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이면 20년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다. 소속감은 있었지만, 고용된 노동자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제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곳이 대학이다. 교수가 할 일이란 강의 수준을 유지하고, 개인의 연구실적을 쌓는 것, 학생들이 가치 있는 삶에 목표를 두게 이끌어가는 일 정도이다. 모두가 긴 호흡으로 진행된다. 강의는 학기 단위로, 연구실적평가는 년 단위로 이루어지니 경우에 따라서는 빠르게 달리거나 쉬엄쉬엄 걷거나를 자율적으로 조율하면 된다. 이것만 지키면 대부분의 교수는 정년까지 갈 수 있다. 하나의 패턴이다. 이 과정이 너무 반복적이어서 지루함을 느끼는 부류가 있나 하면, 반복적이기 때문에 기계적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일반인들이 교수직을 꿈의 직업이라 말하는 데는 그들이 경험한 교수들의 느슨한 직업 태도와 자기방어적 집단환경이 자리한다. 대부분의 교수는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교수가 그런 것은 아니다.
교수라는 직업군은 정년이 다른 직군보다 길고 정년을 보장받으면 65세까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된다. 통계에 의하면 정년을 보장받는 순간부터 예외 없이 거의 모든 교수의 연구실적과 역량이 떨어진다고 한다. 내 경우는 8년 전에 정년보장을 받았다. 실적이 갑자기 줄지는 않았다. 내게 생긴 변화는 반항심이었다. 안정감이 나은 부산물이었다. 눈치 보지 않고 학교 시스템의 문제점에 직언할 용기가 생겼다. 총장사퇴를 요구하며 앞에 섰다. 바른 행동에 학교가 보장한 에너지를 쓸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총장이 퇴진하고 새로운 총장을 선출했다. 우리가 이루어낸 일이라는 기쁨도 잠시 학교에 변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이전과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얼굴의 사람들로 본부 보직을 채운 것 같았다. 이때 학교를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입생은 더는 받지 않았다. 연구실의 석박사 연구원들을 졸업시키는 데 3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신입은 받지 않고 재학생을 줄여나가는 기간 동안 자연스레 나의 연구실적도 줄어갔다. 하지만 연구실적은 내게 더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학교 대신 밖에서 활동했다. 전공 관련 분야의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시민 행성이나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등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 시간이 매우 소중했다.
학교를 떠나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앞으로 무얼 할 거냐는 거였다. 나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모호하고 추상같은 답을 내놓았다. 대부분의 상대방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네가 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걸로 돈은 벌 수 있는 거냐 묻는 것 같았다. 해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다. 처음 하는 일 앞에 두려움이 함께 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긴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앞으로는 무엇을 하든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이화여대에 있습니다”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던 과거와는 단절인 셈이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하든 주절주절 설명이 따라야 한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다. 하는 일을 매번 설명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있다. 그런 것에 비하면 교수라는 직업은 자기소개의 프리패스 같은 거였다. 학교를 떠나며 아쉬운 부분은 딱 그거 하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직업. 없는 권위도 만들어주는 직업 말이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는 늘 사람이 그립다. 사람들과 연대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뜻을 함께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고 싶다. 지난 3년간 학교 밖 많은 사람을 만나며 배운 것이 많다.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 문제의식은 이전 같았으면 생각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행동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학교라는 보호막 밖 세상으로 나온 나를 우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내가 새로 시작하려는 일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건 사랑하건 욕하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손에 손잡고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일이다. 그게 뭐냐고? 아직은 비밀이다. 6월 21일부로 나는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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