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유기견이었던 치치는 미국에 입양된 후 재활치료를 거쳐 공식 치료견으로 활동하고 있다. 치치는 2018년 영웅견으로 뽑혔다. 출처: chichirescuedog 인스타그램

 

# 그저 잘 지내고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모습으로 내 앞에 다시 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해 10월 한 조간신문에는 ‘네다리를 잃은 한국 유기견.. 미국 최고의 영웅견이 되다’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유기견은 나도 아는 치치(Chichi)다. 

내가 치치를 처음 알게 된 건 전자 의수를 만드는 이상호 ‘만드로’ 대표를 통해서다. 그는 어느 날 동물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학대로 네 발이 잘려나간 골든 레트리버입니다. 걸을 수 있어야 입양이 가능한데 다리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그는 치치가 걸을 수 있도록 의족은 물론 힘들 때 쉴 수 있도록 휠체어도 만들어줬다. 치치는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이 대표는 “치치가 그곳에서 더 좋은 의족을 차고 재활치료도 받을 것”이라며 그 동네에는 “장화 신은 강아지 치치란 동요도 불린다”라고 전해줬다.

그리고 2년 후 치치는 미국 최고의 영웅견으로 거듭났다. 치치는 현재 미국의 재활센터를 돌며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는 공인 치료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비록 다른 개처럼 빨리 달릴 수는 없겠지만 장애로 심신이 힘들어진 사람들에게 재활의 의지를 심어주는 중요한 직책을 수행 중이다. 

# 미국 소울의 대부 레이 찰스(Ray Charles Robinson)는 7살 때 시력을 잃었지만 지팡이에 의존하지 않고 걸었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지팡이 없이 걷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보이지 않다 보니 들리는 게 발달했고 스치는 바람과 같은 미세한 떨림과 소리에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볼 수 없었기에 평생 불편함을 겪어야 했지만 남다른 청력과 음악에 대한 천재성으로 그래미상을 휩쓸었다. 그의 노래 ‘ Georgia on My Mind’는 조지아 주를 대표하는 곡이 되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만일 한 국가나 사회에도 품격이란 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생각해본 품격은 사회적 약자들이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예비사회적기업 그레이프랩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발달장애인 청년들과 창작활동을 통해 아트 에디션을 디자인하고 수익을 배분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나온 친환경 독서대와 다이어리 등은 올해 미국 뉴욕시장에 진출하는 경사도 이뤄냈다. 그들의 재능은 김민양 대표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에서 출발했다. 

 그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미술 봉사를 하다가 발달장애인들의 개성 넘치는 그림 솜씨와 성실성, 그리고 상대방이 슬프거나 힘들 때 걱정해주는 공감 능력에 반했다. 

“발달장애인들이 더 뛰어나게 그림을 잘 그린다기보다는 남다른 점이 있었어요. 일반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이점이고 이 개성을 잘 살렸더니 훌륭한 재능이 됐습니다. 우린 장애인을 생각했을 때 부족한 점을 찾아내 이를 고쳐주려고만 합니다. 이보다는 그들이 잘하는 점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일반인보다 더 잘할 수 있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일반인들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팔이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잡도록 하고 다리가 불편한 이에게 빨리 달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팔이 없는 대신 튼튼한 다리가 있고 어떤 이는 걸을 수 없지만 두뇌만큼은 혹은 손재주만큼은 뛰어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중 우리가 무엇을 보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한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거기엔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TED에 나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서 C 학점을 받아왔다면, 못한다고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더 가르쳐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리더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소질을 발휘하기 까진 ‘시간’이라는 비용이 들어간다.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이 초기 비용을 감수한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장애를 이겨낸 작은 영웅들이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이제 ‘보호’차원에서 ‘능력별 소질 계발’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안타깝지만 현실에서 중증 장애인은 ‘보호’조차도 힘든 상황임은 맞다. 하지만 장애의 종류나 중증 정도가 다양한데도 우리는 그들을 ‘장애인’이란 한 바구니에 담아 놓고 무능력자로 치부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분야에서 A 학점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저마다의 능력을 최고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 개인의 성장을 돕는 것이 한 사회와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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