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단체 '카라'의 활동가들이 강원 산불 현장을 찾아 불에 그을린 개를 돌보고 있다./사진=카라

“아무리 급해도 목줄은 풀어주지….”

지난 4일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로 동물들이 화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으면서 안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난과 위기 상황시 동물 구조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함께 제기됐다.

10일 산림청에 따르면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 동해, 인제 등 5개 시·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1757㏊(잠정치)의 산림이 불에 탄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 6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다. 

대규모 산불의 위력은 동물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한우 14두, 가금 4만375수, 꿀벌 1504군, 기타 285두 등 가축 피해가 발생했다. 가축 외에도 목줄에 묶여 대피하지 못한 반려동물이 까맣게 그을리거나 화상을 입는 등 사진이 온라인에서 확산되면서 재난?위기 상황에서 동물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떠올랐다.

동물권단체 “사람만을 위한 국가 대응체계, 동물 매뉴얼 마련해야”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동물도 포함한 국가 재난 대응 매뉴얼을 만들라"는 취지의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사진=동물해방물결

국내에서는 지난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에 이어 이번 강원도 산불 발생을 계기로 재난?위기 대응에 대한 경각심이 일어났다. 동물권단체에서는 논평, 성명을 잇따라 내놓으며 “동물을 위한 국가 대응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8일 ‘예고 없는 재난 속에서 동물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국가 대응 체계 마련돼야’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카라는 “반려동물 1400만 시대를 맞았음에도 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에 동물은 여전히 배제돼 있다”며 “재난민은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소에 입소조차 할 수 없어 잃어버리고 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카라는 “재난 발생에 대한 동물 생명 피해 감소를 위한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러한 비극은 재난 시마다 반복될 것”이라며 “정부는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동물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물을 위한 재난대응 매뉴얼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 역시 8일 ‘사람만 챙기는 국가 재난 대응, 이대로 안 된다’는 서명을 내놓고, 동물도 포함한 매뉴얼을 마련하라는 취지의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동물해방물결은 “현재 대한민국 재난 관리 시스템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해 재난 때마다 동물들이 입는 피해는 엄청나다”며 “모든 동물을 위한 국가 재난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대응책 유명무실, 사회적협동조합 ‘우리동생’ 매뉴얼 제작?배포

현재 정부의 동물을 위한 재난 대응 매뉴얼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행정안전부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게시한 ‘재난대비 국민행동요령’에는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가 기술한 ‘애완동물 대처방법’ 역시 물품 준비나 사전에 반려동물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 확인 정도에 그친 정도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은 아니지만, 민간에서 동물을 위한 재난 매뉴얼은 나온 상태다. 사회적협동조합 우리동물병원생명(이하 우리동생)은 지난 2016년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을 기획해 이듬해 리플렛을 제작·배포했다. 매뉴얼에는 반려동물 ‘생존 배낭’을 꾸리는 방법부터 기본적 훈련법, 주거 환경 조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법이 정리돼 있다.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 제작 및 배포한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돋보기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 제작 및 배포한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돋보기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우리동생 측에 따르면 조합원 채미효 씨가 일본에서 ‘반려동물 재난위기 관리’ 교육을 받고 관련 자격증을 따면서 한국에도 알리면 좋겠다는 취지로 매뉴얼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동물 관련 재난 대비책이 없어 일본에서 발간한 매뉴얼과 미국의 반려동물 재난대피 법률과 계획, 한국의 상황 등을 고려해 매뉴얼의 세부 사항을 구성했다.

김현주 우리동생 사무국장은 “재난은 누구나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 당할 수 있기에 꼼꼼하게 준비할 수록 재난 상황에서는 물론 재난 이후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다”며 “무엇보다 반려인들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간절함을 담아 매뉴얼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동물들에게 인식표를 붙여주어야 위기상황 시 보호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대문이나 현관문에 ‘이 집의 반려동물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등 정보를 미리 붙이는 등 조치를 한다면,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불 진압 중 고양이를 구조하는 소방관의 모습./사진=AP통신

선진국에서는 재난시 동물을 포함하는 대비 계획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동물해방물결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난 2006년 하원에서 ‘PETS Acts’(반려동물 대피와 운송기준법?Pets Evacuation and Transportation Standards Act)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30개 이상 주에서 재난 발생시 동물의 대피?구조?회복을 제공하며, 반려?농장?봉사 동물을 모두 포괄한다.

일본 정부에서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뒤 반려동물의 ‘동행 피난’을 권유하고 있다. 환경성에서 배포한 ‘사람과 반려동물 재해대책 가이드라인’을 통해 평상시 재해 대비책, 재난 후 행동 및 주의사항 등을 안내한다. 지역 정보 수집과 피난훈련, 동물을 위한 비축물자 준비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김 사무국장은 “한국에서도 동물을 위한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이 공식적으로 마련된다면, 한켠에 꽃혀 있는 매뉴얼로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사람은 물론 반려동물도 함께 대피해야 할 생명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매뉴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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