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나라 아동복 쇼핑몰 여아 모델은 짙은 화장을 하고, 성인 모델의 포즈나 시선, 표정을 따라 하는 걸까요? 이게 아이들의 진짜 모습일까요? 또 모델들은 마른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쇼핑몰 메인 모델은 백인이나 백인 혼혈 아이가 차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아동복 쇼핑몰 ‘라디루비’를 운영하는 제충만 ㈜베니보우 대표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다. 

라디루비는 지난 5월, 성인들의 시각이 그대로 투영된 아동 모델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카드뉴스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콘텐츠에는 100여개의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공감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라디루비는 기존 아동복 모델들의 선정적인 모습에 문제제기를 하며 다른 시각으로 아동복 쇼핑몰을 운영하고자 한다. 

라디루비는 신생기업인 (주)베니보우가 올해 5월 론칭한 아동복 쇼핑몰이다. 기존의 아동복 모델들의 선정적인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꼈던 아동권리 전문가 제충만 대표와 아동복 디자이너로 일하던 부인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사업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강요된 아름다움을 넘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사랑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나이키나 룰루레몬, 에버레인 등 여러 해외 브랜드들은 다양한 인종과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기용하며 변화에 적응하고 있죠. 이처럼 세상은 변해가는데 국내 아동복 쇼핑몰은 여전히 옛날 방식에 머물러 있어요. 오히려 지나친 성상품화와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한다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요. 어른처럼 꾸미지 않아도 가장 아이다운 모습일 때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아동복 쇼핑몰이 우리나라에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 꾸미지 않은 아이 모델들...기존과 다른 문법을 고민하다   

라디루비가 운영하는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느 아동복 쇼핑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아동 모델들이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성인 쇼핑몰에서나 봄직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도 없다.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의 아동들이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보통 부모들이 아동복 살 때 모델을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게 '어떻게 보여줄까'였어요. 가장 아이다운 모습은 친구들과 신나게 놀때였어요. 아동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첫 시즌 화보를 준비했어요.”

아동 모델들은 인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최대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는데 초점을 뒀다.

라디루비는 일상의 공간에서 평범한 아이들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촬영해 기존의 패션 문법과 다르게 아이다움을 드러내겠다는 고민에서 인위적인 모습이 아닌 최대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는데 초점을 뒀다. 능숙한 아동 모델 대신 또래 친구를 가진 삼총사를 모델로 섭외했다. 아이들이 촬영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대한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관찰하고 촬영했다. 아동복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키즈포토그래프 보다는 라디루비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진작가를 섭외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과 다른 시도는 늘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보통 화보 촬영을 할 때는 공간 대여 시간이  곧 돈이기에 최대한 빠르게 진행돼요. 옷도 여러 벌이라 빨리 해야 하기에 능숙한 아동 모델을 쓰죠.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최대한 편한 분위기에서 노는 자연스러운 장면을 촬영하고자 했어요. 대신 사진작가님이 아이들 따라다니느라 고생 좀 했죠. 막상 사진이 나왔을 때는 너무 자연스러워(?) 물건이 팔릴까 우려도 했습니다." 

라디루비는 아이다움을 위해 아동복 제작 과정에서도 놀기에 활동성이 뛰어나는 기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옷에 달린 장식이나 옷의 촉감도 아이들이 불편함 없이 입을 수 있도록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색감도 신경 썼다. 아동복에서도 무채색 옷이 유행이지만 미취학 아동의 경우 색감 발달 시기라는 점을 고려해 가능한 다양한 색깔을 활용하고자 했다.  
  
# 왜 우리나라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제 대표가 이 같이 조금 다른 시각의 아동복 쇼핑몰을 고민하게 된 데는 지난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제 대표는 지난 6년 간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권리 옹호 일을 해왔다. 국내 아동 권리문제를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책개선 활동이라든지, 예산 법령 기획, 캠페인 활동 등이 주 업무였다. 아동을 위한 한 표 선거 옹호 활동, 농어촌 통학환경개선 옹호 활동, 동반자살 어휘 사용 근절 활동,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 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 활동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간 일들이다. 아동 놀권리 캠페인을 시작하며 펴낸 책 《놀이터를 지켜라》는 국내 놀이터 문화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제충만 대표는 아동권리 활동가로 일하다 아동복 쇼핑몰을 오픈했다.  

그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매년 진행해온 아동 행복도의 국제비교분석 보고서 결과를 보면서다. 이 보고서에서는 2014~2015년 전 세계 15개국 만 8세, 10세, 12세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의 행복감 국제 비교연구(the International Survey of Children’s Well-Being)’를 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 아이들이 모든 연령대에서 행복감이 가장 낮았고, 만 12세 아동의 행복감은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학생보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외모로 인한 행복감 저하가 더 컸으며, 이는 향후 더 어린 연령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행복감이 낮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던 터라 예상한 했지만, 그 이유에 오히려 더 놀랐어요. 아이들이 자신에 관해 가장 낮게 평가하는 부분이 자신의 몸과 외모고, 이 역시 국제적으로 낮은 편이었죠.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외모에 대한 고민과 상처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할 수 있는 대책에는 한계가 있었다. 외모차별주의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에 개인 차원의 노력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대안 찾아보자”...패션으로 더 나은 삶 실천하는 사회적기업가로 변신   

답답한 마음을 안고 있던 제 대표의 생각이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데는 아동복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던 아내의 역할이 컸다.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이주홍 디자이너는 세계적인 패션스쿨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 킹스톤대학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아동복기업에서 각광받는 디자이너로 일했던 재원이다. 

제 대표는 기존의 아동복 모델이 가진 문제에 대해 아내와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며 문제의식이 더 깊어졌다. 

“미의 기준이라는 게 사회적 기준인데, 그 기준은 어디서 왔을까 고민해보니 패션미디어, 쇼핑몰 모델이 기준점으로 작용하더라고요. 그런걸 부모나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그게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거죠. 그런 아동복 쇼핑몰들이 '무조건 나쁘다' 보다는 다른 의견, 다른 방식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사업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패션에 ‘패’자도 모르던 제 대표는 그렇게 '다른 방식',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스스로 대안찾기에 나섰다. 제 대표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며 만드는 과정에서도 공정한 룰을 지키며, 아동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패션을 지향하며 작년 10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올해 1월 (주)베니보우를 설립하고, 아동복 쇼핑몰 라디루비를 오픈했다.  

제 대표는 아직 채 다듬어지지 않은 사업모델을 고민하며 최근에는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 단기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전문가들로부터 사업에 대한 자문도 받고 있다. 

제 대표는 향후 아동복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도 고민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은 작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방문.  

라디루비가 고민하는 미래는 패션을 통해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고민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에 쇼핑몰 운영과 더불어 기관, 단체, 전문가 등과 협업을 통해 라디루비의 메시지를 담은 글과 웹툰, 영상을 배포해 대중 인식개선에 나서는 것은 물론, 쇼핑몰에서 아동과 함께 일할 때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정부 부처를 통해 배포해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는 고민이다. 

“자본도, 브랜드 가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작년에 방글라데시 7개 공장을 방문했어요. 그때 옷 만드는 하청공장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죠. 라디루비가 아직은 아동권리를 중신으로 고민하지만 나중에는 우리 옷을 만드는 여성근로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까지, 만드는 사람의 권리도 보장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진제공. 라디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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