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지 6년. 그 수가 1만4000개에 달하지만 절반 가까이는 영세하거나 연락조차 닿지 않는 실정이다. “협동조합을 통한 사업 성공은 왜 어려울까? 협동조합이 주식회사를 통한 사업 성공보다 더 어려운걸까?”라는 고민이 생기게 된 이유다.

한신대학교 사회혁신경영대학원의 교수들(2명)과 학생들(11명)은 이런 고민 속에서 2016년,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와 독일의 협동조합을 방문했다. '협동조합도 빅 비즈니스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떠난 탐방이었다. 

2019년 1월, 탐방단은 <이탈리아와 독일 협동조합 100년 성공의 비결' 책을 내고 자신들이 던진 질문에 답을 했다. "가능하다."   

국내 사회적경제 현장, 학계에서 활동하며 해외 협동조합을 보며 이들은 어떤 답을 찾았을까. 4월의 첫날, 공저자 4명(장종익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 오창호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 이철진 서울도봉지역자활센터 실장, 손재현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조합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좌담에 참여한 장종익 한신대 교수, 오창호 교수, 이철진 서울도봉지역자활센터 실장, 손재현 해피브릿지협동조합 부장(위부터 시계방향)./사진=최범준 인턴기자  

- 책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장종익 국내에 성공한 협동조합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기획재정부에 등록된 협동조합 수가 1만4000개에 이르지만 활동하지 않거나 영세한 곳들이 과반수다. 국내 협동조합들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쉬운 영역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또는 소상공인협동조합 등 정부 지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해법 중 하나라면, 이보다 임팩트가 더 큰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생기고 확대되어야 한다. 유형으로 보면 노동자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이 그것이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처음은 어렵지만 기반을 잡고 고유의 장점을 발휘한다면 분명 큰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지금 국내는 협동조합 창업이나 설립보다 기존 협동조합 간의 합병, 비즈니스 협력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국내 상황을 고려했을 때 큰 함의를 던져줄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했다. 협동조합이 다 영세하지 않다는 사실, 대안적 비즈니스 방식으로 협동조합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진짜 사례로 볼 수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았다. 사회적경제가 발달한 유럽에서도 특히 노동자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이 가장 발달한 이탈리아와 소기업/소상인협동조합, 사회적금융협동조합이 발달한 독일이 그런 곳들이었다. 조합원 500명 이상의 노동자 소유 대기업 규모의 협동조합들이 운영되고, 비즈니스 임팩트를 가지기 위해 사협도 협동조합들 간 협력을 시도하는 곳들이 많았다.  

올해로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지 6년째다. 처음에는 다들 잘 모르니 해외사례로 교육도 하고 정책도 시행했다. 이제는 차분히 돌아보고 분석하고 재정비할 때다. 그러한 고민과 화두를 던진다는 마음으로 해외탐방을 준비하고 책을 내게 되었다. 
 
- 12개 기관을 방문했다.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나.    

장종익 협동조합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잘 살리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협동조합의 장점을 잘 발휘한다는 걸 뭘까?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게 있는데, 내적인 걸 우선 얘기하면, 자본 이득 이외의 필요를 지닌 기업 이해관계자가 그 기업을 소유할 때 협동조합적 소유의 장점이 더 잘 작동한다는 점이다. 또한 의사결정 방식에서 민주적일 때 주체성도 강해지고 집행력도 높아졌다. 우리가 방문한 협동조합들에서 이러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조합원의 노력과 이익 배분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직접적이고 투명하게 설계했고, 조합원의 합의를 수렴하는 과정에 많은 힘을 썼다. 그러한 노력이 실제 전체 조합원에게 직접적인 이익으로 돌아오고 조합 전체 차원의 높은 추진력으로 확보되기 때문이다. 

<해외 협동조합은?>

조합원 참여도↑ 민주적 운영으로 주체성·집행력 높이는 해외 협동조합들  

세계적인 세라믹 제조 설비와 유관 생산 설비 제작 분야 기업인 샤크미(SACMI)는 노동자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100녀 역사의 기업이다. 샤크미의 조합원은 389명에 불과함에도 세계 각국 4000여명의 직원들을 고용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까다로운 조합 가입을 통해 조합원들의 참여 동기와 의무, 자부심을 높이는 것과 더불어 월 1회 총회 개최 등 조합원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등이 있다. 
정신 장애인들의 노동통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이탈리아 사회적협동조합 쿱론첼로(Coop Noncello)도 다양한 600명 조합원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매주 회의를 연다. 이는 민주적인 조직 운영의 기반이 되어 쿱론첼로가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민주적인 조직이라는 협동조합의 장점이 비즈니스적으로 큰 장점이 된다는 걸 우리가 그동안 간과했다는 생각을 했다. 국내에서 협동조합적 소유 장점을 잘 발휘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시사점도 얻었다. 

독일에서 매년 3만여 개의 기업이 파산하고 있는데, 이중 협동조합은 기껏해야 5개 미만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사진은 DGRV 국제교류 협력 담당 Peter Asmussen과 사무실 입구에서.

오창호 외적인 점을 얘기한다면 독일이나 이탈리아 모두 협동조합간 ‘협동과 연대’라는 협동조합의 고유한 문화를 잘 키우고 있었다. 협동조합의 지향과 사명도 중요하지만 초창기다 보니 생존·성장이 중요하다. 이때 총연합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려운 동료 조합원을 지원하고 새로운 청년 소기업가를 키우기도 하고, 동일한 목적을 지닌 조합간의 합병뿐 아니라 규모화가 필요할 때는 컨소시움까지 연합회가 이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중요한 시기에는 총연합회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위장 협동조합이 출현할 경우 감사·감독 기능을 하고,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합회가 중간에서 조정 역할을 한다.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협동조합이 설립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지원하는 것도 연합회의 역할이다.  

