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 조사에 따른 2018년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 소화기 설치율은 65.3%다. /자료=소방청

크고 투박한 빨간색 소화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지만,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고 싶은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2017년부터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지난달 소방청이 실시한 ‘2018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 실태조사’에서 1만 2300가구를 조사한 결과, 소화기 설치율은 70%를 넘지 못했다. ‘마커스랩’은 소화기에 디자인을 입혀 먼 구석에서 쉽게 손에 닿는 곳으로 옮기고자 한다.

마커스랩은 2014년 ‘파이어마커스(FIRE MARKERS)’라는 브랜드로 시작했다. 당시 대표였던 이규동 전 대표를 필두로 폐소방호스로 가방을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으로 소방관을 위한 장갑을 만들었다. 파이어마커스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소방관을 위한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활약했다. 마커스랩이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설립한 건 2016년이다. 육성사업 시절 멘토였던 박건태 현 대표가 사업 취지에 감명을 받아 브랜드를 발전시킨 형태로 법인을 설립했고, 디자인 소화기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파이어마커스는 ‘소방관의 흔적’이라는 뜻을 담았고, 마커스랩은 ‘안전에 방점을 찍기 위해 연구하는 회사’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파이어마커스가 소방관들의 노고와 헌신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마커스랩은 재난 상황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강조하는 취지를 갖는다.

'세이피라인' 소화기. 세이피는 마커스랩이 만든 소방안전 캐릭터다.

일반 소화기는 총 중량이 5kg을 훌쩍 넘지만 마커스랩 제품은 2kg이 채 되지 않아 가볍게 활용할 수 있다. 소화기 디자인에는 마커스랩 직원과 팝 아티스트 등이 참여한다. 주로 소방에 관한 메시지를 담았으며 ‘소셜메세지라인’은 사랑·우정·진실·희망 등 사회에 전달하는 따뜻한 마음을, 동물이 그려진 ‘애니멀라인’은 동물 학대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마커스랩은 작년 하반기에 GS 홈쇼핑의 기부 방송을 3회 진행해 제품을 선보였다. 수익금 10%는 저소득층 화상 환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베스티안재단’에 기부했다. 연말에는 삼성카드가 용인시 노인복지회관에 기부할 소화기 400개를 공급했다. 올 초에는 SK스토아 홈쇼핑 방송에 3회 나가 소화기를 판매했는데, 여기서 얻은 수익금 10%도 베스티안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SK 임직원에게 사은품 등으로 상품을 보냈고, 호텔이나 자동차 회사 등에도 소화기를 공급한 바 있다.

방화포. 원단 재질은 실리콘 코팅 유리섬유다.

 

방화포 사용 방법.

 

마커스랩은 곧 사회적기업 인증 신청을 한다. 박 대표는 “인증받지 않아도 사회적 목적을 갖고 사업을 펼쳐나가는 기업들끼리 협력하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는 소화기를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화포를 출시했다. 550℃에서도 타지 않는 유리섬유로 제작했다. 화재 초기에 불을 덮어 끄거나 대피할 때 담요처럼 덮을 수 있다. 하반기에는 야광 소화기를 출시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낮에는 빛을 모았다가 어두워질 때 반짝 빛나는 제품”이라며 “어두운 환경에서 불이 났을 때 사용자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사람들이 소화기 사용법을 증강현실로 익힐 수 있도록 QR코드도 출시할 예정이다. 스마트폰 앱을 깔고 QR코드를 찍으면 3D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상 화재 현장에서 소화기를 활용해볼 수 있다.

평범한 시민 스스로가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제품·서비스를 합리적으로 공급하는 일, 이와 함께 개개인 모두가 안전을 지키는 ‘시민 영웅’이 되는 일. 마커스랩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적 목표다.

사진제공. 마커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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