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포용적 혁신성장, 사람 중심의 경제도시 JEJU' 세미나가 열렸다.

제주는 예로부터 ‘삼다삼무(三多三無)’의 섬으로 불렸다. ‘돌, 바람, 여자’가 많고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삼다삼무’의 문화 속에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제주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온통 돌멩이 뿐인 화산섬에서 제주인들은 억척스럽게 밭을 일구고 서로의 곳간을 챙기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를 이어왔다.

이러한 제주의 역사적 유산을 지역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한 공론의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4일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포용적 혁신성장, 사람 중심의 경제도시 제주’ 세미나에서는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한 사회적경제 발전 방향과 해법에 대한 다양한 실천 전략이 제시됐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제주연구원과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공동주관한 이번 세미나는 빈재익 동아시아 신경제 이니셔티브 박사와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의 기조발제로 시작됐다. 김성기 SE임파워 박사가 진행한 2부 토크 콘서트에서는 △노희섭 제주특별자치도 미래전략국장 △고태호 제주연구원 박사 △김종현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대표가 패널로 참가해 ‘내가 생각하는 포용적 도시’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

◇ 빈재익 박사 - 포용적 성장혁신 ‘사회적경제 에코시스템’ 가동 되어야

빈재익 동아시아 신경제 이니셔티브 박사

첫 발제자로 나선 빈재익 동아시아 신경제 이니셔티브 박사는 지난 1월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International Visitor Leadership Program)을 통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피츠버그 시와 오하이오주 북부의 클리블랜드 시를 방문, 두 도시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포용적 혁신 성장 모델을 제시했다.

피츠버그 시는 U.S.steel이라는 제철회사의 성장으로 1943년 34만 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며 경제사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차 대전 종전과 탈산업화의 영향으로 U.S.steel의 생산 규모가 축소되면서 2000년에는 5만2500명, 2018년에는 2만9800명으로 고용 인원이 급감했고, 지역경제 또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됐다.

또 다른 사례인 클리블랜드 시는 이리운하를 통한 수운과 철도운송을 기반으로 한 철강업 중심 도시였다. 1970년대 이후 지역 산업이 쇠퇴하면서 1950년 91만 명이었던 인구는 2010년 40만 명으로 감소했고, 빈곤 인구도 증가했다. 주택 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조세기반이 흔들렸고, 산업 폐기물로 오염된 강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도시는 더욱 황폐해졌다.

빈재익 박사는 “한때 제조업 도시로 영광을 누렸던 피츠버그와 클리블랜드는 탈산업화로 도심공동화 문제에 직면했고, 도시재생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과도 맞물린다. 고용 없는 성장이나 지속가능성을 상실한 경제, 지역·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경제 모델이 발굴·육성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도시재생 전략의 일환으로 피츠버그는 고용 창출과 세입 기반 확충을 위해 1940년대에 ‘도시재개발청’이라는 경제발전 전담기관을 신설했다. 사회적금융 조직인 '이노베이션 웍스(Innovation Works)'는 혁신 스타트업 기업의 투자·기술 자문은 물론 지역소재 기업과 대학, 정부 기관과의 핵심 네트워크 구축을 도왔다. 그 결과 피츠버그는 자율기술, 로보틱스, IoT, 클라우드 컴퓨터 등에 강점을 가진 첨단기술 주도의 혁신허브로 진화하는데 성공한다. 클리블랜드는 대학 병원, 아트 뮤지엄, 자연사 박물관 등 비영리기관이 속해 있는 도시의 거점기관과 공공부문이 손을 잡고 자선기관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University Circle 지역을 생의학·보건의료 특화지구로 개발해 첨단기술 및 혁신 도시로 부상, 옛 강의 모습을 되찾았다.

포용적 혁신성장의 실재적 성과에 대해 빈재익 박사는 “사회혁신을 기술 편향적 시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혁신은 새로운 발명의 문제가 아닌 사회조직의 문제이며, 공공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경제 에코시스템 안에서 국가 단위의 다양한 지원제도와 민간 및 공공의 경제 주체 간 네트워킹이 긴밀히 움직여야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강종우 센터장 - ‘COREA 더 큰 제주 프로젝트'…모두를 위한 제주 만들기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포용적 혁신성장, 사람중심의 경제도시 제주로’라는 주제 발표에서 제주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COREA 더 큰 제주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강종우 센터장은 제주가 당면한 문제 상황을 ‘낙원의 역설’로 정의했다. 강 센터장은 “제주는 국제자유도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국제자유도시를 구상했고,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제주는 부동산 가격 폭등, 교통과 쓰레기 문제, 자원 훼손 등 많은 환경적 문제에 놓여 있다. 주민의 삶과 환경 가치를 외면한 개발 정책이 초래한 ‘낙원의 역설’에 문제인식을 가져야 하는 때”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역혁신과 사회통합을 주도하는 제주형 사회적경제 선도도시 전략으로 ‘COREA 더 큰 제주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강종우 센터장은 “우리의 나은 삶, 더 큰 제주를 위해 사회적경제가 공동체 발전을 이끌고, 공공시장경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포용적 신도시로 나가가야 한다. 더 큰 제주 앞에 붙은 꼬레아(COREA)는 제주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대한민국, 전 지구적 가치로 뻗어나가길 바라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2030년까지 제주도 총 고용의 3%, 지역 총생산의 5%를 차지하는 포용적 혁신도시를 구현하겠다는 각오다.

