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은 사회적경제안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가치나눔청년기자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눈으로 바라본 생생한 사회적 경제 현장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버지, 제 병이 공무 중 상해로 인정받기 힘들지라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해주세요. 병에 걸려 죽은 아빠가 아니라 소방관 아빠로 아들한테 기억되고 싶어요.”

?

31살의 젊은 나이에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김범석 소방관의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1000회가 넘는 화재진압과 구조 업무로 시민들의 영웅으로 불렸지만 공상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소방관은 화재 진압 과정에서 여러 유독 물질과 발암 물질에 노출됩니다. 2007년 WHO 산하 국제 암 연구 기관(IARC)은 소방관이란 직업을 암 발병 위험이 높은 직군으로 분류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소방관이 병에 걸리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들이 공상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병리학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에선 151명의 소방관들이 암 투병 중이거나 이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불이 나면 제일 먼저 달려와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소방관들..만일 그들이 위험에 처했다면 누가 나서줄 수 있을까요?

?119 REO(레오)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자(“Rescue Each Other”) 라는 모토 아래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입니다. 119 REO를 이끌고 있는 청년 5인방을 만났습니다.

?

Q. 119 REO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119REO구성원들 (이승우, 강보미, 서승재, 김민선, 김경윤)

119 REO는 소방관의 폐방화복을 새 활용한 패션잡화를 만들고 이를 판매하는 기업입니다. 수익금으로 소방관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드리고 있고 소방관 처우개선 중 특히 암 투병 중인 소방관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

Q. 소방관들을 돕기로 한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희 119REO 팀원들은 2016년 인액터스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인액터스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아리로 당시 저희는 프로젝트 대상자를 모색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언론에서 소방관들이 장비가 부족해 사비를 들여 장비를 구매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실태가 궁금해 소방서를 찾아갔어요. 제가 간 곳은 장비는 많았고 오히려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개인 돈으로 장비를 구매하는 이유는 더 좋은 장비를 써보고자 하는 안전 전문가들의 자부심 같은 것이었죠. 물론 지방직 공무원인 만큼 지역마다 차이는 있습니다.

?제가 언론을 통해 접한 문제의식이 현장에 들어맞지 않다 보니 그럼 ‘뭐가 문제일까?’ 심층 인터뷰를 하다가 고 김범석 소방관의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그는 늘 화재 현장에 누구보다 용감하게 뛰어들었지만, 혈관 육종암이라는 희귀 암에 걸려 5년 전 사망했어요.

심증은 갔지만 병리학적인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 없었기에 공상을 인정받지 못했죠. 알고 보니 국내외에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위험에 처하면 소방관분들이 도움을 주는데 소방관들이 위험이나 부당함에 처하면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Q. 119 REO는 어떻게 후원금을 마련하나요?

 

119 REO가 폐방화복을 새활용해 만든 가방들.

저희는 폐방화복을 새활용해 만든 가방과 패션잡화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수익금은 현재 암 투병 중이신 소방관 4분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드리는 데 쓰고 있어요. 4분 중 한 분은 비인두암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해 공상을 인정받았고, 다시 소방관으로 복직해 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현재 가방 및 패션잡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하반기부터는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제품들을 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를 통해 실제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안전에 더욱 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Q. 폐소방복으로 가방을 만드실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강동소방서로부터 폐소방복을 전달받고 있다. 소방복은 방수,방염 기능이 뛰어나 튼튼한 가방제작에 안성맞춤이다. 

소방복은 방수, 방염의 기능이 있는 아라미드 섬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은 폐기되는 방화복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때문에 가방으로 만들면 매우 튼튼하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일상 속에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안전을 생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시민들이 안전해지면 소방관들도 같이 안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Q. 가방 디자인을 직접 하시는 데 혹시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수거해온 폐방화복은 이중 세탁을 거친 뒤 해체된다.
분해된 폐방화복. 부문별로 분류한 뒤 재단을 거쳐 가방,맨투맨,키링 등 다양한 새활용품으로 재탄생된다. 

처음에는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지 몰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희 팀원 가운데는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가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의 원래 전공인 건축학과에서 배운 것을 조금씩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방도 결국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건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무한정 크게 만든다고 좋은 가방도 아니고 용도에 따라 효율적으로 공간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Q. 학생 신분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계기는?

처음엔 1년 단기 프로젝트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된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41,369,750원을 펀딩하고 이중 수수료와 제품 제작비를 제외한 7,837,306원을 기부했죠. 기부금 전달을 앞둔 시점에는 솔직히 ‘진짜 고생한 일들이 끝나간다’라는 시원한 맘도 들었어요. 그런데 기부금을 전달하고 나니까 과연 내가 정말 도움을 드린 걸까? ‘암 투병 소방관들의 문제는 해결된 걸까?’ 라는 의문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님이 저희가 마련한 119REO기부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신 거예요.

“우리보다 더 어려운 다른 소방관들을 도와주세요. 소송도 못 하고 치료비용 때문에 빚에 허덕이는 소방관들도 많습니다.”

결국 119REO 기부금은 다른 분께 전달됐어요. 이 소방관은 생계 때문에 치료도 받지 않고 소방서로 출근하고 계셨어요. 그분이 저희한테 한 말이 지금도 가슴 아픕니다.

“나 차라리 여기서 쓰러져 죽고 싶어요.” 그러면 공상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을 테고 남은 가족들이 조금은 편할 수 있을 테니깐..“

얼마 후 그 소방관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역시 공상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

너무 허무했어요. 처음부터 그리고 전부 다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이일을 하기 힘들겠다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래도 119REO 덕분에 안타깝게 숨진 아들의 이야기가 다시 세상에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암 투병 소방관에 관심을 가져줘 정말 고맙다”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분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리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고 본격적인 사업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더불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 위해 소방관을 위한 사진 전시회도 연 2회 기획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

Q.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는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업의 형태를 갖추면서는 바로 휴학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옳은 판단인지 지금이 더 옳은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지금의 선택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계속 증명할 거고요.

암 투병 소방관들이 공무상 상해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크게 해야 할 일입니다. 이분들을 돕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죠. 119 REO 마저 이분들을 돕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향후 국내 소방관들의 처우가 안정된다면, 방화복 재활용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개발도상국 방화복 원조 사업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현재 방화복이 공급된 국가는 10여 개 나라밖에 없습니다. 선진국에서 사용된 방화복이 재활용되어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다른 나라의 소방관과 국민들까지 함께 지켜줄 수 있는 미래가 오기를 바랍니다.

?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