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은 사회적경제안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가치나눔청년기자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눈으로 바라본 생생한 사회적 경제 현장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소이프 스튜디오의(이하 소이프) 고대현 대표는 중학교 시절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방황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기자 달라졌다. 꿈의 소중함을 그 때 절감했다. 디자인회사를 차렸고 나와 내 가족들이 먹고 살 정도만 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박했던 꿈이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자’로 바뀐 건 사진 봉사 활동 차 방문한 은평구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난 이후다.

"애들을 만나보니 그 시절 방황하며 힘들어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누가 내 심장을 쥐어짜는 느낌이었죠. 답답하고 아파서 이야기 하고 싶은데 들어주고 알아봐 주는 사람 없는 그런 절박한 심정이요. "    ---  고대현 소이프스튜디오 대표

 

고대현 소이프 스튜디오 대표는 보육시설 청소년들의 자립을 위한 디자인 교육을 통해 t상생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

 

맨 처음엔 그도 잘 몰랐다. 겉보기에 애들은 밝고 활동적이어서 무슨 도움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들한테는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남다른 상처가 있음을 깨달았어요. 시설에서 아이들과 지낼 때는 몰랐는데 일반 가정의 아이들과 어울릴 때면 위축되고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3년 뒤 그는 보육시설을 퇴소한 청소년들이 혼자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설 밖을 나온 후 절도를 하고 폭력을 휘둘러 보호감찰 시설에 들어간 아이도 있어요. 한 소녀는 SNS 채팅으로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성희롱 문자와 신체를 찍은 사진을 보내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편의점이나 음식점 알바 등을 전전하며 한달을 근근이 버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다른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 세상 어딘가엔 너희들과 연결된 끈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대표가 보육청소년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디자인회사 ‘소이프(SOYF)’를 창업하게 된 계기다. 소이프는 ‘Stand On Your Feet’ 즉 너의 자립을 응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함께 봉사 활동했던 동료 2명을 설득해 소이프를 시작했다.

 

디자인 교육으로 자립의 발판을 만들다

 

소이프는 ‘후원’보다는 ‘자립’에 방점을 둔 회사다. 보육시설에 살고 있는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인 디자인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소이프는 꿈나무 마을 시설 선생님들과 아동복지협회에 부탁해 각 보육시설로 교육생 모집 공고를 낸다. 이를 통해 디자인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된다.

첫 교육생들은 매주 2회 포토샵과 일러스트 교육을 통해 기본기를 익힌다. 한 달에 한 번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캘리그라피, 모델 사진 찍기 그리고 영상촬영과 편집 등을 배우며 상품 기획에서 디자인 제작까지의 전 과정을 익힌다.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외부강사를 초청해 스마트 기기 영상촬영 및 편집 방법을 배우는 교육생들의 모습.?

 

상품 제작에 참여한 교육생들에게는 자립 후 사용할 수 있는 CDA통장(디딤 씨앗 통장)을 주고 영업 이익의 약 5%내외를 저축해 자립지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소이프는 지난해 보육시설 퇴소를 앞둔 청소년들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풀어낸 양말세트를 출시했다. 

 

청소년들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풀어낸 양말세트?
수영장이 있는 2층 집에서 살고 싶은 바람을 담은 양말.
넓고 따뜻한 집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싶은 바람을 담은 양말
반려동물을 키우며 게임을 할 수 있는 집을 갖고 싶은 바람을 담은 양말.?

 

"보육시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제품디자인에 그들의 이야기를 녹여냄으로써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시킵니다. 아무도 너희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응원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려는거죠."

 

‘나를 브랜딩하라’ 라는 수업 시간에는 청소년들이 마인드맵을 통해 자신을 관찰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는다. 이 수업의 결과물은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를 넣은 크리스마스 카드와 아이필로우로 다시 태어났다. 

 

교육생들의 캐릭터를 적용한 아이필로우

 

“책으로만 공부하면 금세 지겨워지고 포기하기 쉬워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만들어질 때 지속적인 동기부여가 되죠. 교육이 단순히 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품으로 만들어져 소비자들과 만날 때 교육생들의 성취감과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일자리 연계와 지속성을 돕는 커뮤니티 운영

 

보육시설과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졸업하기 전 취업을 연계해주고 있다. 그러나 80~90%의 학생들이 2~3달 만에 퇴사 한다.

 

“취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인사를 건네고 두어 달이 지나면 많은 아이들이 ‘적성에 안 맞는다. 일이 어렵다. 동료직원과 상사와 잘 안 맞는다’라는 이유로 이미 퇴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 소이프는 교육생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적성을 찾아주고 주변에 아는 회사대표들에게 부탁해 인턴십과 아르바이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취업한 이후에는 계속 교류하며 중도에 퇴사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또 소이프는 만 18세가 넘어 시설을 나올 수 밖에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이른바 허들링(Huddling)커뮤니티다. 매월 요리, 경제, 주거 등 다양한 주제로 교육과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청소년들의 사회적·심리적 고립을 예방하고 일상생활 적응능력을 향상시킨다. 

 

허들링 커뮤니티 교육생들이 자취요리를 배우는 모습

지난해 말에는 보육종료 청소년 9명에게 살아갈 집을 구해주고 생활용품도 지원해줬다. 또 LH와 사회투자지원재단의 협력으로 퇴소한 청년 3명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쉐어하우스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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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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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프는 지난 2017년 여성 가족부 주관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됐다. 그는 소이프가 자리잡는 데는 빌더들의 도움이 컸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빌더(Builder)란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라는 뜻으로, 아동양육시설 청소년들에게 지속적인 교육과 일자리가 제공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이프의 정기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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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프에서는 월 1만원의 회비 납부 시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리워드 상품을 3개월에 한번 씩 보내준다. 현재 빌더 회원들은 총 70명으로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소이프의 비전에 동참하고 있다.

 

"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듯이 시설의 아이들이 올곧게 자라는 데는 생활실 선생님, 학교 선생님, 봉사자 분, 지원 기업체, 후원자 등 아이들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힘써준 덕분입니다. 저희 소이프는 그 중 한 부분일 뿐입니다.”

 

소이프는 올해 4기 교육생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요즘 새 제품 출시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번에는 ‘나와 닮은 동물’을 주제로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디자인해 캔버스 가방을 만들었다.

 

“저와 팀원들이 소이프 스튜디오를 설립할 때 세운 목표는 10년 안에 교육생 중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고 겸손한 학생을 후배 선생님으로 배출하고 더 나아가 소이프의 경영자로 키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함께 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그 길이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제공: 소이프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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