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분야에도 대(大)기업이 있다. 전통적인 대기업처럼 매출이나 규모가 큰 기업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사회변화에 기여하며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만들어가는 기업을 말한다. 또 10년 이상 꾸준히 위기를 넘기며 성장하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기업이다. 어느 때보다 사회적경제 분야의 양적 성장이 커지는 요즘, 그 대기업들이 밟아온 10년 이상의 경험과 고민, 그리고 위기를 헤쳐 온 힘의 원천이 질적 도약을 앞둔 사회적경제 영역에 작은 인사이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규모는 작지만 큰 가치를 만들어가는 강소 사회적기업가들을 본지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이유다. 
2002년부터 계속되는 홍대 앞 예술시장 프리마켓. 참가 등록은 분야, 나이, 경력에 상관없이 생활 속에서 창작을 실천하는 누구나 가능하다.

홍대 놀이터라 불리는 홍익문화공원에는 2002년부터 매년 프리마켓(free market)이 열려왔다. 지금은 다양한 수공예 제품을 파는 프리마켓 행사가 누구나에게 익숙하고 여기저기에서 진행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은 기존에는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규정되던 예술이 시민 일상과 가까워지게 만든 선구자 역할을 했다. 

홍대 놀이터 프리마켓은 한·일 월드컵 떄 기획된 문화 행사다. 홍대 주변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조직 ‘홍대신촌문화포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 예술’이라는 모토를 갖고 시작했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참여 열기가 높아 김영등 당시 사무국장이 행사를 확장했다. 그가 프리마켓을 지속가능한 행사로 만들기 위해 2003년 새로 설립한 게 ‘일상예술창작센터(이하 센터)’다. 대표 자리를 거쳐 현재 센터가 위탁 운영하는 '서울여성공예센터 더 아리움' 센터장으로 있다.

사회적기업 모델이 ‘찰떡’이었던 이유

최현정 대표. 일상예술창작센터는 1인 창작자들의 활동 기반을 만들고, 그들의 지속가능한 작업과 생활을 위한 다채로운 활동을 전개한다.

센터는 2003년 5월 비영리 단체로 시작해 프리마켓을 이어나갔다. 김 전 대표의 자리를 이어받은 최현정 대표는 “공공미술, 미술 교육 등 사업 제안이 많이 들어오면서 조직을 장기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새로운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논의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으로 거듭나게 된 이유다.

프리마켓에서 1년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다 센터에서 상근하게 된 신문자 사무국장은 “비영리 단체는 가능한 사업 범위가 제한적이라 처음에는 일반 회사 형태를 띠자는 의견도 나왔다”며 “마침 한창 사회적기업 아카데미 등이 활성화되고 있을 때라 내부에서 고민 끝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신청해보자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인증 신청을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했지만 센터가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신 사무국장은 “미션이나 비전, 핵심 가치 등을 스스로 가다듬으며 우리의 존재 이유를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경제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중간 지원 기관이었던 함께일하는재단을 통해 컨설팅 강좌를 듣고, 사회적기업 관련 책으로 조직 내 스터디를 진행하며 준비하던 센터는 2010년 고용노동부 인증 혼합형 사회적기업이 됐다. 사회적기업 모델은 센터가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은 18년째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홍대 앞 놀이터를 장식하며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한다. 매년 700여명의 1인 창작자와 소규모 생산자들이 참가를 신청하며, 각종 퍼포먼스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시장·박람회·가게 등 사업 늘어나...“어려움도 있었죠”

인력이 늘어난 덕분에 센터는 프리마켓 외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사업도 실행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센터가 진행한 주요 사업은 작품 유통, 시민 시장, 박람회, 문화 기획 등이다.

'생활창작가게 KEY' 본점. 사회적기업 인증 이후 사업모델 개발 일환으로 탄생했다.

센터는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후 2011년 홍대입구역 주변에 ‘생활창작가게 KEY’라는 오프라인 상점을 열어 1인 창작자를 비롯한 다양한 비주류 창작자와 소규모 생산자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한다. 2015년 연남동에 2호점을 냈다. 

외환은행과 협업해 연 ‘명랑시장’ 현장. 청년예술가들의 전시, 판매 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조직과 비영리 단체의 캠페인 활동, 먹거리 판매, 퍼포먼스 등이 이뤄졌다.

