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짐에도 국가, 정치 등 제도적 구조에서는 시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시민들이 정부나 공공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다른 탈출구를 찾도록 만든 게 전 세계적으로 최근 확대되는 ‘포퓰리즘 경향’이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곧 도래할 흐름이다. 정부와 시민 간 끊어진 다리를 연결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시민사회의 역할이다. 지금이야 말로 다른 차원에서 시민사회가 필요한 사회이며, 전과 다른 미션과 역할이 요구되는 시기, 기회의 시기라 생각한다.”

지난 16일 '2019 강한시민사회 3차 포럼-시민사회 지형의 변화'를 주제로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열린 포럼에서 김병권 서울시 협치자문관은 현재의 시회사회 지형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날 포럼은 서울시NPO지원센터와 사단법인 시민이 공동으로 지난 3월부터 총 8회에 걸쳐 진행하는 연속포럼 중 하나로, 시민사회 역할과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16일 서울시NPO지원센터 주최로 시민사회 역할과 방향에 대한 포럼이 열렸다. 

# 거대 시민사회 모델→생활 지역기반의 커뮤니티 시대로 

이날 메인 발제자로 나선 김 자문관은 “과거 시민사회가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 영향력 측면에서나 참여회원 증가세 등에서 답보상태라는 의견들이 많고, 공공과의 협력관계 급팽창으로 시민사회가 단순한 행정보조자로 격하된다는 등의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시민사회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시장화의 압력 아래 국가는 물론 시민사회 전체가 잠식당하는 추세 속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김 자문관은 지금의 '위기’로 보는 인식을 시민사회 주체들이 ‘기회’로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병권 서울시 협치자문관

김 자문관은 지금의 시기를 기회로 보고 시민사회 주체들이 기존의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에 앞서 시민사회를 단순히 사회운동 공간이자 운동주체 형성의 장으로만 볼 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시민들의 중요한 삶의 영역'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기업과 시장이 같은 의미가 아니듯이, 시민사회와 시민단체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기존 방식 중 시민사회 주체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활동하는 회원'보다 '후원하는 회원'들에게 의지하는 경향을 꼽았다. 김 자문관은 "후원회원 중심의 시민단체는 대개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는' 특성을 보였다"며 "일반 시민회원을 대신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전문가들이 발언해주고 시민들은 회비나 내고 박수쳐 주는 역할분담 구조로 오래 간다면, 시민사회의 적지않은 부분은 전문가들이나 준전문가들로 채워지고 활동가들도 전문가들을 지원하는 역할로 고정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회원의 '회비'가 아닌 '시간'을 요청함으로써 활동하는 회원 중심의 조직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최근 공공기관이나 기업으로부터 지원 받는 방향으로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시민사회 내에서도 기능적으로 자원동원 전략에 메몰되는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시민사회 내에서도 온라인을 통한 조직화가 활발해지는 현상에 대해 김 자문관은 SNS 등 온라인은 시민사회의 커뮤니티 조직화의 플랫폼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규모의 참여와 토론은 점점 온라인 미디어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겠지만, 더 작은 규모의 공론장에서는 언어나 문자를 넘어, 직접 만나고 발품을 파는 등 정서와 분위기로 전달되는 것들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자문관은 지금 시기를 거대 기업·거대 국가·거대 시민사회 모델의 시대는 가고 생활 지역기반의 커뮤니티가 중요해지는 시기로 규정했다. 그는 "올해 서울시 정책을 들여다보면, 모든 실국의 사업 마지막은 마을(동)에서 무엇을 하겠다로 마무리된다"며 "이처럼 행정조차도 주거생활거점으로 밀착되고 있는 흐름에서 시민사회도 주거생활지역 반경의 진정한 커뮤니티 조직화를 시민사회 조직화의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중심의 변화를 통해 당장은 거대 사회적 쟁점들을 변화시킬 동력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는 어렵지만, 시민들이 일상의 삶을 의존할 공간이 되어줄 수 있고, 결국은 이를 토대로 거대 시민사회의 뿌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시민활동가의 상도 기존의 '싸움하고 저항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토론 잘하고 의견을 잘 모아내는, 즉 공론장을 조직하는 새로운 역할'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기존의 자원봉사 프레임이 시민활동가의 사회적 활동 가치와 활동력, 자존감을 세우는데 걸림돌이 되었기에, 시민활동가도 '(사회적) 가치 창조자'임을 인정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자문관은 개인의 사회적 가치 활동에 대한 사회적 보상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개인의 사회적 가치 활동 보상 방안과 제도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며 "직접적으로 참여소득제도를 검토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타임뱅크제도나 세금의 일정 비율을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하는 등의 방안을 열어놓고 다양한 모색을 해애 한다"고 말했다.  

