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만들어도 팔 곳이 없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큰 문제다. 일반 기업에 비해 영세한 사회적경제기업들에게 판로문제는 더 큰 난관이다. 이러한 문제를 사회적경제기업들이 뭉쳐서 해결한 사례가 있다. 바로 대구와 경북의 종합유통채널인 '종합상사' 모델이다. 개별기업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공기관 등을 공동의 힘으로 대응해가는 것. 실제 이 두 모델은 소기의 성과를 내며 고공행진 중이다. 이에 판로를 고민하는 지역들도 공동 유통법인을 만들거나 만들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고, 정부와 공공기관들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다. 사회적경제 영역에 부는 유통법인 설립 붐, 현황과 전망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공공기관은 사회적경제기업을 모르고, 사회적경제기업은 공공시장을 몰라 거래가 어렵다. 특히 사회적경제기업이 공공기관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문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신력과 대표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었다. 이제는 전국 842개 공공기관은 어디든 공략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2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한 공공구매 지원기관 워크샵에 참여한 대구 무한상사 사회적협동조합의 사례발표에 참석자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대구 무한상사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대구무한상사)은 사회적경제 종합유통채널로, 설립 1년 만인 지난해 약 12억원의 실적을 올리며 사회적경제기업들이 가장 큰 어려워하는 판로개척에 성공했다.  

이날 워크샵에는 전국 16개 기관에서 공공구매 지원을 담당하는 중간지원기관 관계자들과 지자체 사회적경제 담당자,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부산지역의 한 관계자는 “지역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판로다”며 “공동 유통플랫폼을 만들면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한 공공구매 지원기관 워크샵에는 전국 16개 기관에서 공공구매 지원을 담당하는 중간지원기관 관계자들과 지자체 사회적경제 담당자,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성공사례 만들어가는 경북종합상사, 대구무한상사 

사회적경제기업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매출 비중은 공공조달 시장이다. 혼자서는 어려운 공공시장의 판로를 공동으로 맞춤 공급하기 위해 문을 연 ‘경상북도 사회적기업종합상사 협동조합(이하 경북종합상사)’은 사회적경제 내 종합상사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과거 다양한 상품으로 외국무역 ·국내유통을 대규모로 영위하는 거대상사였던 ‘종합상사’를 따온 모델로, 2015년 설립 후 '사회적기업을 돕는 사회적기업'을 표방하며 판로개척·대기업 협력·사회적기업 공동 브랜드 사업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켜왔다. 2016년 43억 원이었던 매출은 2017년 93억 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110억 원을 달성했다. 올해는 80% 이상 증액된 200억 원을 목표로 사회적기업뿐만 아니라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기업 전반으로 지원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경북종합상사 운영 체계/이미지출처=경북종합상사 홈페이지

경북에 이어 2017년 설립된 대구 사회적경제 종합유통채널인 ‘대구무한상사’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구무한상사는 지난해까지 설립 1년 만에 계약 161건, 총 매출액 12억2000만 원의 성과를 거뒀다. 사회적경제기업과 공공기관을 연계해 사회적기업 제품 및 서비스 판로개척과 공공기관의 법정의무 구매 해결을 도우면서 지난 3월에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도 받았다. 

이러한 종합상사 모델은 사회적경제기업의 판로 확장에만 기여하는 게 아니다. 박철훈 지역과 소셜비즈 상임이사는 "종합상사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 공공기관과의 협력에서도 동등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한다"며 "판로지원을 위한 중간지원기관이 생기면서 지원 체계도 더 두터워졌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유통 전문가를 양성하는 역할도 해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 기업간 소통, 탄탄한 민관 협력으로 공공구매 시장 이끌어  

그렇다면 이들이 사회적기업을 돕는 사회적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두 상사가 안정적으로 자리매김 했던 주요 요인은 기업들간의 신뢰다. 사진은 대구무한상사에 참여하는 기업들./사진출처=대구무한상사 홈페이지 

두 기관 모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소통을 통한 신뢰 형성과 늘 발로 뛰는 열정’을 꼽았다. 

박 이사는 “종합상사가 2015년에 설립됐지만 준비는 2010년부터 시작했다”며 “그만큼 오랜 기간 준비하며 사회적경제기업들 스스로가 사업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갔다”며 비결을 소개했다. 또한 그는 예산서 분석, 전수조사를 위한 현장방문 등 늘 발로 뛰었던 노력의 결과물이라 설명했다. 이렇게 형성된 기업들간 신뢰는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했다. 공공기관과 어느 정도 관계가 쌓이면 직거래 방식으로 가려는 기업이 생겨나기 마련인데, 경북종합상사는 이렇게 탈퇴한 기업을 제외하고도 초기 86개 출자 조합원에서 현재 115개로 참여 기업 수가 늘었다.