프리마켓 외에도 여러 기업과 협업해 시민 시장을 운영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외환은행과 협업해 명동 외환은행 본점 삼각공원에서 ‘명랑시장’을, BC카드와 협업해 2016년 9월부터 10월까지 청계천 일대에서 프리마켓 ‘사랑,해’를 열었다.

현재 주관하는 박람회는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로, 2014년 코엑스에서 처음 개최해 올해 6회를 맞는다.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는 우리나라 1인 창작자와 사회적경제기업 상품뿐만 아니라 외국의 다양한 수공예 제품도 선보인다. 제품만 있는 게 아니라 창작자들이 직접 와서 교류하는 시간을 보낸다. 

또한 2016년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돼 이듬해부터 서울여성공예센터 더 아리움을 위탁 운영하기 시작했다. 더 아리움은 여성공예인들의 창작과 창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옛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을 리모델링했다. 

사업이 커지고 다양해지면서 센터가 추구하는 가치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어 좋았지만, 새로운 일들을 맡으며 생기는 어려움도 있었다. 2003년부터 상근하다 김 전 대표가 더 아리움의 센터장이 된 후 빈자리를 채운 최 대표는 “더 아리움의 시설부터 모든 걸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본부 인원 중 4명이나 건너가야 했다”며 “함께 일하던 사람 중 여럿이 빠지다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이 생겼고, 이를 메꾸기 위해 다른 단기 사업들을 진행했는데 에너지나 역량이 축적되기보다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원들은 움켜쥐어야 할 사업과 놓아야 할 사업을 구분하는 작업을 거쳤다. 최 대표는 “이사회를 자주 열고 내부 스터디도 하면서 우리가 사회적기업으로서 집중적으로 다뤄야하는 게 어떤건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2019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 대표가 주목하는 관람 포인트는?

2018년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 현장.  아시아 핸드메이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이하 페어)는 센터가 주관하는 행사 중 가장 큰 축제다. 작년을 기준으로 17개국 335팀이 참가해 총 관람객 수는 3만 명 이상을 끌어모았다. 행사 기간인 4일 동안 13억원 이상의 판매 매출액을 달성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DDP에 자리잡을 페어. 주제는 ‘남과북’이다. 핸드메이드를 소재로 남과 북의 이야기를 다룬다. 통일 관련 운동을 하는 청년 조직,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힘쓰는 국내 주체 등과 협력해 주제관 전시를 꾸렸다. 핸드메이드와 남북 관계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최 대표는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가구, 일상 용품, 패션 상품 등을 전시했다”며 “화면이나 문자로만 접하던 북한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북한 카드게임 ‘사사끼’ 체험 프로그램, 남북토크 등이 준비돼있다. 그는 “‘남북 통일을 빨리 해야 한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청년들이 남북 관계에 대한 본인만의 시각을 갖게 하자는 취지가 있으니 많이 와서 체험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국제관도 언급했다. 그에 의하면 3, 4년 째 참가 중인 팀들도 있다. 신 사무국장은 “국제관은 항상 재미있고,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어떤 팀이 새로 올까 궁금해한다”라며 “저녁에는 국제 교류의 밤을 열어 팀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다”고 설명했다. 올해 국제관에는 16개국 53개 팀이 참가해 각 국가의 특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최현정 대표가 말하는 강소 사회적기업 포인트>

1. 코어 멤버가 중요하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핵심 원년 인원들이 남아 있어야 한다. 물론 이들이 새로운 조직원들이 들어와 적응하는데 장애물 역할을 하면 안되지만, 오래된 멤버들이 신뢰를 쌓고 조직을 끌고 가야 지속 가능하다.

2. 네트워크의 힘을 활용한다.
현장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쌓으면 힘들 때 힘이 되고 사업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네트워크를 잘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다..

3.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많이 만난다.
같은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의 만남을 계기로 해서 영원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컨설팅 전문가와 연이 닿았을 때, 이사나 감사로 들여오는 등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조직이 도움이 필요한 때 애정을 갖고 달려와준다. 다양한 영역에 우리 편을 거두는 게 바람직하다.

 사진제공. 일상창작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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