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 못난이 농산물 문제에 뛰어들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에요. 부모님끼리도 친구사이고요. 같이 뭘 한다고 하면 ‘어, 그래’ 하시는 게 전부였어요. 저희가 한다고 하면 일단 믿어주셨죠. 로렌츠를 시작할 때도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어요.”
다정한마켓 박민수 대표와 박상호 디자인책임은 필요한 일,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함께 해보는 죽마고우 사이다. 다정한마켓도 박 대표가 ‘같이 해볼래?’하면서 시작했다.
이들은 소상공인활력프로젝트를 통해 2016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1년 간 동네부엌을 운영했다. 매주 토요일 브런치를 만들었고, 우수 농산물을 공수해 와서 반찬가게를 운영했다. 동네부엌을 운영하며 원재료와 농산물, 식품제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박 대표는 업무를 위해 농가에 인터뷰를 다니면서 버려지는 농산물이 너무 많은 현실을 맞닥뜨렸다.
“그런 농산물을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불러요. 외형 때문에 판로가 없어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품들이죠.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습니다. 포럼도 다니면서 고민 했어요.”
열악한 환경, 반려동물 식품시장에서 가능성 모색
“1년 만이라도 내 철학대로 농사를 지어보면 좋겠어.”
“농사 짓는 거? 도박이지. 흉년이어도 풍년이어도 망해. 딱 중간만 했으면 좋겠어.”
두 친구는 농부들을 인터뷰하며 이 두 가지 말에 가장 충격을 받았다. ‘농사로 돈 많이 벌고 싶다’, ‘대농이 되고 싶다’ 정도가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1년 농사는 보통 그 가치를 1년 뒤에 평가받는다. 가격은 도매가를 따를 수밖에 없다. 다정한마켓이 마주한 농업 환경은 너무 불안정했다.
“못난이 고구마는 판로개척이 힘들어요. 작은 크기 같은 경우는 ‘한입 고구마’라고 해서 판로가 그나마 나은 편인데, 350g 이상 나가는 왕고구마는 아직 판로가 부족하죠.”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고구마일수록 크기가 각양각색이다. 친환경 제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판로를 찾기가 어렵다. 들쭉날쭉한 크기인 못난이 농산물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이들에게 눈에 띈 게 지인이 사업을 하고 있던 반려동물 시장이었다. ‘못난이 농산물을 레드오션인 반려동물 식품시장과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 이어졌다.
“음식 만드는 일을 했던지라 식품 정보 표기에 민감했어요. 반려동물 사료는 식품 정보 표기 등 정보가 부족하다는 걸 발견 했습니다.” 이들은 유기농, 친환경 반려동물 식품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두드리면 열린다”...진정성을 담아 출시한 첫 제품 ‘로렌츠스틱’
다정한마켓은 작년 10월 반려동물 식품 브랜드 ‘로렌츠’를 만들고, 첫 제품으로 유기농 고구마를 활용한 로렌츠스틱 2종(치킨고구마, 채소)을 개발했다. 주재료인 고구마는 못난이 고구마를 이용해 만들고 있다. 시장 도매가 평균과 농부 희망가, 로렌츠 희망 가격을 비교해 중간 정도 수준에서 고구마 가격을 정했다. 그렇게 2020년까지 맺은 계약을 통해 농가당 추가 수익이 3000만 원 이상을 웃도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시작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저희는 동네부엌을 운영할 때도 무항생제, 공장식 축산 등에 반대하고 유기농, 친환경을 고집했어요. 친환경 농산물을 받아서 제품을 만들기로 했잖아요. 건강한 간식을 만들기 위해 저희 가치를 실현해 줄 수 있는 공장이 필요했어요.”
함께하고 싶은 생산 공장을 찾아가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너희 같이 찾아오는 청년들 많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로렌츠는 현재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공장과 생산 계약을 맺기 전까지 10번 정도를 찾아갔다. 국내 최초로 HACCP 인증을 받은 사료제조 공장이었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뵙고 싶다고 구구절절 메일을 써서 보내고, 연락드리면서 찾아 뵀습니다. 꼭 이 곳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거의 빌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과 정성을 쏟아 부은 지 6개월, 로렌츠스틱이 세상에 나왔다. 로렌츠스틱은 제품 출시 후 자체 매장과 두레 생협에 입점해 판로를 확보했다. “공장 대표님께 감사했어요. 입점을 하기 위해 시찰도 받고, 서류 제출 등 공장 평가가 있었는데 그런 불편함을 모두 감수하며 협조해주었어요”
박 대표는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솔직함’이 중요했다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해주실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자고 생각했죠. 우리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대책을 세워 주셨어요. 꼼수 부리고 했으면 안 됐을 거에요.”
새로운 변화, 반려동물 식품 정보제공 수준 높이고 싶어
다정한마켓은 현재 로렌츠스틱 리뉴얼을 준비 중이다. 식품 정보를 온전히 제공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원하는 만큼 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강아지 같은 경우 음식에 조미를 하면 안돼요. 단맛, 짠맛에 민감하거든요. 강아지가 어떤 알러지가 있는지는 반려인이 가장 잘아요.”
이들은 반려인들이 식품 관련 정보를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문을 예로 들며 “반려인들의 고민을 해결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정한마켓은 이러한 의견을 바탕으로 디자인 변경과 함께 신제품 2개도 선보일 예정이다.
리뉴얼 후에는 원재료 함량까지 표기할 계획이다. 원재료 함량을 공개한다는 건 레시피를 공개한다는 말과 같다. 개발업체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우리가 먼저 공개하면 다른 곳에서도 이런 수준으로 반려동물 식품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확산되면 시장이 더 성숙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시장 성숙도를 우리가 모두 이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가좌의 등대’는 오늘도 환히 빛난다
다정한마켓은 서대문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다정한마켓을 ‘가좌의 등대’라고 부른다. 퇴근하지 않고 항상 불이 켜져 있어서다.
“육성사업지원 당시 지원금 같은 혜택도 중요하긴 하지만, 업무 관련해서 많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어요. 지원 안할 이유가 없었죠. 수업 열심히 듣고, 둘이서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로렌츠를 만들기 전 1년간 운영한 동네부엌을 통해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원할 때는 사회적기업이 뭔지도 정확히 몰랐어요. 좋은 일하고, 돈도 버는 일이잖아요. ‘멋있다’는 생각 밖에 없었죠”
다정한마켓은 ‘로렌츠’를 언어라고 표현했다. “친환경 농가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는 소셜미션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반려동물 식품 브랜드 ‘로렌츠’라는 언어로 못난이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 등 다른 방법으로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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