현재 52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참여하는 대구무한상사도 회원 가입에서부터 기업이 가진 최소한의 사회적 가치를 확인하는 장치를 내부에 두고, 수입의 일부를 무한상사에 기부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돕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민관 협력도 큰 힘이 되었다. 관계자들은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공공구매 비중이 가장 높은 만큼  공공기관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북종합상사의 '2018년 공공기관 사회적기업 우선구매 설명회-군위군청'/사진=경북종합상사&nbsp;<br>

경북도와 경북사회적기업협의회가 전국 최초로 공동 기획한 경북종합상사는 민관 협력으로 연간 200개 이상의 공공기관을 찾아 설명회를 여는 등 공략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 2년간 12건의 우선구매협약 체결에 성공했다. 지난해 5월 경북지방우정청과의 협약으로 물류비용을 절감했고, 우체국 쇼핑몰에 40개사를 입점시켜 연간 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 사회적기업 제품판매 및 홍보관을 설치한 후 월 평균 1000만원 이상의 매출실적을 내고 있다.  

대구무한상사는 설립 초기부터 민관 협력 모델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임영락 대구무한상사 사무국장은 “초기 대구시, 시의회, 시 산하 출자 출연기관,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등 37개 공공기관을 초대해 업무협약을 맺고 공공영역과의 우호적 환경 조성에 주력했다”며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비전 선언의 자리기도 했지만, 사회적경제 제품을 활성화 하자고 공공기관들에 제아하는 자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각 주체들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사업을 실행한 것도 성과에 도움이 됐다. △무한상사는 현장 및 판로·영업지원, 컨설팅 등의 역할을 하고, △사회적기업협의회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시장진입을 위한 연대체 마련, 학습 및 컨설팅, 마케팅 역략 강화에 앞장섰다. △지자체, 고용노동부 등 공기관들은 예산 지원, 정책 설계 지원에 힘을 실었다. 그 결과 현재 다양한 분야의 52개 사회적경제기업과 지역의 50여개 공공기관이 대구무한상사를 통해 거래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공공기관 지역농산물 관리지표를 적극 활용, 47분만에 제철 지역농산물을 150박스 파는 기염을 토했다. 

대구무한상사는 온라인 유통몰을 직접 운영한다./이미지출처=대구무한상사 홈페이지

이러한 탄탄한 민관협력 체계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의 가장 큰 시장인 공공기관 공략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실제 높은 매출로 이어졌다.    

◇ 경영과 운영의 분리로 전문·민주성 동시 해결 

사회적경제기업이 가진 사회적 가치를 장점으로 부각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형성하고 단단한 관계망을 구축하는 길로 갔다. 임 사무국장은 “무한상사와 사회적경제기업들이 기업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지 않는다는 걸 공공기관 측에 열심히 설명해왔고 그게 실제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유통사업이라는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협동조합이라는 민주적 운영이 동시에 가능하도록 경영과 운영을 분리한 것도 안정적인 기반 마련에 큰 역할을 했다. 대구무한상사는 사무국 내 이사회를 구성했지만, 이사회는 협동조합으로서 큰 방향만을 제시하며 대외 활동이 중심이 되고, 사업에 대한 권한은 운영위원회에 위임하고 있다. 운영위원회는 심사분과, 공공구매, 기획분과 등 4개 분과로 구성되어 사업의 전문성을 담보한다. 

◇ 민간 주도 유통체계 고민하는 지역 늘어...체계적인 지원 필요 

경북과 대구가 일정 성과를 내고 있지만 기업만의 힘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다. 바로 제도적인 부분들이다. 

임 사무국장은 “최근 지자체 사업의 경우 사회적경제기업과 수의계약 체결 가능 금액이 5000만원으로 확대되었지만 일반적으로 공공기관들은 감사 때문에 500만원 이하만 수의계약을 한다"며 "여전히 상의법규보다 내부 규정이 더 강력하게 적용되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한 무조건적인 지원금 보다는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등과 같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지원이 더 중요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두 지역이 종합상사 모델로 성과를 내면서, 전국적으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연대해 만드는 유통플랫폼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민간의 움직임에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선다. 김진석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판로지원팀장은 “지역이 중심이 되고 민간이 주도하는 사회적경제 유통채널 구축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