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

아이는 앳된 모습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혼자 캐나다로 떠났다. 본인이 원해서 갔으니 잘 지낼 거다, 우리 부부는 덤덤히 각자 할 일이나 열심히 하고 지냈다.

하루는 아내가 말했다.

“아이 보내고 너무 태평하네. 그간 물고 빨았던 건 가식이었던 거냐 친구가 그러더라.” 

아내 나이 26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기를 꼬박 1년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곧 건강하게 자기 살길 찾으면서 슬픔을 떨쳐냈다. 결혼 후 2년 만에 장인이 돌아가셨다. 아내 나이 28세 때였다. 어머니 때와는 다르게 무거운 마음을 영 떨쳐내질 못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어머니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고, 서로가 언제나 든든한 지지자였고 친구였고 엄마였고 딸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후회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온전히 소통하고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에 미안함, 미련, 죄책감을 남겼다고 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더 오랫동안 울었다.

나는 부모님이 여전히 건강하시다. 내가 슬프게 경험한 가족의 죽음은 없었다. 조부모가 떠나실 때도 그저 덤덤했다. 슬픔은 오히려 입관하기 전 할아버지 손을 얼굴에 비비며 우는 엄마를 위로할 때 찾아왔었다. 사랑은 어쩌면 함께 나눈 시간의 양과 교감의 질을 곱해서 결과를 계산할 수 있는 산술적 과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이었어도 폭발적인 교감을 나눈 것과 긴 시간 동안 가벼운 교감을 나누어 그 값이 모두 100이 된다고 할 때 이 사랑은 같은 것일까.

사진은 글 속의 '뮤'가 아님/출처=클립아트코리아

딱 3년 전에 두 마리의 고양이를 입양했다. 아비시니안 품종의 암컷 뮤와 러시안블루 품종의 수컷 포였다. 뮤는 애정 표현에 능했다. 눈을 맞추며 얼굴을 비비고 같은 침대를 썼다. 반면 포는 데면데면 겉돌았다. 한 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뮤는 고양이에게는 치명적인 복막염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달여 치료했지만 마지막 일주일은 아이가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자존심 강한 녀석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누운 자리에서 힘없이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며칠을 밤새 간호했다. 음식물을 튜브로 투여했으나 대부분 도로 토했다. 물 마시는 것도 힘들어했다. 우리는 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내에겐 나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몸이 축 늘어진 뮤를 포대기에 싸 안으며 했던 말을 나는 아직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뮤, 아빠랑 어야 가자.”

병원으로 가는 내내 한 손으로 운전하며 오른손으로는 뮤를 쓰다듬었다. 의사가 약물을 투입한 뒤 뮤는 내 가슴에서 천천히 숨을 거뒀다. 아직 온기가 남은 녀석을 안고 화장터로 가는 길에 나는 오열했다. 재가 된 뮤는 작은 단지 안에 들어가 1년을 더 내 침대 맡에 있었고, 지난해 새 집으로 이사오며 거실 바로 앞 정원의 소나무 아래에 곱게 묻어주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던 그 슬픔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지금은 이쁜 추억만 남아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뮤에게도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나눴다. 그래서 후회됨이 없었다.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으면 사람이 조금 얼빠져 보이기는 한다. 청춘도 아니고 반백 년을 산 사람들이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다. 일도 책도 거리도.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은 차고 넘친다.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거야.” -심수봉의 ‘사랑 밖에 난 몰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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