C(Community) 제주경제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O(Opportunity) 청년, 여성, 신중년, 어르신, 이주민의 일자리 기회를 위해

R(Reciprocity) 도민 사회의 상호 이익을 중시하는 사회적경제와 함께

E(Engagement)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가진 도민의 주도적 참여로

A(Activity) 역동적으로 실천하는 포용적 혁신도시 프로젝트의 가치를 지향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른 정책안에도 확고한 방향성이 드러났다. 사회적기업의 기여도만큼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사후보상 체계, 지역화폐로 지역순환 상호거래 시스템 활성화, IT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사회혁신 도시 만들기 등 제주 사회적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강종우 센터장은 "더 큰 제주 프로젝트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제주’라는 가치를 담고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실험들이 이어져 제주를 더 예쁘고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제로서 사회적경제가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뒤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포용적 도시란?’을 주제로 제주 현안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자들은 ‘포용적 혁신 성장’이 제주에서 갖는 경제?사회적 의의를 진단하고, ‘제주 사회적 경제’의 핵심 전략 과제에 대한 각자의 해법들을 쏟아냈다. 주요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왼쪽부터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빈재익 동아시아 신경제 이니셔티브 박사, 김종현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대표, 노희섭 제주특별자치도 미래전략국장, 고태호 제주연구원 박사, 김성기 SE임파워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회적 합의와 사회적 가치 계량화

고태호 제주연구원 박사=포용적 성장을 이루려면 효율성과 형평성이라는 두 기본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성장에 따른 이익이 있어야 하고, 그 이익을 재분배하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문제는 소득재분배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 경우 어떠한 개발 정책도 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 정치적으로 흘러갈 우려도 높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를 계량화하는 평가 지표가 개발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사회적경제의 핵심은 기업들이 이익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생산활동에 있고, 이때 구성원들의 사회적 가치가 기업 활동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행정의 변화도 수반되어야 한다.(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사회적경제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국(업무 부서)을 신설해 인사권을 부여한다면, 부처 간 부서 간 칸막이 문제 해결은 물론 통합적 지원 체계도 마련될 것으로 본다.

사회적자본 확보 위한 인적자원 육성안에 주력

노희섭 제주도 미래전략국장=사회적경제의 성패는 그것을 추진하기 위한 사람, 자본, 정책, 환경, 커뮤니티 등 사회적 자본을 확보하는 일에 달려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동시장 유연성이 매우 낮은 수준이며, 제주의 일자리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민선 7기 들어 제주도는 지역에 숨어 있는 사회적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인적자원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제주 도정이 역점 추진하고 있는 ‘더큰 내일 센터’는 제주의 미취업 청년들에게 일자리 창출과 직업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디지털사회혁신 플랫폼인 ‘가치더함’도 시범 운영 중이다.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도민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제안하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공공사업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방식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해 사회적 자본을 돌출시키고, 이를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선순환적 행정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혁신적인 실험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김종현 제주사회경제네트워크 대표=포용과 성장은 모순 관계 같지만 ‘포용적 성장’은 이미 전 지구적 화두가 됐다. 기존의 총량적 발전이 아닌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상생 전략으로 ‘지역의 문제를 바꾸는 혁신’이 떠올랐다. 제주 섬은 역사적, 자연적, 환경적으로 어느 지역보다 강한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혁신을 위한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제주 사회적경제의 성장을 위해 먼저 제주 미래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에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껏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어 온 도민들을 협의 과정에 참여시키고, 공공 자원을 제도화하는 과정에도 도민의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마지막은 실험이다. 사회적 합의와 공공 자원을 활용한 혁신적인 실험의 장으로써 지역을 재구성하고, 사회적경제조직과 혁신 인재들을 효율적으로 매칭 지원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중간조직의 역할과 책임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모두를 위한 제주'의 가상 모델 /사진제공=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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