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성장이 둔화한 현 시점, 5조 달러(약 6000조 원) 규모의 거대 시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40억 명이 넘는 ‘BOP(Bottom Of the Pyramid)’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다. BOP는 직역하면 ‘피라미드의 밑바닥’으로 소득계층의 최하단 저소득층?빈곤층을 말한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 BOP를 대상으로 한 교육?보건?일자리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BOP가 원조의 수혜자인 동시에 거래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국제사회는 지속가능한 방식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다. 국내에서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이끌어온 주요 현황과 사례, 제3세계 진출과 지원을 고민하는 당사자를 위한 과제 등을 정리해봤다.

# 노량진수산시장협동조합은 2016년부터 필리핀 맹그로브 숲에서 친환경 양식을 통해 꼬막과 새우를 생산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에게 기술을 전하고 소득을 높이는 한편, 해당 지역에서 키운 품질 좋은 수산물을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으로 유통하고 있다. (IBS 사례)

# 소셜벤처 ‘LS 테크놀로지’는 수인성 질환에 노출된 라오스 아이들을 위해 저가형 정수시설을 개발해 보급했다. 오존 기포를 더러운 물에 분사해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TOP(Tubular Ozone Dissolver)’ 기술을 적용해 안전한 식수를 제공했다. (CTS 사례)

?KOICA IBS 사업 사례 중 '필리핀 맹그로브숲 수산양식 사업'은 현지에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친환경 방식으로 새우, 꼬막 등을 생산해 한국 시장이 공급한다./자료제공=KOICA

정부 주도로 시행돼온 ‘공적개발원조(ODA)’가 사회적경제 방식을 택하면서 ODA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의 지원 방식도 변화를 꾀했다. 대외 무상원조 사업을 펼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제3세계 국가를 직접 지원하는 기존 방식에 사회적경제 기업을 발굴?육성해 간접적으로 돕는 방식을 더해 경제?사회적 발전을 이끌고 있다.

KOICA는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IBS:Inclusive Business Solution)’과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이라는 2가지 트랙을 운영 중이다. 국내 예비창업가 및 스타트업, 사회적경제 기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개발도상국 발전에 기여할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한다. 두 사업 모두 개도국의 저소득층인 ‘BOP’의 노동력?생산력?구매력에 주목한다.

이남순 KOICA 혁신사업실 실장은 “그동안 ODA는 학교나 병원을 지어주고 도로를 깔아주는 등 인프라 구축의 성격이 강했다”며 “실질적으로 개도국 주민 개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이 절실해 민간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방식을 떠올리게 됐다”고 사업 배경을 밝혔다.

먼저 IBS는 개도국 저소득층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고용과 비즈니스 기회를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다. KOICA 혁신사업실 측은 “개도국 저소득층을 단순히 원조를 받는 수혜자로서가 아닌 생산자, 배급?판매?유통자, 소비자 등으로 확장해 비즈니스 가치사슬의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OICA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IBS)'는 저소득층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고용과 비즈니스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자료제공=KOICA?

KOICA는 지난 2010년 ‘PPP(Pubic Private Partnership)’ 방식으로 기업의 CSR 활동과 연계된 사업을 시작했다. KOICA에서 예산과 국내외 네트워크, 기업에서 재원과 비즈니스 노하우를 제공해 민관이 공동 협력했다. 그 결과 2010~2017년 84개 파트너와 총 949억의 예산으로 30개국에서 113개 사업을 진행했다. 

IBS 대표 사례로 소셜벤처 ‘케이오에이(K.O.A)’가 2017년부터 참여 중인 ‘베트남 수공예산업’을 들 수 있다. KOICA, 한국디자인진흥원 등 공공기관과 베트남 수공예품의 디자인과 품질을 높이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판로를 제공한다. 이들 기관 및 기업은 오는 2020년까지 사업비 20억 원을 투자해 현지 종사자들의 실질적 소득 증대에 기여한다는 목표다. 

유동주 케이오에이 대표는 “경쟁력 있는 소재를 발굴하고, 소외받은 생산자와 함께 부가가치를 내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던 혁신적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며 “사회적가치를 담은 상품 역시 기본적으로 품질이 좋아야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기업 ‘리맨’ 역시 IBS 프로그램에 참여해 베트남 호치민 주민들에게 재생 PC 300여 대를 전달했다. 정보 소외계층에게 컴퓨터를 제공하고, 관련 기술을 교육해 취업으로 연계하고 있다. 구자덕 리맨 대표는 “오래된 PC를 재생해 베트남 주민들의 정보 격차 해소는 물론, 환경문제 개선도 이끈다”면서 “컴퓨터 1대를 생산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27만g 이상 배출되며, 귀금속을 회수하기 위해서도 광물자원 300kg, 물 900kg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 리맨은 KOICA 'IBS 사업'을 통해 재생 PC를 베트남 정보 소외계층에 전달해 사회적가치를 창출했다./사진제공=KOICA

CTS는 청년 기업가들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ODA에 접목해 의료·교육·에너지 등 제3세계의 문제 해결을 돕는 스타트업을 발굴?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KOICA 혁신사업실 측은 “사회혁신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지원해 개발 협력의 난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CTS를 통해 2015년 10개, 2016년 6개, 2017년 17개, 2018년 23개 사업 등 21개국에서 총 56개 사업이 발굴됐다. 이를 통해 개도국 내 취약계층 266만 명이 직·간접 수혜를 받았으며, 사업에 참여한 국내 스타트업 역시 평균 자산이 250% 증가하고 특허 건수 59건을 등록하는 등 서로가 이득이 되는 성과를 냈다.

예비창업가를 비롯해 창업 10년 이하 국내 스타트업이 참여 대상으로, 기술 개발부터 시장 개척, 현지 적용 단계를 심사해 ‘씨드(SEED) 1~3’로 나눠 최대 3~10억 원을 차등 지원한다. 창업가들은 지원금을 통해 기술 및 기업을 성장시키고, KOICA는 스타트업을 통해 개발협력 사업의 효과성을 높이며 윈윈(win-win)하는 것이다.

'에누마'가 개발한 교육 애플리케이션 '킷킷스쿨'을 활용해 공부하는 탄자니아 어린이들./사진제공=코이카

CTS 프로그램의 씨드 1~3단계를 모두 밟아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 소셜벤처 ‘에누마’다. 동아프리카 지역 아동들의 문맹 퇴치를 위한 학습 애플리케이션 ‘킷킷스쿨’을 개발해 보급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주목받고 있다. 

에누마는 KOICA를 통해 접근하기 어려운 해외 정보를 얻고, 실제 의사결정권을 가진 현지 사람과 만난 점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동아프리카 사정에 맞게 킷킷스쿨을 개발할 수 있었다”며 “교사, 학교가 적어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동이 많은 인도, 중동 지역으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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