해외사례들을 보며 아쉬웠던 건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자원이 연합회에 몰리면 밑을 통제하는 형태로 흘러가는데, 이들 나라에서는 협동조합 조직들이 주체가 되고 연합회는 이들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충실 한다는 점이다. 개별 협동조합이 더 많아지고 탄탄해지는게 우선이겠지만, 향후 이렇게 연합회 역할을 강화해가는 게 필요하다.  

- 탐방에 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이 많이 참여했다. 실제 사례를 봤을 때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손재현 해피브릿지협동조합은 주식회사에서 2013년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한 모델이다. 아직 노협 모델이 국내에 많지 않아 운영이 쉽지는 않다. 그 중 가장 큰 어려움은 제도의 미스매칭이다. 모든 기업법이 주식회사에 맞춰져 있다 보니 노협이 이를 제도적으로 반영해내기가 어렵다. 특히 미처분 이익잉여급 처리 문제는 생각보다 큰 조직 갈등으로 이어진다. 주식회사는 주식가치에 반영이 되기에 제도가 더 필요하지 않다. 반면 노협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 노동에 의해 잉여가 생산되기에 잉여를 다음해로 넘겼을 때 처분할 방안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한 이탈리아는 제도적으로 미처분 이익잉여금을 처분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조건으로 국가가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이런 제도는 노협 자체를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지역공동체의 것이라는 인식으로 연결시켜 주는 힘이 되었다. 이탈리아 노협인 ‘리스토3’의 사라 빌로티 이사장이 얘기한 “이곳에서의 일자리는 내가 잠시 이용하는 것일 뿐, 이 지역의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다.”는 말이 이를 잘 뒷받침한다.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이러한 그들의 시각이 협동조합의 성공을 가져온 비결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공동체 인식을 가지려면 개별 협동조합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이철진 지역자활센터에서 일하고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에 관여하고 있다 보니 탐방 전 관심사가 2가지였다. ‘사회적협동조합이 국내에서 발전 가능할까?’와 ‘이탈리아 협동조합이 발전한 건 우리보다 더 많은 지원제도가 있어서지 않을까?’였다. 지역자활로 가면 우리보다 더 열악한 근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일하는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직접 눈으로 본 현실은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보여줬다. 이탈리아의 역사성 속에서 사회적협동조합은 정부의 지원보다는 자원봉사 체계 등 다양한 통로로 성장해왔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후 지원을 목적으로 수많은 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들어진 국내와는 대비적인 부분이다. 

쿱논첼로의 스테파노 만토바니 이사장이 자신의 테블릿 PC에서 정신장애로 인해 신체 전체를 구속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을 담은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유가 바로 치료다.’라는 너무나 당연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지원과 같은 외적인 요인보다 그들의 성공 속에는 리더를 비롯해 구성원들이 자기 목적을 충실히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과 더불어 조직에 대한 강한 열정과 애정이 숨겨져 있었다. 특히 “장애인의 육체적 불편만으로 정신적 구속까치 시켜야 하나”라 얘기하는 쿱논첼로 스테파노 만토바니(Stefano Mantovani) 이사장의 말은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어떤 자활 의지의 노력을 가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그게 사회적협동조합 성공을 위한 핵심 요인이지 않을까.   
   
- 국내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한다면. 

손재현 국내에서 지역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고민하는 주체들이 봤으면 하는 사례가 있다. 바로급식사업으로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외식 분야 종업원 1000명 규모의 이탈리아 협동조합인 ‘리스토3’다.  인구 50만 도시에서 급식사업으로 양질의 노동을 만들고, 고귀한 노동으로 인정받는 사례로 노동자협동조합이 가진 특성을 잘 살린 사업이다. 지역민들이 어떻게 일하고 지역의 일자리가 귀한 일자리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좋은 귀감이 될 거다.

이철진 이탈리아 사회서비스 영역 간에 컨소시엄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어떻게 국내에 반영할지 고민도 했다. 기존에 국내 중간지원기관에서 나오는 공모사업에는 협동조합을 제외한 다른 민간 영역이 접근하기가 어렵다. 특히 지역에서는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사회족경제와 다른 민간영역간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더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오창호 벤치마킹이라는게 양면성이 있다. 해결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답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 사회적경제, 비영리단체 등의 분야에서 경영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제도나 시스템이 더 나아지도록 협력해야 한다. 해외는 수익의 일부를 연대기금으로 내놓거나 공동사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야 진짜 협력이 가능해진다. 

장종익  '조직간 비즈니스 협력'은 협동조합의 본질이다. 농협, 신협, 생협 등 모두 그걸 통해 발전되어왔다.협력은 엄청난 사회적 순기능 역할을 할 수 있기에 협동조합 주체들은 의도적으로 더 연대와 협력을 해야 한다. 더불어 조직간 협력을 촉진시키는 데 기업가(Entrepreneur)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하겠지'로는 안된다. 중간지원자들이 필요하다. 다만 그 조직의 절반 이상은 업종 전문가들이 들어가서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건 독일의 소기업협동조합들의 경우 제조업 말고도 비제조업 분야(음식, 유통, 숙박, 베이커리, 자재, 교육 등)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 작은데도 생존율도 높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건 정부 차원의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 문제가 심각한 만큼, 중소기업지원 관계자들도 이런 부분을 더 깊이 있게 분석하고 적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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