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은 사회적경제안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가치나눔청년기자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눈으로 바라본 생생한 사회적 경제 현장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전주 시청 옆 골목, 서노송동에 위치한 전주빵카페 전경

 

“빵 봉지 글씨가 왜 이렇게 커요?”

가게를 다녀간 손님들이 하나같이 묻는다. 이곳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눈이 침침한 할머니들이기 때문이다. 글씨를 잘못 봐 ‘전주비빔빵’ 포장지에 ‘크림치즈빵’을 넣거나 제품 수량 11개를 1개로 보고 잘못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 보통 매장 같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겠지만, 이곳에선 웃어넘기곤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전주빵은 19살부터 80살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빵을 만든다.

전주의 명물 비빔밥을 소로 만든 ‘전주비빔빵’

㈜천년누리푸드는 국산 농산물로 90여 가지 빵과 과자, 디저트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2012년 사회복지법인 ‘나누는 사람들’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단으로 출발했다.

장윤영 ㈜천년누리푸드 대표는 맛의 도시 전주란 강점을 살려 국산 재료로 제빵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입 밀이 들어오는 저가 시장에서 국산 밀을 쓰면서 경쟁하려면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전주비빔빵’이다.

 

천년누리푸드 대표상품인 ‘전주비빔빵’. 비빔밥을 통째로 빵 안에 넣어 밥알부터 채소까지 씹히는 맛을 그대로 살렸다.?

“전주하면 비빔밥이잖아요. 그 비빔밥을 식당에서만 먹고 가니까 선물로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장 대표는 ‘전주비빔빵’을 만들기 위해 전주에서 할머니들 사이에 이어져 내려온 비법 78가지를 수집했다. 그리고 빵과 잘 어울릴만한 비빔밥 소스를 개발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빵이 눅진눅진해지지 않도록 채소의 수분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갖은 노력 끝에 수분 조절법을 고안해 특허도 받았다.

 

국내 농산물 우선 ‥ 환경도 지키고 지역 농가도 살리고

?천년누리푸드의 또 다른 차별성은 신선하고 건강한 빵을 만드는 것이다. 빵은 우리밀 100%로 만들어진다. 우리 밀은 모두 전주와 익산, 고창에서 공수해온다.

 

?“현재 국내산 밀은 저렴한 수입 밀에 밀려 자급률이 1%밖에 안 돼요. 국산 밀은 겨울철에 자라기 때문에 농약을 칠 필요가 없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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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에 들어가는 팥은 장수군 산골 할머니들이 재배한 토종 팥으로만 만든다. 다른 채소들은 새벽마다 인근 시장에서 가져온다.

 

황금옥 할머니네 팥밭. 황 할머니는 자신이 수확한 팥을 매일 삶아 천년누리푸드에 제공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건 국내에서 쓰자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환경을 지키고 지역 농민들도 살리는 일이니까요.”

 

매장의 용기나 포장도 전부 지역 내의 기업과 협력해 진행한다. 그림과 디자인은 이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다.

 

글씨가 큼직한 포장지. 눈이 잘 안 보이는 할머니 근로자들을 위한 배려다. (사진=진유림)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로 사회통합

?천년누리푸드는 수익이 나면 소외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둔다. 현재 직원 35명 가운데 과반수가 다문화 여성과 노년층, 장애인 등으로 취약계층이다. 이 밖에 제과제빵 기능장, 식품영양 석박사들과 청년들이 함께 일하는데, 연령층은 19세부터 80세까지 폭넓다.

"지속가능하고도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지면 소외계층들의 사회적응력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사회통합은 저절로 이뤄진다고 봐요."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청각장애인 직원 한 명을 위해 수화 통역사가 와서 일일이 소통을 도와줘야 했다. 청년 제빵사들과 손이 느린 어르신 근로자들 간에 세대 갈등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기계의 노후화도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요소다.

“저희는 중고오븐 한 대로 시작했어요. 그래서 중고오븐 한 대의 기적이라고 불리곤 한답니다. 수익이 나면 대부분 일자리 창출로 쓰다 보니 시설이나 공간에 재투자할 여력이 없어요. ”

 

자동화 시설이 부족해 수작업으로 빵을 빚어내고 있다.

 

이 같은 어려움들을 천년누리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다.

“특별한 방법이야 있겠어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누구보다도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일하며 전 직원이 합심해 헤쳐나가는 거죠.”

 

그런 장 대표의 마음을 알아주듯 2016년부터 SNS와 텔레비전을 통해 천년누리 전주제과의 이야기가 소개되면서 매출이 크게 올랐다. 그 사이, 매출은 15배 늘었고 직원 수도 초창기 4명에서 35명으로 10배가량 증가했다.

 

작지만 단단한 지역 대표 기업이 되고파

전주역에 입점한 날 자랑스럽게 상품을 들고 있는 장윤영대표(중앙)와 직원들
/사진=SK 이노베이션

천년누리푸드는 사회적기업 최초로 전주역에 올해 4월 입점했다. 전주역의 월 임대료는 1600만 원. 부담이 큰 편이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공항이나 전주를 대표하는 컨벤션센터 입점도 도전해볼 작정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행사장에도 판매 부스가 마련돼 외부인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지역 브랜드 하나를 키워놓으면 상생하는 공동체, 공유경제가 만들어지더군요. 우리는 전주 할머니들의 손맛을 무기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작지만 단단한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되고 싶어요. 사회적 가치 추구가 ‘돈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려고 합니다.

글: 가치나눔 청년기자단 2기 진유림

사진제공: ㈜천년누리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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