개도국의 사회적기업은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 참여해 기업과 제품을 소개한다./사진제공=함재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제3세계를 지원하는 민간의 가장 대표적 프로그램이 함께일하는재단의 ‘스마일투게더파트너십(STP?Smile Together Partnership)’이다. STP는 지난 2011년 ‘SBS 희망 TV’ 캠페인을 통해 아동 빈곤 근절을 위해 모은 기부금으로 개도국 내 사회적기업 설립 및 운영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우간다 지역 학교에 정수필터를 제공해 아이들이 수인성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스파우츠오브워터’, 네팔의 지진 피해를 입은 아동?청소년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지원해 취업 및 창업 기회를 준 ‘트립티’, 인도네시아 야자수 잎을 활용해 잡화를 생산 및 판매하도록 지역 여성들을 돕는 ‘두안얌’ 등이 대표적이다.

함께일하는재단 측은 “빈곤 가정의 부모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있는 일터에서 안정적 일자리를 갖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자녀를 가정 내에서 부양하도록 지원다”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구걸이나 노동을 하는 아동에게 교육 및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해 자립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함께일하는재단이 최근 발표한 '2018년 연차보고서' 내 STP 해외 파트너기관. 2019년 5월 말 기준 16개 국가, 33개 기관으로 늘어났다./자료제공=함재

지난 8년간 STP를 통해 16개국 내 33개 사회적기업에 총 34억 8848만원을 지원했다. 일자리 5539개가 창출됐고 부양가족 약 1만 4000명, 아동 6만 명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파트너국은 동남아시아 8개국, 아프리카 4개국, 서남아시아 2개국, 중앙아시아?남미 1개국 등으로 모두 저개발국이다.

함께일하는재단는 매년 7~8월 지역에 기반을 두고 지역 주민이 일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 기업 4~5곳을 선발한다. 기업 당 연 평균 사업비 3만~5만 달러(약 3500만~6000만원)를 3년 연속 지원한다. 재정적 지원 외에도 이들 기업이 개도국 현지에서 창출한 소셜 임팩트를 창출하고, 자원 및 컨설팅 제공 등 비재정적 지원도 한다. 현재 STP 제8기를 모집 중이며, 오는 9월 22일까지 신청 지원을 받는다. 

올해부터는 ‘STP2’ 프로그램을 신설해 해외진출을 하고 싶지만 아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등의 인큐베이팅을 함께 진행한다. 유윤희 함께일하는재단 국제협력팀 선임매니저는 “중간지원조직으로서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채우지 못한 빈 곳을 찾아 채우려고 한다”며 “함재가 국내 사회적기업을 육성해온 역사가 오래됐는데, 해외에서도 동일하게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보다는 빵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원을 실행 중이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맹그로브 숲 복원을 위해 베트남 짜빈성에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현지 일자리 창출 및 환경 보호에 나섰다./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국내 대기업에서도 저개발국에 직접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거나 사회혁신가를 키우는 방식으로 사회적가치를 창출하고 나섰다.

SK그룹은 동남아시아 국가에 사회적기업을 설립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페루 농민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야차이와시’ 설립에 이어 지난 4월 베트남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는 사회적기업 ‘맹그러브’ 등 설립을 주도했다. 두 사례는 민간기업, 정부, 대학, 비정부기구가 결합한 새로운 협력 모델로 주목받았다.

‘야차이와시’는 페루의 농촌 빈민 가구에 농업기술 전수, 농기구 대여 및 컨설팅, 판로 지원 등을 통해 참여 농가가 자립하도록 돕는 마을 자립형 사회적기업이다. 베트남 남부 짜빈성에 설립한 ‘맹그러브’ 역시 현지 정부기관, 대학, 기업, 현지 언론, NGO 등과 세운 합작사로, 지난해 5월과 9월 총 2만5000여 그루의 묘목을 심어 약 8만㎡ 규모의 숲을 복원했다.

임수길 SK이노베이션 홍보실장은 “개도국 내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과 환경 문제 해결 등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등 사회적가치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라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H-온드림' 펠로우인 사회적기업 '업드림코리아'는 제3세계 아이들의 그림을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고 수익으로 집, 학교 등을 짓는다./사진제공=업드림코리아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국내 대표 사회적기업 육성 프로그램 ‘H-온드림’을 통해 개도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소셜미션과 사업 아이템을 가진 기업들을 지원해왔다.

수공예 제품 생산을 통해 남미 원주민 여성, 필리핀 성매매 위험 노출 여성 등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소셜벤처 ‘크래프트 링크’, 몽골 내 친환경 캐시미어 생산 공장을 설립해 현지인을 돕고 윤리적 패션을 실현하는 ‘케이오에이’, 제3세계 아이들의 그림을 디자인해 의류, 가방 등을 만들고 수익금으로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집, 학교를 지은 ‘업드림코리아’ 등이 있다.

올해 8기를 맞이한 H-온드림은 ‘아시아 분야’를 신설해 저개발국 개발 지원을 강화한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현지 사회적기업가를 육성하고, 국내 사회공헌 우수사례를 공유 및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사회문제 해결에 성과를 도출한 현지의 기업 및 단체가 지원 대상이며, 올 하반기 총 10개 팀 내외를 선발해 사업비를 지급한다. 일부 팀에는 한국 초청 기회를 제공하고, ‘H-온드림’ 펠로우십 멤버쉽 및 멘토링 등도 지원할 예정이다.

이고임 H-온드림 사무국 사단법인 씨즈 팀장은 “그동안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선진국을 배우며 성장해왔지만, 반대로 저개발국에서는 우리의 모델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라며 “국내에서 사회혁신가를 어떻게 키웠으며, 기업이 어떻게 사회공헌을 해왔는지 등을 공유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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