# 기존 시민사회 운동 방식 넘어 주체·방식 등 새로운 흐름들 생겨나  

기조 발제에 이어 이날 포럼에서는 최근 시민사회 지형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도 연이어 소개되었다. 

(사)에너지나눔과평화는 지속가능한 사회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하다 13년 전 사회적기업 방식의 운영을 선택했던 단체다. 김태호 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는 “우리 사업이 아무리 옳더라도 외부의존적 재정으로는 지속가능하기 힘들다는 고민에서 경제적 원천을 우리 내부에서 만들어 내어 스스로가 시장경제의 한 주체로 서는 방식을 선택했다”며 나눔발전소 운영이 또다른 지속가능한 운동 모델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에너지나눔과평화는 지난 13년 간 태양광발전소인 나눔발전소를 직접 운영하며 온실가스를 줄이고 전 세계 빈곤층을 지워하는 기금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지난해까지 총 21기 7000kW(1천만 kWh 전력생산, 2500가구에 전력상시 공급, 온실가스 연간 4000톤 저감)의 나눔발전소를 갖추고, 연간 30~40억의 매출을 올렸다. 이렇게 마련된 수익금으로는 세계 에너지빈곤층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김태호 에너지나눔과평화 대표

‘정치하는엄마들’은 기존의 전문가, 활동가 중심의 시민사회운동에 대응하는 당사자운동의 대표 사례로 소개되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시민사회가 시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 위계가 발생한다”며 시민사회 안의 위계, 시민사회와 시민 사이의 위계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계몽이 아니라 설득이 되어야 하고 대화를 요청해야만 한다”고 제언했다.  

정형화된 조직 체계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활동하는 사례도 소개됐다. 

'한국사회버성폭력대응센터’는 사회적으로 온라인 내 성폭력 문제가 이슈가 되던 시기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시작해 2017년 조직화된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자원과 경험이 부족하지만 솔루션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사이버성폭력 전문 피해지원 프로세스 개발, 경찰청 내 사이버성폭력 전담부서 신설 등의 성과를 냈다. 

1인 독립 활동가들도 시민사회 내 새롭게 나타난 흐름?으로 소개됐다. 

우성희 독립활동가의 시대 활동가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독립활동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2017년 서울시NPO지원센터 미트쉐어사업을 통해 모임을 시작했는데 세 달 만에 100명이 모이고 현재는 3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시민사회 내 1인 활동가의 등장에 대해 그는 “시민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툴, 미디어, 온오프라인 플랫폼 등 조직이 아닌 개인 수준에서 시민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으며 “하고 싶은게 많아졌지만 기존 단체에서 담아내기 어렵거나 기존 시민사회단체와 다른 방식을 원하는 개인들이 주로 1인 활동가로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 독립활동가는 “독립활동가의 활동이 시민사회 생태계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그들 간의 활동이 연결되고 규모화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오현 슬로워크 대표이자 빠띠 설립자는 이 같이 다양해지는 새로운 시민사회의 흐름 속에서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권 대표는 “시민사회가 디지털 기술을 도구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민의 참여와 협력을 위해 필요한 기반 기술과 제도 마련(공론장, 거버넌스 모델 등)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진제공=서울시NPO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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