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영화 '기생충' 트레일러 캡처

 

제 72회 칸 영화제 시상식은 한국 영화사에선 잊지 못할 순간이 됐다. 한국 영화 100년사 만에 처음으로 우리나라 감독이 최고 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뭐진 것이다. 오늘 자 조간신문 1면에는 트로피를 거뭐진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진 들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대서특필됐다.

이날 시상식이 끝난 후 진행된 포토콜 행사에서는 진짜 의리의 결정판으로 보이는 한 장면이 연출됐다. 봉준호 감독은 배우 송강호에게 프러포즈하듯 무릎을 꿇고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건네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송강호라는 위대한 배우가 없었다면 내 영화는 한 장면도 찍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명배우였던 송강호는 '모텔 선인장'에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봤다. 결과는 탈락. 당시 제작자들은 송강호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단 한 사람을 빼곤 말이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봉준호는 배우 송강호에게 긴 삐삐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작품에선 송강호 씨를 캐스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기회를 만나 함께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시 배우들은 오디션에 떨어져도 영화사로부터 어떤 제대로 된 통지도 못 받던 시절이라 봉 감독의 진정성 담긴 메시지는 배우 송강호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번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은 대가의 반열에 오른 봉준호 감독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벌이가 좋지 않았던 조감독 시절엔 결혼식 비디오를 찍거나 제품 사용설명서 비디오를 찍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1994년 단편영화 '백색인'으로 데뷔한 후 첫 도전한 장편 영화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에 참패했다.

절치부심하고 재기를 노린 두 번째 영화에서 그는 오직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하지만 전작을 실패한 젊은 감독이 영입하기엔 그는 이미 너무 거물급이 돼 버렸다. 그래도 용기를 내 시나리오를 보내고 출연 요청을 제안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거물급 배우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합시다’라고 젊은 무명 감독의 손을 덥석 잡아줬다. 그리고 만든 영화가 바로 '살인의 추억'이다. 배우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관객 수 550만 명을 기록하며 봉 감독에게 재기의 선물을 안겨줬다. 이후 괴물 1000만, 마더 300만, 설국열차는 935만 명을 불러 모으며 승승장구했다. 영화 기생충은 무려 192개국에 팔리면서 역대 한국 영화 판매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어려웠던 시절, 말하자면 남들의 눈에는 한없이 하찮고 쪼그라진 인생으로 비치던 시절 진정어린 마음으로 서로에게 용기를 주었다. 상대방의 삶을 존중하고 용기를 심어준 진정 어린 메시지와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화답하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 '기생충'은 탄생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걸 흔히 의리라고 부른다. 의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부끄럼 없이 내팽개쳐버리는 것이 요즘 세태다. 난 칸 영화제에서 오랜만에 진짜 의리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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